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가는 당혹, 美 국방부 장관 방한 취소

전직 주한미대사들 “시대착오적·충격·기이”

고개 숙이는 윤석열 대통령
자료사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된 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대국민 담화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오상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사태 이후 한미동맹의 시계는 멈췄다.

미국 외교가는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고 전직 미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협받는 사례로 언급했으며 현직 미 국방부 장관은 한국을 ‘패싱’했다.

군 전문가는 윤 정부의 비상계엄 사태가 조기에 정리되지 않으면 한미 관계가 멈추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퇴보할 것을 우려했다.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모총장은 7일 “미국 입장에서는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에 대해 전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한미동맹이었는데 시계를 45년 전으로 되돌린 것”이라며 “대한민국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미국은 우리보다 더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 당일이었던 12월 3일 미 정부는 한국의 계엄령 선포를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6시간 만에 끝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심한 오판(badly misjudged)이었다”고 평가했다.

캠벨 부장관은 지난 4일(현지시간) 아스펜전략포럼이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한국 상황에 대한 질문에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심한 오판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계엄법의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이 한국에서 깊고 부정적인 울림이 있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고위 외교 당국자가 동맹국 정상에 대해 ‘오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사례로 언급했다.

그는 “우리 각자가 우리와 다르게 보이거나 생각하는 사람에게 일정 수준의 관용을 보여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며 “그것은 어려운 일이고, 비교적 동질적인 국가에서도 그렇다. 이번 주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고 말했다.

전직 주한미대사들은 ‘시대착오적’이라거나 ‘충격적이고 혼란스럽고 기이했다’고 논평했다.

해리 해리스 전 대사는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미경제연구소 행사에서 한국의 계엄령 선포에 대해 “충격받았고 혼란스러웠으며 기이헀다”고 소개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대사는 “윤 대통령 주변의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완전히 놀란 것 같다”며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계엄령을 정당화한 방식을 비롯해 이게 너무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이 (국민의) 지지와 정당성을 누리는 지도자를 가지는 게 미국에 이익이다. 21세기 한국 대통령의 정당성의 근거가 무엇이냐?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머스 허버드 전 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행동하는 민주주의의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우리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지를 다시 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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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사태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의 한국 방문이 취소됐다. 자료사진.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 [로이터]

외교가와 전직 대통령은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를 평가하는데 그쳤지만 한미동맹의 핵심인 국방부는 아예 빨간 신호등을 켰다.

윤 대통령이 6시간의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켰던 그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는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첫 번째 NCG 도상연습(TTX)이 예정돼 있었다.

북한의 핵사용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국방·군사당국 관계자가 참여해 한미 정부의 정책적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 실시하는 첫 번째 토의식 도상연습이었다.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카라 아베크롬비 미 국방부 정책부차관대행이 공동주관하며 한미 국가안보실(NSC)과 국방·외교·정보·군사 당국 관계관들이 참여해 북핵 위기관리와 군사적 방안을 논의할 참이었다.

하지만 이 중요한 회의가 언제 다시 한다는 기약 없이 연기됐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윤 정부가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자랑했던 것이 NCG 었다.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 ‘핵공유’라는 정책이 뒤집어질지도 모르는 판국에 확실한 방점을 찍을 마지막 기회를 날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와중에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한국 방문을 취소했다.

애초 한국과 일본 방문을 같이 추진했는데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와 김용현 전 장관의 면직으로 취소한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미가 오스틴 장관의 방한을 추진해왔지만 국내 여건상 현 시점에서 오스틴 장관 방한이 어렵다고 미국 측에 설명한 적 있다”고 밝혔다.

또 TTX가 취소된 경위에 대해서는 “양국이 합의 하에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으로 정했다”며 “NCG나 TTX 안 하는 것 아니다. 다음번에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금처럼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가 지속된다면 한미동맹이 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 사무총장은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는 한미 방위비분담금이나 확장억제, NCG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윤석열 정부를 도왔는데 뒤통수 맞은 느낌 일 것”이라며 “떨어진 신뢰를 빨리 회복하지 못한다면 한미동맹은 답보상태가 아니라 퇴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파적 득실을 따지기보다 보편타당한 민주주의 원칙에 맞도록 빨리 정리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