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흩어진 가족친척 상봉행사를 위험천만한 핵전쟁 연습마당에서 치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북한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한 이튿날인 6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산상봉 합의를 불과 하루만에 백지화할 수 있음을 내비치면서 한 말입니다.

[취재X파일] 북한은 왜 ‘키 리졸브’에 과민반응을 보일까

성명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 대한 비방 중지와 미국의 B-52 전략 폭격기가 군산 인근 직도 상공에서 훈련을 벌인 것을 문제 삼았지만 핵심은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KR)와 독수리연습(FE) 중단에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올 초부터 국방위 중대제안과 공개서한, 그리고 각급 단체 성명 등을 내세워 키 리졸브와 독수립 연습 중단을 거듭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에도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반발해 ‘정전협정 백지화’, ‘제2의 조선전쟁’,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 ‘남북관계 전시상황 돌입’,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위협과 도발을 쏟아냈습니다.

북한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과민반응을 보인 것은 키 리졸브의 전신인 한미 연합전시증원연습(RSOI)과 팀 스프리트 훈련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4년 남북실무접촉에서 박영수 북측 대표가 한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 역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반발차원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이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은 물론 북한에도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사전 통보하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이토록 과민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북한의 모든 행태가 그러하듯이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배경에도 정치적, 경제적 이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대내외적으로 자신들이 평화를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선전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비판적인 남한내 일부 여론을 겨냥해 남남갈등을 유발시키려는 셈법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대제안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꼭 해야만 한다면 한반도가 아닌 미국이나 제3의 지역에서 하라고 한다거나, 중대제안 이후 실제 대남위협과 비방방송을 줄이고 대남 비방전단(삐라) 살포도 중지하는 등 나름 고개가 끄덕거릴만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셈법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만성적인 식량난과 경제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응하기 위해 물자와 인력을 동원해야만 한다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 군사전문가는 “북한은 원유와 물자 부족으로 변변한 훈련조차 실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데,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되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에 대응한 훈련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경제개발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큰 고통이자 압박”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이유에 더해 심리적 요인도 북한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배경으로 꼽힙니다.

이와 관련, 군 소식통은 “키 리졸브와 독수리연습은 동에서 서쪽으로 진행되는데 북한 입장에서는 이를 남에서 북으로 방향만 바꾸면 곧바로 침략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며 “20여만명의 한국군과 1만여명의 미군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키 리졸브와 독수리연습에 대해 실제 공포심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심리적 요인과 관련해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평양시내 2채의 건물을 제외하고 철저히 파괴당한 경험에서 오는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북한이 이 때문에 미군의 B-52, B-2 전폭기 출격에 대해 유독 학을 뗀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국과 미국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방어적 성격의 연례적 훈련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북한에 훈련 계획을 사전통보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입장에서는 이처럼 정치적, 경제적, 심리적인 배경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반발을 넘어 위협과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입니다.

신대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