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그냥 다 플라스틱인 줄 알았더니”
K-뷰티(Beauty)의 인기로 해외까지 다량 수출된 국내 생산 ‘화장품’이 탄소 배출의 주범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세련된 디자인을 위해 갖가지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소재·재활용 미표기로 인해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단일 소재로 용기를 제작하면 재활용 가능할 수 있지만, 정작 화장품 업계는 이에 소극적이다. 디자인적으로 색감이 떨어지고, 눈에 띄는 차별화를 꾀할 수 없단 이유에서다.
가장 효과적인 건 다 쓴 화장품 용기를 재사용하는 것. ‘리필’ 문화다. 업체들이 화장품 용기 재사용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제로웨이스트가게 ‘알맹상점’은 지난 11일 총 11개 국내 화장품 회사의 대표 기초 화장품을 활용한 분리 배출 및 탄소발자국 측정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실험 대상 11개 상품 중 10개에서 재활용을 위한 소재 파악이 어려운 부품이 나왔다.
연구소는 제품에 쓰여 있는 정보뿐만 아니라 기업 홈페이지나 전화 문의를 통해서도 소재 파악에 나섰다. 하지만 결국 대다수 상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소재 파악이 안 될 경우, 분리 배출 및 재활용도 사실상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게 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화장품 용기가 재활용이 어려운 것은 ‘디자인’을 위해 제작에 유독 많은 소재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이 된 11개의 화장품 용기는 최소 3종 이상에서, 많게는 9종이 넘는 소재가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용기에 모든 소재가 표시돼 있으면서, 분리 배출도 가능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같은 문제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국내 화장품 294개의 제품 용기의 재활용 용이성 등급을 확인한 결과, 62.6%(184개)가 최하 등급인 ‘어려움’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수’ 등급은 43개(14.6%), ‘최우수’ 등급의 경우 단 2개(0.7%)뿐이었다.
국내에서도 플라스틱 단일 소재를 위주로 한 100% 재활용 화장품 용기 개발 등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주문·제작한 용기를 납품받는 화장품 업체들은 단일 소재 사용에 적극적이지 않다. 소재가 줄어들 경우 가능한 디자인 선택지도 좁아지기 때문이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플라스틱만으로 용기를 만들면 색감이 떨어지고, 화려한 장식도 달 수 없다”면서 “단일 소재로 만든 용기가 친환경적이라는 점을 알지만 경쟁사와의 디자인 경쟁에서 뒤처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연구소는 화장품 용기 ‘재사용’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화장품을 다 쓸 경우, 다시 채울 수 있는 리필용 제품을 판매해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자는 것이다. 되레 저탄소 화장품 용기를 다량 사용하는 것보다 기존 용기를 재활용하는 게 탄소 배출을 더 줄일 수 있다는 게 연구소 측의 분석 결과다.
연구소가 국내 주요 저탄소 화장품 3종을 2년간(3개월에 1종 사용) 사용한다고 가정하고 탄소발자국(제품이 대기에 추가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추산한 결과, 같은 기간 화장품을 다시 채워 사용하는 것에 비해 약 8배 이상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자 중 일부만 용기를 재사용하더라도, 효과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출시돼 연간 40만개, 누적 1640만개가량 판매된 ‘A’사의 인기 화장품 중 약 20%가 재사용됐다고 가정하고 탄소 배출량을 재추산한 결과, 기존에 비해 447톤의 탄소가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5명 중 1명의 소비자가 화장품 용기를 다시 쓰는 것만으로도 약 5만5000그루의 소나무를 심는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이 법적으로 재활용 여건을 마련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부소장은 “샴푸나 바디워시 등 일부 상품의 리필 상품이 별도로 나오는 것도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할당된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며 “화장품 회사들이 재사용 제품을 필수로 출시하도록 제도를 만들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