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자보상비율 1882%, 중기는 322%…격차 2015년 이후 최대

10억 초과 예금은 상반기말 잔액 역대 최대…전체 저축성예금의 50.6%

수출대금 유입·기업 달러예금도 급증…달러예금 1년 새 44%↑

평택항 컨테이너 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 이상섭 기자
평택항 컨테이너 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 반도체 호황에 수출과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서 은행에 쌓인 고액 예금이 1000조원에 육박했다. 기업의 여유자금이 늘어나는 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자 지급 능력 격차는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가 기업 곳간을 채우고 있지만, 그 성과가 기업 규모와 업종 전반으로 고르게 확산하지 않는 모습이다.

기업의 여윳돈이 예금으로 계속 쌓이고 투자와 고용, 협력업체 지원 등 실물경제로 충분히 흘러가지 않으면 성장의 온기가 일부 기업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액 예금 증가만으로 기업의 투자 부진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수출 호황이 기업의 자금 여력 확대를 넘어 경제 전반의 활력으로 이어지는지가 과제로 떠올랐다.

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국내 예금은행의 저축성예금 가운데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한 계좌의 예금은 960조1150억원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2년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해 말보다 91조6350억원(10.6%), 지난해 6월 말보다 138조7020억원(16.9%) 늘었다.

고액 예금 잔액은 2021년 6월 말 700조원을 넘어선 뒤 2024년 말 80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처음 900조원대로 올라섰다. 반기 기준 증가액도 역대 최대였다. 전체 저축성예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6%로, 2022년 6월 말 이후 4년 만에 다시 절반을 넘었다.

예금 종류별로는 10억원 초과 정기예금이 666조162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58조9870억원(9.7%) 증가했다. 법인과 개인사업자 등이 일시적인 여유자금을 맡기는 기업자유예금은 278조780억원으로 30조4690억원(12.3%)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2.4% 감소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10억원 초과 고액 계좌는 대부분 법인 계좌로 추정한다”며 “올해 상반기 기업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면서 예금 잔액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고액 예금에는 법인뿐 아니라 개인 계좌도 포함돼 있어, 전체 증가액을 기업 자금으로 볼 수는 없다.

기업의 자금 여력이 커진 흐름은 자금순환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2분기 비금융 법인기업의 순자금 운용액은 67조1000억원으로, 1분기 20조8000억원보다 크게 늘어 2009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기업의 금융기관 예치금 운용액도 1분기 17조8000억원에서 2분기 84조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한은은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기업 이익 증가를 배경으로 설명했다.

수출대금 유입과 기업 외화예금도 급증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올해 1∼10월 타발송금 취급액은 6217억9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1% 늘었다. 기업이 수출대금으로 받을 외화채권 등을 은행에 넘기고 대금을 먼저 받는 매입외환(네고) 취급액도 31.5% 증가했다. 10월 네고 취급액은 202억4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84.2% 늘었다.

5대 은행의 기업 달러예금 잔액은 10월 말 645억5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44.0% 증가했다. 기업과 개인을 포함한 전체 달러예금 증가액 가운데 기업 몫은 89.3%에 달했다. 엔화예금 등을 포함한 기업 외화예수금 잔액도 10월 말 768억8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42.5% 늘었다.

수출 호조가 기업 자금으로 유입되는 가운데 기업 규모별 여건은 뚜렷하게 갈렸다. 올해 2분기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1882%로 중소기업(322%)보다 1560%포인트 높았다. 대기업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의 약 19배를 벌었지만, 중소기업은 약 3배를 버는 데 그친 셈이다. 격차는 2015년 1분기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컸다.

지난해 2분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자보상비율 격차는 136%포인트였다. 지난해 말 345%포인트, 올해 1분기 864%포인트로 벌어진 뒤 2분기 들어 더 확대됐다. 반도체 업황 개선이 대기업 수익성에 크게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올해 2분기 제조업 대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3903%로 1년 전의 약 9배로 뛰었다. 같은 기간 제조업 중소기업도 263%에서 401%로 올랐지만 상승 폭은 대기업에 미치지 못했다.

대출의 용도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지난 9월 말 5대 은행의 대기업 시설자금 대출 잔액은 75조803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 증가했다. 반면 중소기업 시설자금 대출 잔액은 333조6350억원에서 337조8514억원으로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17조4992억원 늘었지만, 증가분 가운데 13조2827억원은 운전자금 대출이었다. 설비 확충과 사업 확장에 쓰이는 시설자금보다 인건비와 원자재 구매 등 기존 사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 수요가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 대출 잔액은 1년 새 19% 늘었고, 시설자금과 운전자금 대출이 각각 16%, 21% 증가했다.

은행권에서는 회사채 금리 상승으로 대기업의 은행 대출 수요가 늘어난 데다 생산적 금융 확대 움직임도 대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법인은 글로벌 경제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대출금리까지 높아져 자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는 데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예금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투자가 줄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수출대금을 환전하지 않고 보유하거나 해외 원자재 구매, 수입대금 결제, 해외투자 등에 대비해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는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유입된 달러를 바로 원화로 바꾸기보다 환율 흐름을 지켜보며 환전 시점을 조정하는 움직임이 있다”며 “해외 결제와 투자에 대비한 외화 확보 수요도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의 여윳돈이 예금으로 쌓이는 동안 중소기업의 투자 여력과 이자 상환 능력 개선이 더디다면, 반도체 호황이 경제 전반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생길 수 있다. 기업 간 자금 격차가 투자와 생산성, 고용의 격차로 이어지고 성과가 다시 일부 산업과 대기업에 집중되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일부 부문이 매우 좋으면 전체 지표는 좋아질 수밖에 없지만, 성과가 한쪽에 쏠려 있다면 많은 경제 주체는 지표 개선을 ‘착시’로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AI 반도체 경기가 계속 확장되면 수출 실적과 세수가 늘어 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경기가 꺾이면 법인세와 정부 지출 여건이 함께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꼬치 7만원어치 먹었더니 택시비 4000원 생겼다” 중국서 삼성우리월렛 써보니 [르포]

“양꼬치 7만원어치 먹었더니 택시비 4000원 생겼다” 중국서 삼성우리월렛 써보니 [르포]

우리은행과 삼성월렛 머니는 지난달 26일부터 중국 내 위챗페이 가맹점에서 QR결제를 지원하며 중국 내 위챗페이 가맹점에서 QR결제를 지원한다.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929193

attom@heraldcorp.com
Google News Icon
Google News 에서 헤럴드경제 팔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