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표부터 지구지정까지 5년 8개월
현물보상 지위 한 차례 승계 허용 추진
여전히 보상가격 및 주민 갈등 남아
“팔아 달라고 온 소유주들은 많았어요. 그런데 팔 수 없었습니다. 매수자가 현금청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중개했다가 소송당하면 어떡해요. 그래서 중개를 안 했죠.”
[헤럴드경제=윤승현·홍승희 기자] 2021년 공공개발 발표 이후 부동산 거래가 사실상 끊겼던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대가 지난 21일 5년 8개월 만에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됐다. 정부가 토지·건물 소유주의 현물보상 지위 승계를 한 차례 허용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장기간 묶여 있던 시장에 숨통이 트일지 주목된다.
지구 지정일인 21일 찾은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대. 서울역 지하철 11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도 채 안 걸리는 곳이지만, 시장은 지난 5년간 멈춰 있었다. 서울역을 코앞에 둔 입지에도 공공개발 사업이 장기간 표류한 탓이다.
동자동 B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2021년 발표 이후 최근까지도 거래된 게 없다”며 “지구 지정을 언제 할지 모르니 돈이 필요한 소유주도 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당시보다 제도가 많이 개선됐지만, 구체적인 발표가 안 나와 매도할지 계속 보유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덧붙였다.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은 서울역 인근 4만7573.9㎡ 부지에 총 2150가구를 공급하는 사업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을 시행해 공공임대주택 1000가구, 분양주택 1150가구를 조성할 예정이다. 기존 쪽방 거주민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고, 공사 기간에는 임시 거주시설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2029년 착공, 2032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은 지난 2021년 2월 처음 발표됐다. 당초 2023년 착공해 2026년 입주할 계획이었지만, 토지·건물 소유주들이 공공의 토지 수용 방식에 반발하며 지연됐다. 당시 소유주들은 입지적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일방적 현금청산이 이뤄질 경우 재산권 침해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거래도 사실상 중단됐다. 실제 사업 발표 직전 매매계약을 중개했다가 분쟁을 겪은 사례도 있었다. 후암동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발표 바로 전날 빌라 하나를 매매했는데, 다음 날 난리가 났다”며 “매수자는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하고 집주인은 ‘나도 몰랐는데 왜 돌려줘야 하느냐’며 거절했다”고 회상했다.
정부는 이번 지구 지정과 함께 소유주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하기로 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현물보상 권리를 한 차례 승계할 수 있도록 하고, 분양권 양도 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안 등이다.
그동안 매매를 가로막았던 제약이 일부 완화됐지만 구체적인 요건과 시행 시점에 따라 거래 재개 여부가 달라질 전망이다.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아직은 관련 문의가 없다”며 “매수자가 얼마나 이익을 볼 수 있을지 계산이 나와야 평당 가격도 형성될 것”이라 전했다.
한편 사업 추진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지만, 실제 사업이 속도를 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특히 보상가격을 둘러싼 우려가 여전했다. 공공개발을 지지해 온 C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소유주들이 원하는 건 제대로 된 평가”라며 “발표 직전에는 쪽방촌이라는 이유로 저평가돼 형편없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는데, 서울역 앞이라는 입지적 가치는 인정받아야 한다”고 했다.
사업 추진을 둘러싼 주민 간 갈등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C 대표는 “민간개발을 오래 지지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공공개발에 찬성한다고 하니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면서 “어제도 한 주민이 ‘말을 이랬다 저랬다 바꿔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연락해 왔다”고 전했다.
정부가 제시한 2032년 입주 목표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민간개발을 선호하는 한 쪽방촌 주민은 “영등포 쪽방촌도 지구 지정 이후 오랜 기간이 지났는데 아직 첫 삽도 못 떴다”며 “여긴 주민도 더 많아 쉽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이어 “부채 규모도 큰 상황에서 LH가 어려운 동자동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 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이 추진하는 만큼 사업에 속도는 붙겠지만, 지연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서광채 한양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원칙적으로 공공사업은 민간사업과 달리 당해 사업으로 인한 개발이익은 배제하고 평가하도록 한다”며 “(소유주가) 현물로 받을 경우에도 평가액이 낮아져 추가 분담금이 늘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용재결·행정소송 등 절차가 이어지면 계획보다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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