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유찰에 조합들 보류지 최저입찰가 하향 조정
올해 초 대비 1억원 낮췄지만…가격 메리트 없어
가격 하락장에 서둘러 물량 털어내자는 심리 읽혀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부동산 경기가 약세장으로 돌아서면서 고공행진을 했던 정비사업 보류지의 몸값도 꺾였다. 반복되는 유찰에 최저 입찰가를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까지 낮추는 모양새다. 집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털어내자는 조합의 심리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류지는 사업시행자인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조합원의 지분 누락·착오 발생, 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해 일반분양을 하지 않고 남겨두는 물량으로 통상 전체 가구 수의 1% 이내다.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현대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지난 25일 ‘태릉 해링턴플레이스’ 보류지 12가구에 대한 매각공고를 다시 냈다. 전용면적 59㎡의 최저 입찰가격은 9억원으로 올해 3월 매각 당시보다 3000만원 저렴하다. 전용 74㎡와 84㎡도 각각 10억6000만원, 12억6000만원으로 입찰기준가를 4000만원씩 낮췄다. 전용 84㎡의 지난해 8월 최고 거래가가 13억5000만원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1억원가량 낮은 수준이다.
그보다 일주일 앞서 매각공고를 낸 은평구 응암동 응암2구역 재개발조합의 상황도 비슷하다. 조합은 ‘녹번역 e편한세상캐슬’ 보류지 잔여분인 전용 59㎡ 1가구를 9억3000만원에 다음달 5일까지 입찰한다. 지난 4월 첫 매각 때(10억3000만원)보다 입찰가를 1억원 내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해당 평형 아파트는 지난 4일 9억5000만원에 거래됐고 지난해 5월에는 11억8500만원에도 손바뀜된 바 있다. 최고가와 비교해 2억5500만원 낮은 가격에 입찰대에 오른 셈이다.
최근 조합들이 줄이어 보류지의 최저입찰가를 하향 조정하는 것은 지난해 말부터 계속되는 거래절벽에 매물이 적체되면서 시세가 그만큼 떨어졌기 때문이다. 보류지는 가격이 통상 시세와 비슷하거나 다소 낮게 책정돼 상승장에선 비교적 저렴하게 집을 마련할 기회가 되는데 청약과 달리 자격조건 없이 입찰할 수 있어 새 아파트 공급이 부족한 지역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그러나 하락장에서는 시세와 비슷한 수준의 입찰가로는 메리트가 없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추가 하락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수요자로서는 입찰경쟁에 뛰어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시세가 뒷걸음질치면서 매매가가 최저입찰가보다 저렴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KB부동산에 따르면 현재 태릉 해링턴플레이스 전용 84㎡의 호가는 보류지 매각가보다 6000만원 낮은 12억원부터 형성돼 있다. 녹번역 e편한세상캐슬 전용 59㎡도 9억원짜리 매물이 여러 건 나와 있다. 이에 두 조합이 입찰기준가를 더 낮추지 않는 한 보류지 매각이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부동산 가격 하락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보류지 매각가를 낮춰서라도 남은 물량을 털어내려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남 등 일부 인기지역의 경우 여러 차례 유찰에도 높은 입찰가를 고수하는 분위기지만 시장의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어 조합 보유분이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거래절벽으로 매수자가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해 급매물보다 싼 급급매 위주로만 간간이 거래되고 있는데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에 정부의 규제완화도 기대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상황”이라며 “경기 침체 가능성이 낮아지거나 거래량이 과거 평균 수준으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지금의 약세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