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이어 이재명 정부도 농어민 눈치보기에 제동
중국보다 먼저 가입해야…가입 미루다 ‘비싼 청구서’ 우려
제조업엔 6.7조 호재, 농업엔 7100억 타격…사과·배 수입 확대 가능성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문재인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가입의사를 내비치다가 결국 포기하는 것은 양치기 소년과 같아요. 결국 CPTPP 회원국 등 국제사회에 우리나라 신뢰도가 저하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CPTPP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정부 한 관계자는 이같이 우려를 표했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도 농어민 반발을 의식해 CPTPP 가입 추진에 제동을 걸면서 우리나라의 대외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수출시장 확대와 통상 다변화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1일 관가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일 CPTPP관련 연내 가입을 신청하지 않도록 하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정부의 농지조사에 대한 농민들의 우려가 큰 상황에서, 농축수산업의 피해가 예상되는 CPTPP 가입을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불신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된다.
정부는 당초 중국보다 앞서 CPTPP에 가입해 G2(주요 2개국)발 보호무역주의에 공동대응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회원국 만장일치로 가입되는 CPTPP 특성상 가입이 늦어질수록 회원국이 늘어나 비싼 가입비를 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CPTPP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이 탈퇴한 후 일본·캐나다·호주·멕시코·뉴질랜드·싱가포르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대규모 다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2018년 공식 출범했다. 회원국들의 경제 규모를 합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5%에 달한다. 회원국 간 상품 관세 대부분을 단계적으로 철폐하는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지향한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가입을 공식 추진하고 이듬해인 2022년 4월 15일 대외경제관계장관 서면회의를 통해 부처 내 의사결정 절차를 마무리했지만 당시 농어민 반발과 국회 보고 절차 지연 등으로 정식 가입 신청에는 이르지 못했다. 당시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으로 농어민의 반발을 의식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CPTPP가입을 놓고 주저하고 있는 동안 당시 11개국이었던 회원국은 2024년 영국이 합류하면서 12개국으로 늘었다.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산업부)는 통상협상을 개시하기 전 국회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보고해야 한다. 상임위 의결 사항은 아니지만 보고를 생략하고는 가입 신청이 불가능하다.
가입 신청을 할 경우도 기존 회원국과의 협상, 국내 농어업계와의 간극을 좁히는 과정 등을 감안하면 1~2년 이상의 시간이 더 소요될 수 밖에 없다.
중국은 2021년 가입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며 올해 5월에는 코스타리카의 가입 협상이 실질적으로 타결됐고, 우루과이의 가입 협상도 진행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가입을 위한 회원국들과의 예비 협의 단계에 있다.
CPTPP는 신규 회원국의 가입을 기존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구조로 신규 회원국이 추가될수록 우리나라는 가입 과정에서 동의를 얻어야 할 상대도 늘어난다. 가입 신청이 지연될수록 비싼 가입비를 내야하는 셈이다.
또 CPTPP는 현재 미국과 중국이 가입해 있지 않은 경제협력체라는 점도 우리나라가 가입을 서둘러야한다는 주장이다. CPTPP 가입을 통해 미·중 무역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응해 자유무역 질서와 교역·투자 협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FTA 체결이 되지 않는 멕시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관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올해부터 멕시코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를 대상으로 수입 관세를 최대 50%까지 인상하기로 한 ‘일반수출입세법’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관세 부담을 지게 됐다.
그러나 CPTPP 기존 회원국 상품시장 자유화율은 99.1%이고 농산물도 평균 96.1%로 전면 개방 수준이며 회원국 상당수가 농업이 발달한 국가라는 점에서 국내 농업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농민단체 등이 CPTPP 가입에 반발한 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동식물검역 규정인 SPS는 농업계의 중요한 현안이다. 검역을 통해 과일과 축산물의 수입을 국가 단위로 차단할 수 있는 비관세 장벽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SPS 절차가 진행 중인 품목은 사과(뉴질랜드, 일본), 배(일본), 복숭아(호주) 등으로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하는 즉시 주요 과일도 개방될 가능성이 높다.
원산지 규정은 CPTPP의 특혜관세 적용을 위한 원산지 판정 기준은 기존 FTA와 유사한 수준이며, 신선 농산물은 완전생산(WO) 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우회 수입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가공식품은 특혜관세를 인정받을 수 있는 원재료의 범위가 CPTPP 회원국으로 확대돼 우리가 가공식품을 수출하는 경우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통상학계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대외적으로 CPTPP가입 신청을 공언해놓고 결국 지키지 못했다”면서 “이재명 정부도 농어민반발을 넘을 생각보다는 가입신청을 연기하거나 포기할 자세를 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태도는 CPTPP회원국들로부터 우리나라의 대외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한편, 관계 부처가 CPTPP 가입의 경제적 영향을 분석한 결과, CPTPP 발효 10년 후 한국의 실질 GDP는 협정을 가입하지 않았을 때의 실질 GDP보다 0.38%P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15년간 연평균 제조업 기반 생산 파급효과가 6조3000억~6조7000억원 증가하는 반면, 농업 생산은 연평균 71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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