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노동부 ‘52시간제 개편’ 발표 하루 뒤 “정부 공식 발표 아냐”
경찰 인사에 대해서도 尹 대통령 ‘공무원으로서 안될 국기문란’ 격앙
대통령실-정부 내 원활한 소통 미흡 가능성… 尹 지지율 ‘데드크로스’도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취임 두달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 내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경제부총리까지 참관한 노동부 장관의 ‘52시간제 개편’ 발표에 윤석열 대통령이 하루 뒤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고, 경찰 인사에 대해선 ‘국기문란’이라는 격앙된 반응도 내놨다. 윤 대통령은 경제 위기 해법에 대해선 ‘해법이 없다’고 했고, 제2부속실 설치에 대해선 ‘대통령이 처음이라 잘모르겠다’고 했다. 여야는 문재인 정부 기간 있었던 ‘대북 문제’로 싸우고 있고, 집권 여당은 대표와 최고위원이 싸운다. 당 내부에선 ‘놀고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 오전 출근길에 ‘52시간제 개편’ 방침에 대한 질의에 “글쎄, 내가 어제 보고를 받지 못한 게 아침 언론에 나와 확인해보니, 노동부에서 발표한 게 아니고 부총리가 노동부에다가 아마 민간 연구회라든가 이런 분들의 조언을 받아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해 좀 검토해보라’고 이야기해본 사안”이라며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날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발표하며 “주 최대 52시간제의 기본 틀 속에서 운영 방법과 이행 수단을 현실에 맞게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될 경우 현행 주52시간 대신 한주에 최장 92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하다는 계산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세운 ‘노동시간 유연화’가 정부 발표안에 담겼다는 분석이었다. 윤 대통령은 후보시절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는 사회’를 언급한 바 있다.
노동부의 발표에 사용자측은 ‘환영’ 입장을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주52시간제 보완, 직무·능력을 중심으로 공정한 임금체계가 마련된다면 기업들이 산업현장 내의 예상치 못한 변수에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양한 방식으로 근무하는 근로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뿐만 아니라 취업시장에서 소외됐던 청년들과 여성들을 위한 더 많은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도 논평을 내고 “경제 위기 대처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의 깊은 고민과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판단된다”며 “특히 연장 근로시간 총량을 월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은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인한 기업과 근로자의 애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돌연 윤 대통령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밝히면서 노동부측은 당혹스러운 상태에 빠졌다. 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3일 있었던 이 장관의 발표를 지켜봤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노동부가 발표한 게 아니다’고 말하면서 노동부의 발표 아니라는 말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모호해졌고, ‘대통령이 보고받지 못했다’는 말도 그렇다면 누가 해당 발표를 결정했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노동부 장관의 ‘52시간제 발표’에 제동을 걸면서 ‘보고를 받지 못한 것이 언론에 나왔다’고 한 사례는 바로 전날 있었던 경찰 인사에 대한 발언과도 맥이 닿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 23일 출근길에 경찰의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과 관련 “아주 중대한 국기문란, 아니면 어이없는,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과오”라며 “아직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고 행정안전부에서 또 검토해서 대통령에게 의견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인사가 밖으로 유출되고, 이것이 또 언론에 마치 인사가 번복된 것처럼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23일과 24일 연이틀 윤 대통령의 발언만 놓고 보면 노동부의 ‘52시간제 개편’ 발표 역시 대통령의 재가 없이 경제부총리 또는 노동부 장관의 결정으로 발표했고 같은 맥락이라면 ‘52시간제 개편’ 발표 역시 ‘국기문란’이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경찰 인사와 관련해선 경찰측은 ‘관행적으로 이뤄져오던 것’이라는 주장인 반면, 행안부 장관 측은 “경찰청이 희한하게 대통령 결재 나기 전에 자체적으로 먼저 공지하더라. 그래서 이 사달이 생겼다”고 밝혔다.
‘취임 허니문’ 기간이 아니었다면 논란이 됐을 언급도 윤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2부속실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엊그제 봉하마을도 비공개인데 보도가 된 걸로 알고 있다”면서 “모르겠다.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공식-비공식 이걸 어떻게 나눠야 할지”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의 ‘비선 의혹’에 대해선 “언론에 사진 나온 분은 저도 잘 아는 제 처의 오래된 부산 친구”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다’는 발언에 대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2일 “이런 얘기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얘기다. 대통령은 다 처음해보는 거다. 대통령을 경험해보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며 “윤 대통령이 정치를 그렇게 오래 했던 분이 아니고, 한 1년 여 정치에 참여해 대통령이 되신 분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쓰는 말에 대한 익숙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마다 기자들이 출근길에 질문을 하면 별로 생각하지 않고 툭툭 뱉는 답변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에는 ‘주담대 금리가 8%에 임박하고 가계부채가 1900조원에 육박하는데 진단과 구체적 해법·시기는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고물가를 잡기 위한 전 세계적인 고금리 정책에 따른 자산가격의 조정 국면이기 때문에, 이걸 우리 경제정책 당국이라고 해서 여기에 대해 근본적인 해법을 내기는 어렵다”며 “하여튼 리스크 관리를 계속해나가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에도 인플레이션 해법을 묻는 질문에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도는 없다”고 말했다.
집권 여당은 ‘내분’ 중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은 지난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만났다. 그러나 배 최고위원이 내민 손을 이 대표가 애써 밀어내면서 민망한 모습이 연출됐다. 이 과정에서 배 최고위원이 이 대표의 손목까지 잡았지만, 이 대표는 이를 뿌리쳤다. 배 최고위원이 다른 회의 참석 인사들과 인사한 후 자리로 돌아오며 이 대표의 어깨를 툭 쳤지만, 이 대표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 장면은 국민의힘 공식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등을 통해 그대로 생중계됐다.
둘의 싸움은 비공개 회의 때도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배 최고위원이 조직위원장 공모와 관련해 공천 얘기를 꺼냈고, 이 대표는 조직위원장 임명과 공천은 별개의 얘기라고 지적했다. 배 최고위원은 이 대표를 향해 “좋은 얘기를 하면 대표가 들으라”고 말했고 이 대표가 “어디다 지적질이냐”고 반발했으며, 배 최고위원이 따지는 등 설전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은 지난 24일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꿈’에서 한 지지자가 이 대표와 배 최고위원의 악수 거절 및 ‘찰싹’ 동영상을 게재하며 ‘이 장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라고 묻자 “놀고 있네”라고 한줄 평을 남겼다.
한편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평가는 2주 연속 하락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21∼23일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물은 결과, 윤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7%,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38%인 것으로 나타났다. 2주 전 같은 조사에서 53%였던 윤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지난주 49%로 4%포인트 떨어졌고, 이번 주에도 2%포인트 하락했다. 부정 평가는 2주 전 조사의 33%에서 지난주 38%로 5%포인트 올랐고 이번 주에는 같은 수치를 유지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긍정적이라는 응답보다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된 여론조사도 있다. 뉴스핌이 알앤서치에 의뢰해 지난 18~21일 전국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2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지난 여론조사 대비 4.9%포인트 하락한 47.6%로 나타났다. 부정평가는 지난 조사 대비 4.9%포인트 오른 47.9%였다. 긍정과 부정 평가의 '데드 크로스' 현상이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지난 5월 10일 취임한지 43일만이다. 잘 모른다는 응답은 4.6%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