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부촌’ 이촌동 가보니
매수·매도자 ‘눈치작전’에 거래 위축
“사러 왔다가 오른 호가에 발길 돌려”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재건축·리모델링 아파트 물건은 꽤 있지만 실제 거래되는 건 급매물이에요. 급매물이 먼저 빠지고 호가가 오른 물건만 남다 보니 매수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서울 용산구 이촌동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서울 용산구 이촌동 노후 단지들을 중심으로 정비 사업에 속도가 붙으면서 매매 호가가 들썩이고 있지만 좀처럼 매수세가 따라붙지 못하고 있다. 매수자들은 급매물 출현을 기다리는 반면, 매도자들은 조금이라도 비싼 가격에 팔길 원하면서다. 거래 쌍방 간 ‘눈치보기’ 장세가 이어지면서 거래절벽이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일 찾은 이촌동엔 한강맨션·왕궁·신동·한가람·강촌 등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앞둔 노후단지 아파트가 우뚝 서있었다. 이 일대 정비사업이 급물살을 타면서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잇달아 나오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선 거래가 주춤한 모습이었다.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은 “고금리와 경기 침체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매수자들이 신중해지고 있다”며 “일부 급매물을 제외하고는 거래가 끊겼다”고 입을 모았다.
이촌동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한강맨션 27평은 호가가 36억원에 형성돼 있는데 거래가 성사되지 않고 있다”며 “매수인들은 호가보다 3억 가량 낮춰서 생각하는데 집주인들은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급매가 나오면 연락달라’며 연락처를 남기고 가지만 기다리는 시간만 길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4월 33억4000만원(2층)에 거래된 한강맨션 전용면적 87㎡의 경우 반년 만에 호가가 3억원 가량 급등했다. 지난 10월 39억8000만원(5층)에 계약된 한강맨션 전용면적 101㎡의 현재 호가도 42억원에서 43억원 수준까지 뛰었다. 일대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은 “사실상 매수 희망자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이촌동 S공인중개사무소 대표도 “올해 5월부터 9월달까지 매매 계약 3개를 성사시켰는데 10월부터 매수가 없어서 조용하다”며 “매수자는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관망하고 있는 분위기이고, 매도자는 총선 결과에 따라 부동산 정책이 바뀔 수 있다고 판단해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양쪽 모두 거래에 미지근해 가격을 조정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매수자와 매도자의 힘겨루기 속에 거래량은 급감하는 분위기다. 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아파트 실거래 건수는 지난 8월 22건에서 9월 23건, 10월 33건으로 급증했다가 지난달 7건으로 주저앉았다. 가을 이사철 매매 수요가 몰린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달 새 거래 건수가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셈이다.
이촌동 B공인중개사무소 실장은 “이 일대 집주인의 대다수는 강남에 거주하는 외부인들이다보니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라며 “2년 전 집값이 폭등해 최고가에 팔리는 것을 보고 눈높이가 높아져서 쉽게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반면 고금리를 감당하기 힘든 매수자들은 집값이 더 꺾이길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촌동에서 부동산 중개만 40년 했지만 올해 거래 흐름은 최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