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미국이 영국 글로스터셔주(州) 페어퍼드 공군 기지에 배치했던 B-1 전략폭격기 약 12대를 본토로 철수한 것을 두고, 이란의 드론 공격 가능성이 우려됐기 때문이라고 전해졌다. 이를 두고 실제 이란의 공격이나 이란과의 무력 충돌이 없었음에도 미군이 전략 자산을 철수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란 강경파들은 ‘이란의 승리’로 포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미군은 지난 주말 영국에 있던 B-1 폭격기 12대를 모두 미국으로 복귀시켰다. 당시 B-1 폭격기는 4개의 편대로 불과 몇 시간만에 기지에서 전부 철수했고, 일부는 공중급유 지원까지 받는 등 철수 과정도 이례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철수 배경을 설명하면서 실제 ‘위협(threats)’이 있었다고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우연히 날아간 게 아니다”라며 미국이 누가 위협했는지 알고 있다고 밝혔지만 배후는 공개하지 않았다. JD 밴스 부통령도 전날 전략폭격기 철수 조치에 대해 “우리 병력을 보호하기 위해 극도의 주의를 기울인 조치”라고 말했다.
언론들은 이후 소식통을 인용해 미 당국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페어퍼드 기지를 겨냥한 드론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폭격기를 철수했다고 전했다. IRGC가 기지 내 군용기를 드론으로 타격하고, 미군 조종사 등의 병력을 살해하려는 복합 공격을 세우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는 것이다.
WSJ는 IRGC의 한 조직이 공격 실행을 위해 영국 국적자들을 포섭했고, 인근 지역에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작전 등 여러 단계의 계획이 포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미 당국자들은 이를 지난해 우크라이나가 드론을 러시아 내륙으로 몰래 반입한 뒤 트럭에서 발사해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 전략폭격기 등을 공격한 ‘스파이더웹 작전’을 본뜬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달 27일 페어퍼드 기지 인근에서는 연료통이 실린 밴을 타고 런던에서 이동해 온 복면 남성 5명이 발견돼 영국 경찰이 이들을 테러 행위 모의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이후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폭발물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직 혐의점을 벗지 못한 상태다. 영국 정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이란과 연계됐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정황이 있다는 입장이다.
페어포드는 미군의 대(對)이란 작전에 활용된 핵심 전진기지다. 미국이 이곳에 배치했던 폭격기를 본토로 옮겨도 이란에 대한 장거리 타격 능력은 유지되지만, 출격거리와 공중급유 부담은 커질 수 있다.
이를 두고 BBC와 AP 등 외신들은 실제 기지 공격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핵심 전략자산이 움직였다는 점을 주목했다. 군사·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철수가 결과적으로 ‘이란의 성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란이 드론 한 대, 미사일 한 발 쏘지 않으면서도 자국을 겨냥하는 전략자산의 전진 배치를 바꿔놨다는 것이다.
영국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피터 리케츠는 “이란이 실제 공격 없이 미군 전략자산의 배치를 흔드는 효과를 거뒀다”고 지적했다. 이란이 테러나 사보타주 위협만으로 미군 전략자산의 전진배치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이란과 미국 간 비대칭전의 전선이 중동에서 유럽 내 미군기지까지 넓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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