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는 최선의 방법”

Donald Trump,Christopher Wray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인 2017년 12월 15일 FBI 행사에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이 함께 앉아 있다.[AP]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퇴임 후 마러라고 사저를 압수수색했던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11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전 사임할 의사를 밝혔다.

FBI가 미국 언론에 공개한 발언 요지에 따르면 레이 국장은 이날 FBI 직원들과의 행사에서 “수주간의 숙고 끝에 내년 1월 현 행정부가 끝날 때까지 일하고 물러나는 것이 FBI에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임기는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리는 내년 1월 20일 종료된다.

레이 국장은 “내 목표는 여러분들이 매일 미국 국민을 위해 하고 있는 필수적인 일인 우리 사명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내 생각에 이것(임기 종료전 사임)이 우리의 업무 수행에 매우 중요한 가치와 원칙을 강화하면서, FBI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사임 결심은 자신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밝힌 뒤 “나는 이곳을 사랑하고, 우리의 사명을 사랑하고, 이곳 사람들을 사랑한다”면서 “그렇지만 내가 집중해왔고, 집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 FBI를 위해 옳은 일이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 국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집권 1기 때인 2017년 8월 취임했다. FBI 국장 임기는 10년으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에도 약 2년 반 이상이 남아 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달 30일 ‘충성파’인 캐시 파텔(44) 전 국방장관 대행 비서실장을 차기 FBI 국장으로 기용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레이 국장은 사실상 트럼프 당선인의 압박에 따라 퇴임하는 셈이다. 그가 자진 사임하지 않으면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 후 그를 해임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의 조기 사임 결정은 그가 해임될 경우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기를 10년으로 보장한 FBI 수장이 정치적으로 흔들리는 모양새가 연출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최고 수사기관인 FBI는 테러, 사이버범죄, 화이트칼라 범죄, 부패, 민권 침해 등에 대한 수사를 맡는다. 자연히 방대한 정보를 관리할 수밖에 없어 FBI의 수장은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1970년대에 FBI 국장 임기가 10년으로 정해진 것은 초대 국장인 존 에드가 후버 같은 ‘막후 권력자’형 FBI 국장이 다시 나오는 것을 막고, FBI국장이 정권 교체 등 정치적 변수와 관계없이 독립적·중립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트럼프 1기 때도 FBI 국장 해임 전력…트위터 메시지로 해임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에도 임기가 남아 있는 FBI 국장을 해임한 전력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충성 맹세’ 요구를 거부한 제임스 코미 당시 국장을 트위터(현 엑스) 메시지로 해임한 뒤 국장 대행 시기를 거쳐 레이 국장을 후임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레이 국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1차 임기 종료 후 기밀자료 반출 및 불법 보관 혐의에 대한 수사를 위해 트럼프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를 압수수색한 바 있다.

레이 국장 후임자로 내정된 파텔은 2020년 대선을 ‘사기’로 규정하는가 하면, 트럼프 재집권시 조 바이든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승리를 도왔다고 판단하는 언론인 등에 대해 사실상의 ‘보복’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 이력 등으로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파텔은 레이 국장 사임 계획 발표에 대한 기자들의 논평 요구에 “우리는 FBI에서 매우 순조로운 전환이 이뤄지길 고대한다”며 “나는 첫날부터 일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레이 국장 사임과 관련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그것은 ‘미국 비(非)정의부(Department of Injustice)’가 된 (법무부) 조직의 무기화를 끝낼 것”이라며 “미국을 위해 위대한 날”이라고 썼다.

FBI를 지휘하는 법무부가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잇달아 기소한 것을 ‘법무부의 정치적 무기화’로 규정한 발언이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리는 모든 미국인을 위해 법치를 회복할 것”이라며 “크리스토퍼 레이의 리더십 하에서 FBI는 내 집을 이유도 없이 불법적으로 급습하고, 나에 대한 불법적인 탄핵과 기소를 위해 열심히 일했고, 미국의 성공과 미래를 방해하기 위해 모든 일을 했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캐시 파텔은 FBI 역사상 FBI를 이끌 자격을 가장 잘 갖춘 후보자”라며 “나는 파텔의 (상원) 인준을 고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