대기업 이자보상비율 1882%, 중기는 322%…격차 역대 최대
반도체發 대기업 수익·시설자금 대출 급증…중기는 더딘 회복세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 반도체 호황이 수출과 성장 지표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경기 회복의 온기는 경제 전반으로 퍼지지 않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대기업의 수익성과 이자 지급 능력이 빠르게 개선되는 사이 중소기업은 더딘 회복에 머물렀고, 투자에 쓰이는 시설자금 대출 증가 폭도 크게 차이 났다. 업종별로는 반도체가 성장을 이끌고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에 실적 개선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성장 지표와 체감경기의 간극이 커지면서 이른바 ‘K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1882%로 중소기업(322%)보다 1560%포인트 높았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15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격차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대기업은 이자비용의 약 19배를 영업이익으로 벌었지만 중소기업은 약 3배를 버는 데 그쳤다.
1년 전인 지난해 2분기만 해도 대기업 이자보상비율은 362%, 중소기업은 226%로 격차가 136%포인트였다. 격차는 지난해 말 345%포인트(대기업 563%·중소기업 218%)로 벌어진 데 이어 올해 1분기 864%포인트(대기업 1115%·중소기업 251%)로 커졌다. 올해 2분기에는 그 폭이 다시 크게 확대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익성 격차에는 반도체 업황 개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2분기 제조업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3903%로 1년 전(440%)의 약 9배로 뛰었다. 같은 기간 제조업 중소기업도 263%에서 401%로 상승했지만 개선 폭은 대기업에 크게 못 미쳤다.
이자 지급 능력뿐 아니라 자금 조달의 용도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대기업 시설자금 대출 잔액은 75조803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했다. 반면 중소기업 시설자금 대출 잔액은 333조6350억원에서 337조8514억원으로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소기업 대출 증가분은 대부분 운전자금에 쏠렸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583조8656억원에서 올해 9월 말 601조3648억원으로 17조4992억원(3%) 늘었는데, 이 가운데 13조2827억원이 운전자금 대출 증가분이었다. 인건비와 원자재 구매 등 기존 사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 수요가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 잔액은 163조3677억원에서 194조3376억원으로 19% 증가했다. 시설자금 대출이 16%, 운전자금 대출이 21% 늘어 두 항목 모두 증가세를 보였다. 대기업의 시설자금 대출 증가는 투자 확대를 위한 자금 수요가 상대적으로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중소기업은 시설 확충보다 당장의 사업 운영에 필요한 자금 확보에 무게를 둔 모습이다.
은행권에서는 회사채 금리 상승으로 대기업의 은행 대출 수요가 늘어난 데다, 은행권의 생산적 금융 확대 움직임도 대기업 대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법인은 글로벌 경제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대출금리까지 높아져 자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는 데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개인사업자의 시설자금 대출은 상업용 부동산 매입 목적이 주를 이뤘지만, 상업용 부동산 침체가 이어지면서 취급 규모도 줄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온도차는 반도체가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전체 수출과 성장 지표를 끌어올려도 그 성과가 모든 업종과 기업에 고르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를 비롯한 일부 산업의 대기업은 실적 개선과 투자 여력을 키우는 반면, 중소기업과 내수·지역경제는 상대적으로 회복이 더딜 수 있다. 성장률이 높아지는 것과 다수 기업의 경영 여건이 나아지는 것이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비율 상승도 경영 여건 개선으로만 해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으면 중소기업은 부채를 상환하고 투자를 줄이는 재무적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며 “이자보상비율 상승을 경영 상황이 개선된 결과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일부 부문이 매우 좋으면 전체 지표는 좋아질 수밖에 없지만, 성과가 한쪽에 쏠려 있다면 많은 경제 주체는 지표 개선을 ‘착시’로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AI 반도체 경기가 계속 확장되면 수출 실적이 좋아지고 세금이 잘 걷혀 정부 지출도 늘면서 경제가 좋아질 수 있다”며 “반대로 반도체 경기가 꺾이고 법인세가 줄어 정부 지출에 부담까지 생기면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도체가 성장을 견인하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성과를 다른 업종과 기업 규모로 확산하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반도체 경기의 변동이 수출과 세수,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한국 경제의 성장세도 특정 산업의 업황에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tto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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