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쓰레기 문 앞에 안 내놓으니까 너무 좋죠. 지저분하고 지나가는 차에 밟혔는데…”
단독 및 다가구 주택이 즐비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골목길. 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일방통행 길이지만 거리는 깔끔했다.
집집마다 대문 앞에 내놓는 쓰레기가 없어서다. 낮 시간이라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지 않았다고 감안해도 흔한 음식물쓰레기통조차 없었다. 쓰레기가 없어진 자리는 녹색의 화분들이 대신해 골목의 풍경을 더했다.
골목에서 사라진 쓰레기들은 ‘재활용 정거장’에 있다. 재활용 정거장은 병류와 캔류, 종이류, 플라스틱, 투명 페트병과 비닐류로 구분된 배출함과 음식물쓰레기통, 의류수거함 등을 모아둔 거점으로 영등포구에서 운영하고 있다.
재활용 정거장에 대한 주민들의 만족도는 대체로 높았다. 주민 김모(51) 씨는 “주말이나 특히 명절만 되면 집 앞에 스티로폼 박스며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며 “종류 별로 버릴 수 있고 가까워서 재활용 정거장에 쓰레기를 버린다”고 말했다.
자체 쓰레기 및 재활용 분리배출장을 갖추고 있는 아파트와 달리 주택가에서는 쓰레기 분리배출이 늘 골칫덩어리였다. 쓰레기 배출 장소가 바로 ‘내 집(상가) 앞’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전 배출’ 방식은 미관이나 위생 문제를 차치하고도 분리배출에 한계가 있다.
가정에서 일일이 분리 배출하기에 쓰레기 양이 많지 않아 종량제봉투에 넣지 않는 페트병이나 캔, 병 등을 한데 담아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다. 나눠 버린다고 해도 수거 과정에서 다시 뒤섞였다.
2021년 말부터 단독 및 연립 주택, 빌라에서도 비닐과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이 의무화됐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나 몇년 새 사정이 달라졌다. 당장 2026년부터 수도권에서 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되면서 서울시 안에서 소각해야 할 쓰레기가 1000t 늘어났다. 재활용할 수 있는 쓰레기는 최대한 분리해 일반쓰레기를 줄여야 할 시급한 이유가 생긴 셈이다.
이에 서울시는 단독주택 등에 분리배출 인프라 확충하고 있다. 이날 발표한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 종합대책을 통해 재활용 분리배출 거점을 현재 1만3000여 개에서 2026년까지 2만 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단순히 재활용 정거장 수가 늘어난다고 분리배출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재활용 정거장이 설치돼 있더라도 문 앞에 쓰레기를 내놓는 것도 여전히 허용되기 때문이다.
문 앞에 쉽게 쓰레기를 내놓기보다 거점으로 쓰레기를 가져올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접근성을 높이는 게 필수다.
영등포구 신길동 주민들이 재활용 정거장을 애용하는 이유도 접근성에 있다. 영등포구에서 운영하는 재활용 정거장은 총 68개, 신길4동에만 7개가 있다.
김씨의 자택에서 가장 가까운 재활용 정거장까지 거리는 60m 남짓. 걸어서 1~2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이 재활용 정거장에서 100m 이내에 또다른 재활용 정거장이 하나 더 있다.
문 앞에 쓰레기를 내놓을 경우 배출 시간대와 요일별 배출 품목이 제한되는데 정거장에는 그때그때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버릴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재활용 정거장을 지속적으로 운영 및 확충하려면 관리도 뒤따라야 한다. 자주 배출함을 비우고 쓰레기별로 분류해주지 않으면 자칫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바뀔 수도 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모든 주민들이 재활용 정거장을 반기는 건 아니다. 분리배출하는 장소로 인식되면 쓰레기 무단투기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