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주소현 기자] 유럽연합(EU)이 2년 넘게 끌고 온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심사를 끝내 불허했다. 여러 나라에 발주처를 두고 있는 조선업 특성상 기업결합시 다른 국가의 경쟁심사가 수반돼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간 인수·합병이 유럽의 규제당국에 의해 무산된 셈이다. EU의 이번 결정에는 유럽 발주사들의 피해를 우려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옴에 따라 ‘자국 우선주의’ 논란도 재점화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EU법원을 통한 시정요구 등 가능한 대응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3일 EU 집행위원회가 공개한 발표문을 보면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Margrethe Vestager) 경쟁담당 부위원장은 이를 통해 “이번 합병이 통과될 경우 대형 LNG(액화천연가스)선 건조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발생시켰을 것이고 유럽 고객들에게는 선택의 폭을 좁히는 한편 단가 상승과 혁신의 감소를 유발했을 것”이라며 “양사는 이같은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할 만한 공식적인 구제책을 제출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합병은 승인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EU가 요구한 구제책은 의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애초부터 양사가 수용하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EU가 처음부터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승인에 대한 조건으로 걸어 부결에 대한 ‘명분(?)’을 쌓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베스타게르 부위원장은 “EU 경쟁당국의 역할은 시장의 지배적 참여자들이 경쟁 환경과 비지니스 고객에 해를 끼치는 걸 제어하는 것”이라며 “EU는 지난 10년동안 3000건 이상의 합병을 성사시켰고, 대부분의 합병은 문제가 되지 않았거나 경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의 미승인 결정은 지난 10년 간 열번째로 합병이 무산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EU는 정보 제공에 대한 양사의 미온적 태도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했다. 베스타게르 부위원장은 “이번 조사는 2019년 11월에 시작됐고 양사는 위원회가 요청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조사가 여러차례 중단된 바 있다”며 “그럼에도 위원회는 양사와 이해관계자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로 조사를 이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원회는 한국과 일본의 공정거래위원회와도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해왔고, 양사로부터는 방대한 규모의 자료를 제공받아 이를 검토했으며 경쟁사와 고객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로부터도 상당한 피드백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형 LNG선 건조의 전세계 시장은 지난 5년간 약 400억유로에 달하는데, 전체 발주량의 절반 가량이 유럽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심사가 중요했다”며 “심층 평가를 통해 이번 합병으로 대형 LNG선 시장의 경쟁이 크게 줄어들 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번 EU 결정에 대해 “비합리적이고 유감스럽다”는 입장이다. 또 독점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시장점유율이 아닌 유효한 경쟁자 수를 봐야되는데 EU가 이를 간과했다는 주장이다. 현재 LNG선 시장의 경우 국내의 삼성중공업과 중국의 후동조선소, 일본의 미쓰비시·가와사키, 러시아 즈베즈다 등의 양사 말고도 복수의 업체들이 존재한다. 특히 LNG선 건조를 위해서는 LNG화물창 기술이 가장 중요한데 이에 대한 기술력은 GTT(프랑스), 모스 마리타임(노르웨이) 등 유럽 회사들이 갖고 있어 신규 진입이 어렵다면 이들 기업들에개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