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함께 술을 마시고 바둑을 둔 이웃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가 "자고 일어나보니 죽어있었다"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법원이 살인 혐의를 인정해 중형을 선고했다.

제주지법 형사2부는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된 A(69)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7월 8일 밤 서귀포시 자신의 주거지에서 60대 B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같은 건물에서 각각 홀로 지냈던 두 사람은 사건 당일 처음 만나 식당에서 소주 3병을 나눠 마시고, A씨 주거지로 옮겨 술자리를 이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A씨가 자신의 주거지에서 B씨와 술을 마시고 바둑을 두다 B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른 것으로 보고 있다.

부검 결과 B씨는 가슴과 목 등 9곳을 찔린 상태였으며, 혈중알코올농도는 항거 불능 상태로 볼 수 있는 0.421%로 파악됐다.

앞선 공판에서 A씨 변호인은 살해 동기가 전혀 없으며, 제3자 출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등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증거가 없고 피고인 본인도 부인하고 있지만, 간접증거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돼 유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것이 확인된 유일한 사람이며, 피고인 주거지에 누군가 침입하거나 방문한 흔적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피고인이 입고 있던 옷에서 어딘가에서 튄 듯한 형태의 피해자 혈흔이 발견된 점에 대해서도 "'잠들었다 일어나보니 피해자가 숨져있었다'는 피고인 진술로는 이를 설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외부인이 침입해 범행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럼 범인이 피고인은 그대로 둔 채 피해자만 살해하고 어떤 금품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인데, 침입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CCTV를 피해 침입해 범행을 저지른 뒤 은밀하게 빠져나왔다는 건데, 그런 가능성을 쉽게 상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만일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면 용의주도한 사람이고 범행을 철저히 계획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피해자가 혼자 있을 때가 아닌 다른 집에서 피고인과 함께 있을 때 살해하고, 신속히 범행한 뒤 현장을 이탈한 것도 아니라 피고인이 옆에서 자고 있는데도 화장실 세면대에서 혈흔까지 닦아냈다는 것은 용의주도함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사건 당일 피해자가 우연히 피고인 집에 있었는데, 피해자를 노린 계획범행이라면 이마저 예상해야 한다. 어떻게 보더라도 제3자가 침입해 범행했다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라고 할 수 없다"며 피고인이 저지른 범행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해당 건물 방음이 잘 안 되는데, 옆 호실 거주자가 피고인이 목소리를 깔고 '너 죽을래. 내가 너 못 죽일 것 같냐'고 하는 말을 듣고 섬뜩함을 느껴 처음으로 문을 잠그고 잤다고 진술했다"며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을 드러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흉기에 찔리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높아 아무 저항도 못한 것으로 보이며, 전문가 소견에 따르면 항거불능 상태의 피해자를 흉기로 9번에 걸쳐 아주 서서히 찔렀다가 뺀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에게 저항·방어흔이 발견되지 않고 피고인 손에 흉기를 사용한 흔적이 없었던 점 등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범행 수법이 극도로 잔인하다"며 "피고인이 이 사건 전에도 상해치사를 비롯해 사소한 시비로 폭력을 행사해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