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탄생 이래 의복은 늘 인간의 생존과 번영, 더 나아가 문화와 예술의 영역까지 확장되며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쳐왔다. 단순히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적 특성뿐 아니라 미, 즉 사람의 아름다움과 멋을 더 배가 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 그렇기에 그 관점과 방식에서 과거의 고민과 현재의 것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플리츠다. 플리츠는 특정한 방식으로 천을 주름 잡아 입체적인 텍스처를 만드는 기술이다. 이를 적용해 가장 많이 알려진 브랜드는 플리츠플리즈다. 패션을 예술로 만들어버린 건축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 주름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이세이 미야케가 만들었다. 플리츠를 사용한 독특한 무늬와 패턴이 주는 환상적인 실루엣은 이세이 미야케에게 큰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기에 이 주름을 잡는 방식을 이세이 미야케가 고안했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사실 플리츠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주름을 사용한 다양한 의복을 제작했다. 특히 제사장이나 고위 관리들이 입었던 로인스커트(loin skirt)에서 이 기법을 볼 수 있다. 옛 이집트 벽화나 유물을 떠올려보면 빗살무늬로 된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게 바로 플리츠의 모태다. 실용성뿐 아니라 장식적인 요소로까지 반영되며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으로 등장했다. 이집트 시대엔 손이나 막대로 천에 영구적인 주름을 만들었다. 특히 주름을 유지하기 위해 천을 물에 살짝 적신 후 진흙으로 덮어 그늘에서 말리는 습식 방식을 활용했다고 한다. 열에 의한 가공방식을 최초로 채택한 건 스페인 출신의 ‘마리아노 포르투니’라는 인물이다. 1871년에 태어난 스페인 출신의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였던 그는, 20세기 초 고대 그리스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델포스 가운이란 주름진 실크 드레스를 제작했다. 당시 만들어진 옷은 지금도 많은 브랜드에 영감을 주는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현재 우리가 입고 보는 플리츠의 방식은 1990년대 초 이세이 미야케에 의해 혁신적으로 재탄생됐다. 그는 고온 열처리를 통해 형태를 유지하며 폴리에스터 소재에 주름을 집어내는 새로운 방식인 가먼트 플리팅을 도입했다. 기본 바탕이 되는 원단을 옷의 크기에서 최소 2-3배 정도 더 준비하고, 기계에 넣어 주름을 잡으면 원단이 수축되며 최종적으로 만들려는 옷의 크기가 나온다. 2차대전 당시 고안된 섬유인 폴리에스터 특유의 특성인 열에 의해 분자구조가 변형되는 구조 덕에 이처럼 변형된 스타일이 가능하다.
최근 한국에도 플리츠로 주목받는 브랜드들이 있다. 몽플리쎄는 이세이미야케의 플리츠플리즈가 보다 선구적이고 실험적인 옷들을 많이 내놓았던 것에 비해 비교적 대중적으로 플리츠 소재를 해석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는 파리에 팝업스토어를 열며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플리츠 외에 트위드 또한 과거의 방식을 재해석한 예다. 19세기 초 스코틀랜드 농부들은 울을 사용해 두껍고 견고한 원단을 직조했다. 방수성과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특징으로 야외 활동이나 노동자복으로 사용된 옷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코코샤넬이 파격적으로 여성복에 도입한 것이다. 과거의 전통을 현대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클래식 스타일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됐다. 혁신은 이처럼 있는 현상을 새롭게 다시 보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지승렬 패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