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북한어선 삼척항 부두에 접안
-군경 해상경계작전 사실상 완전실패
-17일 군 당국 “경계작전 이상 없었다”
-18일 군경 3중 감시망 무용지물 드러나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아주 작은 사건으로 여겨졌던 북한어선 귀순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바다 건너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마저 거론된다.
군 당국은 지난 11일 속초 동북방 NLL 이남에서 표류하고 있는 북한어선을 북한으로 안전하게 귀가시켰다고 밝혔다. 우리 군 함정이 북한의 조난 선박을 NLL(북방한계선)을 통해 귀환시킨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체결한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관계가 상호 협력하는 분위기로 전환됐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우리 군의 총사령부격인 합동참모본부는 “오늘 13시 15분경, 우리 해군함정이 속초 동북방 161㎞, NLL 이남 약 5㎞ 부근에서 고장으로 표류 중인 북 어선 1척(6명 탑승)을 발견했다”며 “해당 선박 선원들이 북측으로 귀환의사를 밝혔고, 북측에서 통신망으로 해당선박을 구조하여 예인해 줄 것을 요청해 옴에 따라 9.19 군사합의 정신과 인도적 차원에서 해군 함정으로 NLL까지 예인하여 19시 8분 북측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우리 해군 함정이 북한 조난 선박을 예인해 NLL 선상에서 인계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군은 당일 발생한 사건에 대해 신속하게 설명하며 이례적으로 우리 해군함정이 북한어선을 인도하는 사진까지 배포했다. 군 당국도 이 사건을 상당히 고무적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흘 뒤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어떤 파장을 부를 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1일 사건과 비슷하게 15일 오전 6시 50분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에서 북한어선이 또 발견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돼 우리 군 함정이 예인했으며, 군과 경찰 및 국정원 등으로 구성된 합동신문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11일과 15일 표류하다 발견된 북한어선은 모두 해상에서 발견된 것인데 왜 11일은 해상에서 바로 북측에 인계되고 15일은 예인돼 우리 정부당국의 합동신문을 받게 됐을까. 둘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11일 사건과 15일 사건 달라도 너무 달라=16일 전후까지만 해도 두 번째(15일) 발견된 북한어선은 삼척항 인근에서 남한 어선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그 차이점을 알 수 없었다. (뒤에 밝혀진 일이지만 15일 발견된 북한어선은 해상에서 남한 어선에 의해 발견된 게 아니었다. 이 북한어선은 스스로 삼척항 방파제에 접안했고, 탑승자들은 스스로 육지에 올라와 돌아다니며 남한 주민에게 휴대전화를 잠깐 빌려쓰자고 하는 등의 행태를 보여 산책 나온 주민이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11일 사건은 지난해 7월 10년 만에 복원된 남북 함정 간 해상 ‘핫라인’인 국제상선공통망으로 남북 군 당국이 교신해 북측이 예인해줄 것을 요청해 우리 측이 예인해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15일 사건은 남북 당국 간에 교신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사건 같지만, 두 사건은 다른 점이 많았다.
특히 15일 사건에 있어 북한어선이 해군, 육군, 해경의 3중 감시망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삼척항에 직접 접안한 사실은 군사안보적으로 상당한 후폭풍을 불러올 터였다.
그러나 17일 군 당국은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합참 전비태세실 차원의 조사 결과 “전반적인 해상 및 해안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게 된다.
아울러 군은 작전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으나 해안감시레이더 등의 장비가 노후됐다며, 향후 성능개량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전대미문의 이번 사건을 맞아 군 내부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군 예산을 증액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묘수로 보였다. 이를 인식한 취재진들 사이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경계작전의 실패인데 군이 이 사건을 천문학적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논리의 근거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합참 관계자는 “선박의 높이가 파고보다 낮아 레이더 감시요원들이 파도로 인한 반사파로 인식했다”면서 “당시 레이더 감시 요원들은 최선을 다했고, 특별한 근무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군은 어선 발견 당시 동해상의 파고는 1.5∼2m였고, 북한어선은 높이 1.3m, 폭 2.5m, 길이 10m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뒤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동해상의 파고는 군의 발표와는 달리 1m 내외로 잔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레이더 감시 요원들은 레이더상에 희미한 표적을 발견했으나, 그것이 정지된 표적이어서 특정한 표적인지를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만약 빨리 움직이는 표적이었다면 식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군은 15일 북한어선이 표류해 물결에 따라 내려온 것으로 설명했으나 뒤에 밝혀진 바, 15일 삼척항에 들어온 북한어선은 엔진을 가동해 삼척항에 들어왔다.)
더불어 군은 과거 북한 소형 선박을 식별하지 못한 사례를 추가로 공개하기도 했다. 군이 남측 해상에서 표류하는 북한 소형 선박을 2002년과 2009년 두 차례 식별하지 못했다는 것.
