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홈페이지에 13개 차종 정보 공개
기아·BMW도 배터리 제조사 공개 준비중
유럽·미국 등 이미 실명제 움직임·고객 요구 거세
[헤럴드경제=김지윤·서재근·김성우 기자] 현대자동차가 국내 자동차 업계 중 가장 먼저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 공개했다. 최근 잇단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공포)가 확산하자 이를 잠재우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국내 자동차 업계 ‘맏형’ 격인 현대차가 제조사 공개에 나서면서 업계 전반으로 제조사 공개 분위기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공식 홈페이지에 전기차 차종별 배터리 제조사 현황을 공개했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 제네시스 GV60, GV70 등 총 13개 차종에 대한 정보를 게시했다. 현대차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코나(SX2 EV)에 중국 CATL 배터리가 탑재된 것을 제외하면, 모든 차종에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만든 국내 배터리가 장착됐다.
현대차는 그동안 전기차 구매 시 소비자의 문의가 있을 경우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해 왔는데, 최근 잇단 화재 이후 관련 문의가 몰리자 홈페이지에 전 차종을 정리해 게시한 것이다. 기아도 조만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겠단 방침을 세우고, 관련 자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기아가 중국산 배터리보다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국내산 배터리를 주로 사용해 온 만큼 한발 앞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1일 인천 청라에서 대형 화재로 번진 메르세데스-벤츠의 EQE 전기차 모델에는 중국 파라시스의 배터리 셀이 탑재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당초 EQE에는 세계 1위 배터리 회사인 중국 CATL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인지도가 낮은 파라시스 제품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고객의 불신은 더욱 커지게 됐다.
파라시스 배터리는 화재 발생 가능성으로 지난 2021년 중국에서 3만여 대가 리콜되는 등 품질 논란이 잇따라 불거진 바 있다. 이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배터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고객이 배터리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배터리 정보 공개를 두고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국내 수입차 1위인 BMW는 조만간 홈페이지에 모든 전기차에 들어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BMW 측은 “이미 고객 문의 시 딜러사, 콜센터 등을 통해 배터리 정보를 공개했던 만큼 배터리 제조사 게시에 따른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오는 13일 폴스타4 국내 최초 공개를 앞둔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 역시 평소에 신차를 발표할 때 보도자료에 배터리 제조사를 함께 공개해 왔다. 제너럴모터스(GM), 캐딜락, 스텔란티스 등도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검토 중이다.
반면 테슬라, 벤츠 등은 그동안 배터리 공개를 꺼려 왔다. 자동차에는 수많은 부품이 탑재되고, 모든 부품의 제조사를 공개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에서다. 특히 한국 수입차 회사들은 사실상 현지 판매 법인이라 차량 제조와 관련된 이 부분을 직접 결정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다만 벤츠 관계자는 “배터리 제조사 공개가 제도화하면 이에 맞춰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며, 현재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유럽, 미국 등 전기차 선진국으로 불리는 해외에서 배터리 실명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한 만큼, 국내에서도 조만간 의무화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일부 주에서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를 추진 중이고, 유럽은 2026년부터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다.
국토부도 오는 13일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제조·수입차 업체들을 모아 전기차 안전 점검회의를 열고, 배터리 정보 공개에 대한 각 사의 입장과 대책 방안을 청취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