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 충전구역 주차시간 두고 설왕설래
EV·PHEV, 충전 안 하고 주차만 단속 못 해
“주차시간 아닌 충전 여부로 단속을” 지적도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 경기도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는 퇴근 때마다 ‘주차 전쟁’을 치른다. 고속도로 통행요금 할인과 아파트에 제법 잘 갖춰진 충전 시설 등을 고려해 올해 전기차를 한 대 구매했지만, 매번 충전 후에도 버젓이 충전구역을 지키고 있는 일부 입주민들 탓에 머릿속에 그렸던 편의성은 ‘그림의 떡’이 된 지 오래다.
8일 주요 포털 친환경차 관련 카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 전기차 충전구역을 이용하는 방식을 두고 순수전기차(EV) 차주들과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주들 간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순수전기차 차주들은 “상대적으로 배터리 충전시간이 짧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이 동일하게 14시간(완속충전구역 기준) 충전구역에 주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이냐”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사실상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를 차등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갈등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 분위기다.
친환경차 주차구역은 크게 ▷친환경차 전용주차구역 ▷전기차 충전구역으로 나뉜다. 친환경차 전용주차구역은 순수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물론 수소전기차, 충전 방식이 아닌 일반 하이브리드차량 모두 이용할 수 있다. 반면, 전기차 충전구역은 외부 전기 공급원으로부터 충전되는 전기에너지를 활용하지 않는 일반 하이브리드차는 주차를 할 수 없다.
순수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차주들 간 갈등은 차량의 구동방식 차이가 발단이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친환경자동차법)에 따르면 하이브리드자동차란 휘발유·경유·액화석유가스·천연가스 또는 산업통상자원부령으로 정하는 연료와 전기에너지(전기 공급원으로부터 충전받은 전기에너지를 포함한다)를 조합해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다시 말해 엔진과 전기모터를 모두 갖춘 자동차다.
국내 시장에서 판매량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 ‘그랜저’와 준중형 세단 ‘아반떼’, 기아 중형 SUV ‘쏘렌토’의 하이브리드 모델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는 한 단계 더 진화한 방식으로 충전이 가능하다. 일반 하이브리드 모델과 마찬가지로 주행 중 충전은 물론 전기차와 같이 충전기를 활용한 충전이 모두 가능하다. 가장 큰 특징은 순수 전기차 모드로 주행하다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더라도 일반 엔진 동력으로 주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토요타가 출시한 준중형 SUV ‘RAV4 플러그인하이브리드’의 경우 2.5ℓ 4기통 엔진에 전·후륜 모터가 조합돼 있다. 18.1㎾h의 고용량 리튬-이온 배터리가 탑재, 완충 시 최대 63㎞까지 전기차 모드로 주행이 가능하다.
이처럼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가 일반 내연기관 차와 전기차의 이점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배터리 용량에서는 순수전기차와 큰 차이를 보인다. 순수전기차의 경우 전기모터의 힘으로만 달리는 만큼 소형 SUV 모델에도 대부분 60㎾h 이상의 배터리가 탑재된다. 최근 기아가 출시한 대형 전기 SUV ‘EV9’의 배터리 용량은 99.8㎾h에 달한다.
때문에 충전 시간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RAV4 플러그인하이브리드의 경우 완속 충전기 사용 시 완충까지 2시간 47분이 소요된다. 반면 현대차 순수전기차 ‘아이오닉 5’의 경우 7W 완속충전기로 8~10시간가량 소요된다.
일각에서는 친환경차 관련 애매한 규정이 이 같은 갈등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찬환경자동차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급속충전구역에서 1시간, 완속충전구역에서 14시간 이상 주차할 경우 충전방해 행위로 간주해 과태료(10만원)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단속 기준을 ‘충전 여부’가 아닌 ‘주차 시간’으로만 한정하면서, 충전을 하지 않고 14시간을 꼬박 주차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시간 30분가량 충전을 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주도 12시간반 가량을 더 주차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 전기차 차주는 “최근 공무원으로부터 충전구역 주차 문제에 관해 민원을 제기했지만,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위한 규정’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정작 충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충전기를 제대로 이용할 수도 없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법과 규정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