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패배 ‘책임론’ 공방에도
‘이재명 체제’로 빠른 전환
‘단일대오’ 전략에 불만 누적
일부 개딸 ‘폭력적’ 행태에
“다른 목소리 못 내” 위기감↑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로 확인된 ‘무더기 이탈표’ 후폭풍이 민주당을 휘감고 있다. 여기에 앞서 기소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첫 공판이 3일 시작되는 등 ‘사법 리스크’가 본론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이재명)과 비명(비이재명)계 간 계파 갈등 골이 나날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민주당 지도부가 안간힘을 쓰며 표방했던 ‘단일대오’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통제불능’, 균열상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대선 직후부터 이재명 대표의 원내 입성, 전당대회 출마와 당 대표 선출까지 민주당이 빠르게 ‘이재명 체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생긴 상흔이 곪아 터진 것이란 분석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3월 대선 패배 이후 ‘책임론’ 공방 또는 쇄신작업을 진행할 새 없이 곧바로 6·1 지방선거 대비 체제로 돌입한 바 있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이 인천 계양을에 전격 출마를 결정하면서 파장을 키웠다. 당 일각이 대선 패배 책임 ‘당사자’로 지목한 이 대표 출마가 적절치 않았단 지적이다.
당시 이 대표는 “대선패배 책임을 타개하는 것도 전적으로 제 책임이다”라는 일성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당내에서조차 이 대표가 대선 패배 두 달만에 빠르게 정치 전면에 복귀,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비연고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을 두고 “명분 없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일각에선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 등 자신을 향한 수사를 앞두고 원내에 있는 것이 방어권 행사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해석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에 패배했지만 이 대표는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곧바로 이 대표는 8월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는 속도전을 펼쳤다. 이 대표는 또 “패배에 책임지고 이기는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만 이 대표 출마 자체에 대해 갈린 찬반 여론은 물론, 전당대회 룰을 둘러싸고도 이 대표에 유리한 구도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명계 경계 목소리가 지속됐다.
전당대회 결과 ‘친명 쏠림’ 지도부가 구성된 이후 당의 ‘다양한 목소리’가 소멸되고 있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특히 검찰의 소환조사 요구, 구속영장 청구, 체포동의안 표결, 기소 및 재판 등 이 대표 사법 리스크가 단계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한 목소리’ 만을 강조한 지도부에 대한 불만도 누적됐다.
물밑에서 들끓던 균열이 본격화된 시점은 검찰이 민주당사와 국회 본청 당대표실 등에 전방위적인 압수수색 등에 나선 지난해 말부터다. 당장의 ‘침입’에는 함께 맞섰지만 사법리스크 현실화에 대한 공포감이 급격히 커진 시점으로 분석된다.
이어 리더십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새해를 맞아 이 대표와 마주한 자리에서 ‘교토삼굴(狡兎三窟, 꾀 있는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는 뜻의 사자성어)’을 이야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2일 권노갑 상임고문이 이 대표를 만나 “이번에는 우리가 뭉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겠지만, 다음번엔 민주당 대표로서 선당후사 정신을 발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 민주당 원로 정치인들의 조언도 이어졌다.
다소 과격한 ‘개딸(개혁의 딸, 이 대표 강성지지층)’ 행태도 비명계 불만을 극대화한 요인이다. 개딸들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견제 발언 또는 행위를 한 의원들을 향해 좌표찍기, 전화·문자폭탄을 쏟아내고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은어)을 색출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SNS 상에서는 다음 총선에서 심판하자며 의원 40여 명의 이름과 지역구를 나열한 ‘살생부’도 나도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다짜고짜 전화해서 욕설부터 하고,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면서 “특히 여성 보좌진에게로 쏟아지는 욕설과 막말이 도를 넘고 있어 감정노동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내 ‘민주적 의사결정’이 위협받는다는 것이 비명계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한 비명계 재선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생각의 차이를 어떻게 대하고 조정하고 합의하는지가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건강함을 판단하는 척도인데, 방화벽을 치고 이 대표만을 지키자고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원칙에 반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계속해서 민주당이 ‘방탄’하다 보면 수렁에 빠진다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의식인데, 이재명 대표가 소통만 강화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 그 내용이 중요하다”면서 “당 대표직에서 사퇴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대표직을 유지하더라도 본인의 사법 문제와 당을 분리하겠다는 확실한 선언과 같은, 국민들이 보기에 확실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