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주한 미국대사 요청 2주만에 결정
-아덴만 해역서 아라비아만까지 확대
-21일 17시30분 청해부대 교체식 계기
-31진 왕건함 임무지역 확대해 새 임무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정부가 미국이 호르무즈 파병을 요청한 지 정확히 2주만인 21일 '임무지역 한시적 확대'라는 방법으로 사실상의 파병을 확정, 발표했다.
국방부는 21일 "우리 정부는 현 중동정세를 감안하여, 우리 국민의 안전과 선박의 자유 항행 보장을 위해 청해부대 파견지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청해부대 파견지역은 현재의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만과 아라비아만까지 포함하는 영역으로 확대된다. 기존과 비교하면 임무지역이 3.5배가량 늘어난다.
급격히 확장된 임무지역에서 근무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호위연합체인 IMSC(국제해양안보구상)에는 참여하지 않는 독자적 파병 방식이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상황을 고려한 조치로, 앞서 일본도 이런 식의 단독 호르무즈 파병 방식을 채택한 바 있다. 군 당국 내에서는 이란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우리 국민과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절충적 방안이란 평가가 나온다.
다만, 국방부는 유사시 청해부대와 IMSC의 연합작전을 위해 청해부대 소속 장교 2명을 바레인 소재 IMSC 본부에 파견할 계획이다. 단독 파병으로 이란의 심기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IMSC에 참가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추구하는 전략이다.
관건은 미국과 이란이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 여부를 놓고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임무지역 한시적 확대…명분·실리 동시에=정부는 미국과 이란 모두에게 큰 불만이 없도록 조치했다는 입장이다. 미국에는 국방부가 직접 설명했으며 미국은 한국의 결정에 동의하고 감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이란에는 외교 채널로 파병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대신, 미국 주도의 IMSC에는 불참한다는 뜻을 전해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지난해 연말까지도 호르무즈 파병은 국민과 선박 안전을 위한 단순한 정책적 결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달 초 파병을 앞두고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파병 관련 정세가 요동쳤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이미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에서 호르무즈 파병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였다. 그러나 미국이 3일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쿠드스군) 사령관을 암살하고 이란이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양측 갈등이 격화되면서 파병 카드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터로 우리 아들, 딸들을 보낼 수 없다'는 국내 여론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은 여러 채널로 정부를 압박했다. 마침내 지난 7일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KBS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을 요청했다. 그로부터 2주여가 흐르는 동안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악화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과 31진 왕건함의 부대 교체식이 예정된 21일 17시 30분을 기해 임무지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가 '독자적 작전' 형태로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에 파견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청해부대 임무지역은 현재보다 약 3.5배 늘어난다.
청해부대는 지금까지 소말리아 아덴만 해상의 1130㎞ 구역에서 해적 퇴치작전을 펼쳐왔다. 앞으로는 기존 아덴만 해역에 1322㎞에 이르는 아라비아해 해역, 414㎞의 오만만 해역, 1100㎞의 아라비아만(페르시아만) 해역까지 약 4000㎞(3966㎞)의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정부는 지난해 5월 미국과 이란의 갈등 조짐이 나타나면서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파병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해 5월부터 사태를 주시하다가 7월부터 청해부대의 기항지를 아덴항에서 무스카트항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인근 선박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에 대비해 작전이 용이한 무스카트로 거점을 사실상 옮긴 채 활동해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호르무즈 파병을 위해선 새 국회동의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이 일부 있지만, 국방부는 기존 해외파병 부대의 임무지역을 확대한 것은 기존 해외파병부대 국회동의안에 따른 정책적인 결정이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청해부대 파병 동의안에 파견 지역은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일대라고 명시했지만, 같은 동의안에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 지시되는 해역까지 포함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임무지역 3.5배 확대…아덴만서 페르시아만까지=정부의 결정에 따라 청해부대 31진으로 4400t급 한국형 구축함인 왕건함(DDH-978)이 이날부터 30진 강감찬함(DDH-979)과 임무를 교대해 투입된다.
2005년 진수된 왕건함은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의 4번함으로, 최고속력 30노트(시속 약 55㎞)로 달릴 수 있는 스텔스 기술 적용 방공 구축함이다.
한국형 미사일 수직발사시스템(KVLS)를 탑재하고 있다. 아울러 천룡 순항미사일, 잠수함 작전용 홍상어 유도탄(장거리 대잠어뢰)와 청상어 경어뢰, 대함용 해성 순항미사일과 대함 근접방어 미사일(RAM), 해상 대공방어용 유도미사일 SM-2, 30㎜ 근접방어무기 골키퍼, 5인치 함포 등의 무장체계를 갖추고 있다.
적 대함미사일이 10~15㎞에 도달하면 SM-2를 발사해 요격하고, 3~9㎞ 범위에 들어오면 램 근거리 대공미사일에 의한 요격을 시도한다. 적 미사일이 이 램 방어방까지 뚫었다면 30㎜ 골키퍼가 최종 요격을 시도한다.
레이더 시스템은 최대 탐지거리 480㎞인 대공용 AN/SPS-49(V)5 2차원 대공레이더, 탐지거리 30㎞인 MW-08 3차원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사격통제용 시그널 STIR 1.8 사격통제 레이더, SM-2 요격 미사일을 위해 2기의 STIR 2.4 시스템을 장착한다.
특수전(UDT) 장병으로 구성된 검문검색대와 해상작전 헬기(링스)를 운용하는 항공대 장병 등 300여명으로 구성됐다.
왕건함은 이날 17시 30분 강감찬함과 임무를 교대하고 작전에 투입된다. 작전은 왕건함 함장 황종서 대령의 지휘로 이뤄진다.
국방부는 호르무즈 인근에서 활동하는 군함들이 각각 자국 선박을 경호하고 있으며, 왕건함 역시 한국 선박 안전을 위해 활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사시 다른 나라의 요청이 있으면 지원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해부대 역시 전과 비교해 4배나 넓어진 해역을 경호해야 하는 만큼 유사시 타국 군함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다른 나라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자국 선박만을 호송한다"면서 다만, IMSC가 요청하면 "청해부대는 능력과 제한사항 범주 내에서만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왕건함은 호르무즈 해협 일대 임무 수행에 대비해 어뢰 등 대잠무기와 무인기 및 항공기 위협에 대비한 대공무기, 수중 위협에 대응해 음파탐지 센서 등을 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해부대는 호르무즈 일대 위협이 해소될 때까지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