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망한 후 정면으로 누워 오랜 시간 있었다면 혈액이 아래쪽으로 고여 등은 빨갛게 됩니다. 그런데 누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나중에 그 시체를 옮기면서 뒤집어놓았다면요? 시반(사후에 시체의 피부에서 볼 수 있는 옅은 자줏빛 또는 짙은 자줏빛의 반점)이 위로 오겠죠? 억울하게 죽었을지도 모를 사람의 사인을 규명하는 일이니까 그런 증거 하나도 유심히 봐야 합니다.”
한 달로 치면 많게는 20구씩, 평균 15구이상의 시체와 마주한다. 지금까지 부검한 시체만도 350구가 넘는다.
이젠 밤늦은 시간, 새벽녘 등 시간을 가리지 않고 검체(시신)를 꺼내볼 때도 있을 만큼 아무렇지 않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묻지 마 살인’으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람, 어린아이의 시신과 마주하면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2010년부터 햇수로 3년째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법의관으로 일하고 있는 김준모 씨의 일상이다.
“일반 사람들은 생소해하는 직업을 가졌죠. 요즘엔 미국 범죄드라마를 많이 보니까 미뤄 짐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상은 많이 달라요. 드라마에서는 한 번 딱 보고 사인(死因)을 알아내기도 하는데 진짜 법의관인 우리들이 보면 황당할 정도죠. 실제로는 시체를 봐도 사망한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판단하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더 많아요.” 김 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계절, 온도, 습도 등 환경에 따라 시신의 부패 정도도 그때그때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시신이 병원 장례식장에 2~3일 정도 보관됐다가 국과수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뒤늦게 체온을 재봐야 소용도 없다.
김 씨는 “그래서 경험과 연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시신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우의 수를 많이 접하면 판단 근거나 데이터가 축적된다. 물론 ‘추정’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사인을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는 국과수에서 부검하는 일이 국민의 복지와 맞닿아 있다고 해석했다.
“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는데 어쩌면 부검은 억울함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국민의 죽음에 대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책임 의식을 갖고 일을 할 수밖에 없죠.”
황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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