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이 향후 몇년 간 일본에 최대 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견고해지는 미국-일본-대만 3대 반도체 동맹에서 한국의 자리가 점차 좁아지는 모양새다.
한국 정부는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직접 글로벌 반도체 기업 수장들을 초청해 러브콜을 보내는 등 자국 내 투자 유치 확대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18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전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7개 외국 대형 반도체 기업들 대표와의 면담에서 “범정부적으로 (외국 기업이) 대일 직접 투자를 한층 더 늘리게 하고,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전세계 ‘반도체 어벤저스’를 한자리에 모았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미국의 IBM·인텔·마이크론 테크놀로지·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종합반도체 연구소인 벨기에 IMEC(아이멕)의 대표들이 면담에 참석했다.
특히, 미국 마이크론은 이날 깜짝 선언을 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몇 년간 일본에 최대 5000억엔(약 5조원)을 투자해 히로시마 공장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에서 최초로 극자외선(EUV)를 활용한 생산에 나서는 사례라고 마이크론은 강조했다. 마이크론은 ASML로부터 최첨단 EUV를 도입해 2026년께부터 일본에서 1감마 공정의 D램을 생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론은 일본 히로시마 공장 ‘팹15’에서 전체 D램의 30%를 생산하고 있다. 대만 공장 다음으로 많은 수준이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9월 히로시마 공장에 인근에 새로운 D램 설비를 추가로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정부가 투자액 1조3800억원 중 4600억원을 지원한다.
이번 면담에서 공개된 마이크론의 장기 투자 발표로 미국-일본 반도체 동맹은 더욱 견고해지게 됐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마이크론의 이번 투자에 2000억엔, 한화 2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전세계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무서운 기세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인텔, 대만 TSMC 등 주요 기업들을 교두보 삼아 미국과 대만과의 반도체 동맹을 결성했다.
대만 TSMC는 일본 구마모토에 반도체공장을 건설 중이며, 제2 공장 건설 계획도 발표했다. 일본정부는 TSMC 공장 건설에 보조금 4760억 엔(약 4조6000억 원)을 지원했다. TSMC는 이바라키현에도 R&D센터를 만들고 있다. 미국 인텔도 일본에 R&D 거점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은 경기도 용인시에 세계 최대 규모 시스템반도체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하며, SK하이닉스도 용인시 원삼면에 120조원을 들여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한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아직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공식적인 투자 계획이 발표되지 못했다. 150여개 소부장 기업 등을 유치하고 있지만, 조 단위의 투자 발표는 아직 요원하다.
업계 관계자는 “총리가 전세계 반도체 기업 수장들을 끌어모을만큼 일본의 반도체 역량 강화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며 “전세계 반도체 생산 중심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총력을 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