국방부 관계자는 “올해에만 북한어선이 60여 차례 NLL을 넘어왔고, 오늘도 3척이 발견되어 퇴거 조처를 했다”면서 “2002년과 2009년 두 차례는 식별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합참 관계자는 “적이 우리 해상으로 들어오면 100% 잡아낸다”면서 “어선의 미세한 흔적을 포착했던 해안레이더는 수명 주기가 지났기 때문에 성능을 개량할 계획이며, 해안레이더의 사각지대와 음영지대가 없도록 레이더 중첩구역을 최적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8일 군이 전날 발표한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이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날 북한어선이 삼척항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남한어선에 의해 포착, 신고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이 배가 삼척항 방파제 인근 부두에서 식별된 사실이 알려졌다. 최초 신고자는 북한어선 탑승자를 뭍에서 목격한 주민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사건 이후 급박했던 17, 18, 19, 20일=18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당시 군은 해경으로부터 ‘삼척항 방파제’에서 북한어선이 발견됐다는 상황을 전파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어선은 방파제 인근 부두에 접안한 상태였다.
전날 군 당국이 북한어선이 삼척항 부두에 정박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고, 주민이 신고한 사실도 언급하지 않아 사안을 축소 및 은폐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감시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상황이 명백해진 상황에서도 징계 또는 문책을 당한 군 간부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탑승자 4명 중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혀 해상판 ’노크귀순‘ 사건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노크귀순 사건은 지난 2012년 북한군 병사가 DMZ(비무장지대) 철책을 넘어 우리 군 초소까지 온 뒤 노크해 귀순 의사를 밝혀 우리 군이 발칵 뒤집어진 사건이다. 이번 사건도 그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19일에는 북한어선이 삼척항 앞바다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 부두로 접안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북한어선은 깊은 밤에 해안으로 진입할 경우 군의 대응 사격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5년 DMZ에서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넘어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귀순 의사를 밝힌 ’대기귀순‘ 사건과 흡사한 면이다. 이날 이 사건에는 해상판 노크귀순 및 대기귀순 사건이라는 별칭이 달렸다.
북한어선은 앞바다에서 엔진을 끈 뒤 일출과 함께 엔진을 다시 켜고 해안으로 기동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 군 당국은 19일 추가 설명을 통해 북한어선이 9일 함북 경성을 출발, 10일 동해 NLL 오징어 조업 어선군에 합류했고, 11~12일 위장조업을 한 뒤 12일 밤 9시 NLL을 넘어 13일 오전 6시 울릉도 인근 해상에 도달했다. 13일 밤 8시께 기상 악화로 잠시 표류했으나, 엔진을 켜고 육지로 항해를 시작했다. 14일 밤 9시께 삼척항 3~5㎞까지 접근해 엔진을 끄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날이 새자 일출과 함께 삼척항에 진입했다. 15일 오전 6시50분께 산책을 나온 주민이 신고해 알려졌고, 해경이 상황을 파악했다.
신고자는 차림새가 특이한 북한 주민을 발견하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북한 주민들은 “북한에서 왔다”고 답했다. 이때 이미 방파제로 올라온 주민 1명은 서 있고, 다른 1명은 앉아 있었다.
방파제에 있던 북한 주민 중 1명은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하고 싶다”며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이모는 탈북해 서울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한 주민은 손에 이모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탑승자는 4명이었으며 인민복(1명), 얼룩무늬 전투복(1명), 작업복(2명) 차림이었다. 군은 4명 중 2명은 귀순 의사를 보였다며 이 2명을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20일 군은 입장을 대전환했다. 전날까지 “경계작전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던 군은 이날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돌아섰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북한 소형목선 상황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15일 발생한 북한 소형목선 상황을 군은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사건 처리 과정에서 허위보고나 은폐행위가 있었다면 철저히 조사해 법과 규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날 이순택 감사관을 단장으로 하는 합동조사단을 편성해 동해 작전부대로 보내는 등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
국방부 장관 지시로 긴급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경계실패, 허위보고, 축소 및 은폐행위 등 3대 의문을 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21일에는 이번 사건 이후 군의 최초 언론 브리핑이 있었던 17일 청와대 행정관이 국방부 익명 언론브리핑에 참석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파장이 일었다.
현역 해군대령 신분의 청와대 행정관 A씨는 17일 공개된 국방부 정례브리핑에 참석한 뒤 기자실에서 진행된 익명 브리핑(백브리핑)에도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청와대와 국방부 측은 A씨의 백브리핑 참석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익명 브리핑에 참석한 다수의 고위급 군 당국자와 국방부 관계자 대부분은 A 행정관의 참석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행정관이 국방부 백브리핑에 참석한 사례는 이전까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놓고 정부가 17일 당시 이미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있었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