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지난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은행서 잠자던 자금들이 깨어나고 있다. 시중 금리가 떨어지면서 그도안 은행에서 잠자던 뭉칫돈이 최근들어 급격하게 빠져 나가고 있는 것. 이에 최저점으로까지 떨어졌던 예금회전율이 반등하는 등 경색됐던 투자심리가 다소 완화되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은행서 잠자던 ‘뭉칫돈’ 이탈…투자 심리 회복?
5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1월 말 기준 요구불예금(MMDA 포함) 잔액은 588조6000억원으로 전월(624조5000억원)과 비교해 약 36조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요구불예금은 고객이 언제든 넣고 뺄 수 있는 수시입출금식 예금으로, 통상 대기성 자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주식·부동산 등 마땅한 투자처가 보장되지 않으면 요구불예금 잔액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요구불예금 감소세가 나타났다는 건 특정 분야의 투자 심리가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에도 은행권 요구불예금이 줄기는 했지만, 최근 양상과는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해에는 대부분의 대기성 자금이 정기예금으로 흘러가 사실상 시중 자금 대부분이 은행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5%를 넘었던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가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3% 대까지 떨어지면서 정기예금에서의 자금 이탈 현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약 812조원으로 지난해 11월 말(818조)에 비해 15조원 가량 줄었다.
돈 도는 속도↑…“자산시장 회복, 섣부른 판단 배제해야”
이는 지난해 말부터 은행권으로부터 자금이탈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 신호 중 하나로 요구불예금의 회전율도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반등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16.9회로 전월(14.5회)에 비해 늘었다.
예금 회전율은 금융기관의 예금이 일정한 기간에 평균 몇 번 회전했는가를 뜻한다. 즉 요구불예금의 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돈이 돌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며 주식·부동산 등 주요 투자처의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에서 10월까지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14.1~14.7회 수준을 유지했었다.
통상적으로 경제의 활력과 돈이 도는 속도는 비례한다. 따라서 최저 수준을 유지하던 요구불예금 회전율이 반등했다는 것은 투자 심리를 비롯한 경제 활력이 살아나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말부터 기준금리 정점론이 대두되며, 투자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 코스피 지수는 약 8.45% 상승하며 랠리를 이어갔고, 개인 투자자들의 뭉칫돈이 채권으로 흘러가는 등 투자심리가 살아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투자 심리 회복세가 지속해서 나타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집계된 요구불예금 회전율(16.9회) 또한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말(20.3회)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인 데다,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요구불예금 회전율이 늘어나고, 은행에 묶인 예금이 줄어든다는 것은 자산시장 활성화에 긍정적인 신호”라면서도 “그간 회전율 자체가 최저점을 기록했기 때문에 일종의 기저효과가 나타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섣부른 판단을 하기보다는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