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법원 경매시장 아파트·빌라 크게 늘어
매매시장 침체로 경매로 넘어오는 물건 증가
낙찰률·낙찰가율 2013년 수준으로 하락
“고금리로 경매시장도 매수세 줄어 하락세 지속”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 경매4계. 아파트 12채가 경매에 나왔으나 단 1건만 낙찰됐다. 요즘 경매시장에선 서울 강남권에도 아파트 물건이 느는데 응찰자가 없어 대부분 유찰된다. 유일하게 낙찰된 건 이미 두 차례나 유찰돼 감정가의 64%를 최저가로 경매가 진행된 서초구 반포동 S아파트 전용면적 190㎡. 감정가 19억6000만원인 이 아파트의 최저 입찰 가능가격은 12억5440만원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이번에도 응찰자는 거의 없었다. 단 1명이 최저 입찰가보다 11만원 높은 12억5455만원에 응찰해 새 주인이 됐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64%였다.
요즘 수도권 경매시장에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는 주택 물건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매매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경매로 넘어오는 물건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만해도 감정가 수준에서 낙찰되던 물건이 이젠 응찰자가 없어 1~2차례 유찰되는 건 기본이다. 경매 물건은 유찰되면 최저 입찰 가능가가 떨어져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물건은 늘어난다. 하지만 응찰자는 여전히 별로 없어 낙찰률(경매 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은 계속 밑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다.
2일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경매법원에 나온 아파트 물건은 162건으로 전월(107건)보다 51% 늘었다. 월간 기준 2016년 11월(171건) 이후 가장 많은 아파트 물건이 경매에 나오고 있다.
경기도 아파트 경매 물건도 지난달 321건으로 전월(321건)보다 26%나 증가했다. 인천도 131건으로 전월(61건)에 비해 114%나 폭증했다.
이런 추세는 빌라도 마찬가지다. 11월 경매시장에 등장한 서울 빌라(다세대·연립) 물건은 모두 700채로 전월(591채)보다 18% 늘었다. 경매가 진행된 빌라 물건 수는 올 1월 260건, 4월 342건, 7월 413건 등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경기도 빌라는 10월 424건에서 11월 478건으로, 인천 빌라는 193건에서 268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경매시장에 물건이 늘어나는 건 은행 등 채권자들이 매매시장에서 처분하지 못하는 담보 물건을 경매로 넘기기 때문이다. 최근 주택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급매로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경매에도 아파트와 빌라 물건이 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경매 참여자들은 이젠 웬만하면 감정가 수준에선 사려고 하지 않는다. 한 두 차례 유찰되길 기다렸다가 입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낙찰률과 낙찰가율은 하락추세가 뚜렷하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낙찰률은 14.2%로 지지옥션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1년 1월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법원이 열리지 않았던 2020년 3월(10%)을 제외하고 역대 가장 낮았다. 경매시장에 서울 아파트 10채의 경매가 진행되면 1건 조금 넘게 낙찰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경기와 인천 아파트 낙찰률도 40.8%, 22.9%를 각각 기록해 낮은 수준을 보였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83.6%까지 떨어졌다. 2019년 3월(82.7%)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경기 아파트 낙찰가율(78,9%)은 2013년 8월(78.4%) 이후, 인천 아파트 낙찰가율(69.75%)은 2014년 6월(53.7%) 이후 각각 가장 낮았다.
집값이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유찰된 물건만 찾으면서 입찰 가능 최저가 수준으로 응찰하는 사람이 많으면 낙찰가율은 계속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매매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한 경매시장에 물건은 계속 쌓일 수밖에 없다”며 “금리인상 기조로 고금리가 유지되면서 경매시장에서도 매수세가 줄어든 상황이기 때문에 낙찰률, 낙찰가율 하락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