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손목 아프시면 말 좀 천천히 할까요?”이 남자 세심하고 배려가 넘친다. 영화 ‘어느 날’ 홍보 인터뷰를 하는 도중 김남길의 말을 받아 적으며 잠깐 손목을 돌렸는데 그걸 순식간에 캐치해냈다. 손목이 아팠을 정도로 김남길은 ‘어느 날’에 대해 하고 싶은 말도, 해야 될 말도 많아 보였다. “가볍지 않은 소재지만 본질적인 걸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무겁지 않아 개인적으로 좋았다. 이윤기 감독님 영화중에서 가장 상업적이고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잘 나오지 않았나 싶다.”‘어느 날’은 아내가 죽은 후 삶의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보험회사 과장 강수(김남길)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미소(천우희)의 사건을 맡게 되고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소의 영혼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강수와 미소의 만남 자체가 판타지이다 보니 김남길은 관객들이 받아들이지 않을까 우려했다. 다행히도 ‘어느 날’ 속 판타지 설정들은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에 대해 고민을 했지만 흐름에 관해선 그렇게 강박증을 가지지 않아도 되지 않나 싶다. 천우희가 빠지고 혼자서 연기를 할 때 오버스럽고 과장된 표현을 하게 되더라.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미소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입장이 단계적으로 표현됐는데 절제하려고 노력했다. 미소의 손에 물이 떨어지는 걸 보고 강수가 기절하는 장면은 대본에 없었다. 애드리브였는데 감독님이 생각보다 재미있어 하셨다.”
김남길은 아내를 떠나보낸 남자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몸에 타이트하게 붙었던 수트의 사이즈도 늘렸고 깔창까지 신경 썼다. 여기에 풍광, 음악까지 고려하는 이윤기 감독의 연출력이 만나 더 빛을 발했다. 김남길 역시 이윤기 감독의 그런 연출력에 감탄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론 아내와 함께 한 과거 회상신을 꼽았다. “마지막에 와이프 방에 들어가서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와이프랑 통화를 하면서 치킨을 흔드는 모습이 있는데 강수가 강수를 바라보는 시점이 짠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도닥여주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제 인생연기라기 보단 카메라, 빛, 음악까지 여러 요소들이 합쳐져서 좋은 연기가 나온 것 같다. 그냥 연기만으로 좋은 장면이 있고 영상, 음악이 있을 때 부가가치가 올라가 좋은 장면이 있는데 촬영을 하면서 ‘이 감독이 잘하고 있나’ 긴가민가했었다.(웃음) 근데 처음 완성본을 보고 계산해서 촬영을 했나 의심이 들었다. 이윤기 감독님 영화는 여러 가지가 맞았을 때 시너지가 좋은 것 같다. 영화엔 배우 연기, 영상, 음악 등 자체 기술적으로 많은 스태프들이 붙는데 그게 다 합쳐져서 찍은 영화가 진짜 좋은 영화 같다.”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과 버림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어느 날’은 여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시각장애인, 환자와 그 가족들, 존엄사까지 정답이 없는 문제들을 감성적으로 터치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연기한 김남길 역시 많은 생각을 했다.
“오랜 병상에 있는 가족을 둔 분을 위로했더니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상황이 안 되어 보면 모른다. 다 강수랑 비슷할 것 같았다. 남겨진 사람, 떠나는 사람 다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강수가 가진 감정이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아픈 사람 입장에서도 생각했다. 이런 감정이 맞다가 아니라 이런 입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마지막 강수의 선택을 두고도 우리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많았다. 직접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픈 사람들의 가족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는데 나쁘다곤 할 수 없는 것 같다. 아픈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라는 게 아니라 그만큼에 대해서 마음을 알아주는 영화다.”오랜만에 감성적인 작품에 출연한 김남길은 ‘어느 날’를 통해 관객들과 정서적 교감을 이루길 원했다. 안 좋은 피드백엔 상처를 받는다고 농을 쳤지만 ‘어느 날’에 대한 피드백을 기다렸다. “정서적인 것들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장면이 있는데 정서를 알겠다거나 공감한다는 말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오락영화는 보여주고자 하는 게 명확한데 ‘어느 날’은 여러 생각이 나오는 작품이라 고민이 되고 걱정이 된다. 좋은 쪽으로 받아들여주면 행복감, 성취감이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