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 1900조 유동자금 넘쳐나지만 소비·투자·고용 선순환 역할 못해 美경기회복 韓수출 증가 직결 안돼 ‘실업률 하락=물가 상승’은 옛말

[데이터랩] “교과서는 잊어라”…돈은 풀리는데 물가는 그대로

“교과서는 잊어버려라!”

저성장 시대를 맞아 각종 지표들의 움직임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통화팽창을 불러왔지만,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기는커녕 물가 하락을 우려할 정도다.

뿐만 아니다. 실업률 하락은 수요 증가를 불러오면서 물가를 자극하기 마련인데 이런 분석은 고전(古典)이 돼 버렸다.

그렇다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으로 힘이 실리고 있는 미국의 경기회복이 한국 경제와 수출에 활력소가 될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자국(自國)의 경제가 중요한 상황에서 미국이 되레 보호무역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 교과서와는 다른 요인이다.

이같은 분석의 중심에는 저성장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과거 고성장 시대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잊어야 하는 이유다.

시중에 유동성은 넘쳐나지만 돌아다니는 돈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M2(광의통화ㆍ평잔기준)는 2010년 1639조6751억원에서 2011년 1708조9845억원, 2012년 1798조6257억원에 이어 지난해 10월 1908조5576억원으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돈이 풀리면 물가상승이 뒤따른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12년 11월 이후 1%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0.9% 상승에 그치기도 했다. 한은 관계자는 “지금 한국이 저물가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시차를 두고 양적완화의 영향(물가상승)이 나타날지 아니면 구조적 침체에 빠질지 좀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양적완화와 가계부채 증가로 시중에 돈은 많이 풀렸다. 그런데 이 돈이 소비와 투자, 고용의 선순환 고리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갈 곳을 찾지 못한 돈이 어딘가에 고여있는 것이다.

<이슈데이터.> “교과서는 잊어라”…돈은 풀리는데 물가는 그대로

실업률과 물가 간의 전통적인 상관관계도 이미 깨졌다. 통상 실업률이 낮을 때 수요가 늘어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가해지고, 실업률이 높으면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고희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실업률이 낮아지는 가운데 물가상승 압력도 둔해졌다”고 분석했다.

2013년 11월 현재 우리나라의 공식 실업률은 2.7%로 완전고용에 가깝다. 그런데 물가는 왜 바닥일까?

고 연구위원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실업자가 저성장 시대를 맞아 아예 구직을 포기하면서 공식 실업률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물가는 어찌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란 것이다. 화려한 지표에 가려진 저성장의 이면은 속빈 강정인 셈이다.

<이슈데이터.> “교과서는 잊어라”…돈은 풀리는데 물가는 그대로

테이퍼링은 미국 경기회복 자신감의 표현이다. 또 미국의 호황은 우리의 호황이었다. 김주형 트러스톤자산운용 AI본부장은 “세계 각국이 수출로 경기회복을 노리고 있다”면서 “미 경기회복이 한국의 수출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위안화 절상은 우리의 수출경쟁력 강화 요인으로 꼽혀왔다. 중국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원자재나 자본재를 들여와 국내에서 최종 생산품을 만드는 한국 기업에겐 악재다. 위안화 절상은 우리 기업에게 원가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가와 환율 간 상관관계도 엷어졌다. 외국인의 주식 자금 유입으로 주가와 원화 가치의 동반 상승이 예상됐지만 주가와 환율은 남의 식구가 돼 버렸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은 물가상승에 매진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자산가치 하락을 불러오면서 금융기관의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을 촉발시킬 수 있어 더 위험하다. 과거 물가상승은 공공의 적이었는데 이제는 세계 각국의 정책목표가 물가상승이 돼 버렸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

M2(광의통화)는?=협의통화(M1)에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예적금, 수익증권,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표지어음, 2년 미만 금융채와 금전신탁, CMA 등을 합한 것이다. M1은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