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히드마틴 “F-35 사면 AESA 기술이전”
-韓국방부, F-35 계약하자 美 말 뒤집어
-미 “AESA 핵심기술 이전 불가” 밝혀
-국과연, 한화시스템 “할 수 있다” 의기투합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우려를 넘었다. 불가능을 넘었다.
우리 군이 우리 손으로 한국형 전투기(KF-X)의 핵심 장비인 AESA(위상배열) 레이더를 만들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AESA 레이더는 쉽게 말해 전투기가 공중기동 중 수십~수백개의 육해공 표적을 실시간으로 탐지 추적할 수 있는 최첨단 레이더다.
현대 공중전에서 근접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수십~수백㎞ 뒤에서 먼저 적 전투기를 발견해 격추하는 쪽이 승리한다. 원거리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수적인 장비가 AESA 레이더다. 이 레이더 제작 능력은 전 세계에서도 소수의 군사강국만 보유하고 있다. 우리 군은 AESA 레이더의 한국 독자 개발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세계 유수 군수업체들의 ‘편견’을 결국 뛰어넘어 또 한 번의 쾌거를 이룩했다.
방위사업청은 우리 군과 국내 군수업체가 합심해 개발하고 있는 한국형 전투기(KF-X) 탑재용 능동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단계라고 결론내렸다고 30일 밝혔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KF-X에 탑재할 AESA 레이더의 상세설계 검토(CDR) 회의 결과, 군 요구조건이 상세설계에 모두 반영됐다”며 “이는 AESA 레이더 시제품 제작 단계로 진행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빠르면 AESA 레이더 첫 시제품은 내년 하반기에 출고될 전망이다.
군은 애초 AESA 레이더를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 공군에 차세대 전투기 F-35를 공급하기로 한 미국의 세계 최대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이 수주 과정에서 ‘AESA 레이더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F-35를 사주면 AESA 레이더 기술을 이전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우리 군은 경쟁 제품인 록히드마틴의 F-35와 보잉의 F-15E에 스텔스 기능을 첨가한 ‘사일런트 이글’ 중 F-35를 선택했다. 이 결정으로 AESA 레이더 기술은 당연히 우리 것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美 록히드마틴의 말 뒤집기로 시작된 AESA 레이더 국산화=미국 정부 당국이 AESA 레이더 기술 이전을 반대한 것이다. 어떻게 기술 이전하겠다는 약속을 말 한 마디로 뒤집을 수 있느냐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번복은 없었다. F-35와 함께 AESA 레이더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는 환호는 일거에 잦아들었다.
우리 군은 F-35 40대를 사오면서 7조4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지불하기로 했다. 이 정도의 금액을 주고 무기를 사올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 몇 되지 않는다. 세계 무기 시장의 큰 손인 한국이 천문학적 거금을 들이고서도 뒤통수를 얻어맞는 '글로벌' 호구가 된 셈이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계약을 했느냐’, ‘천문학적 금액을 쓰면서도 끝내 호구가 되고 말았다’, ‘계약을 물릴 수는 없느냐’는 등 온갖 비난과 항의, 자성이 이어졌다. 그러나 끝내 이를 돌이킬 방법이 없어 전투기는 사되, 기대했던 기술은 받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한국형 전투기 개발 앞날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전투기가 아무리 빠른 속력을 내고 최첨단 미사일을 장착하더라도 AESA 레이더가 없으면 제대로 된 전투기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정부 차원에서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공언한 상황에서 핵심 장비인 AESA 레이더만 비싼 돈을 들여 따로 사온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무력감과 자괴감, 실망감이 내부에 확산됐다. ‘불가능’이란 단어가 널리 회자됐다. 그러나 위기 속에 한국군 특유의 도전 정신이 발동했다.
우리 군 당국과 군수업체들이 의기투합해 AESA 레이더를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세계 군수업계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시 국내 군수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가 개발했던 무기에 AESA 레이더의 원천 기술이 모두 들어 있다. 지금의 기술 수준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AESA 레이더를 개발할 수 있다. 걱정 말라.”
이렇게 앞으로 호언장담했지만,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과정에는 말못할 애환이 배어 있다.
미국 정부 차원의 AESA 레이더 기술 이전 거부로 미국에 기댈 수 없게 되자 유럽의 군수업체들과 극비리에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이전 형태는 아니었지만,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갈 때마다 유럽 업체들로부터 기술자문을 구하며 수준을 평가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AESA 레이더 개발 사업은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 주관 하에 한화시스템이 참여해 진행됐다.
2016년 8월 착수해 2018년 6월 기본설계를 마쳤고 이번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상세설계를 마무리한 것이다. 만 3년 만에 AESA 레이더 설계를 모두 끝내고 시제품 제작 단계까지 도달하는 개가를 올렸다.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시스템은 AESA 레이더와 한국형 전투기의 체계 통합을 위해 한국형 전투기 기체 개발업체인 한국항공(KAI)와도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고 방사청은 설명했다.
◆국방과학연구소, 한화시스템 등 민군 합동으로 ‘기적’ 연출=군 당국이 이날 진행한 AESA 레이더 상세설계 검토회의는 군에서 요구한 체계 및 기능 조건이 상세설계에 반영되어 초기 제품 규격으로 개발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회의에서는 계획된 제작 비용과 일정 안에 시제품 제작과 (전투기와의) 체계 통합, 시험 단계로 진행 가능한지를 공식 확인했다.
공군과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이번 상세설계 검토위원회는 제품 규격서 등 25종의 기술자료를 검토해 군의 요구사항이 설계와 각종 체계 규격서에 적절히 반영됐는지를 확인했다.
군 당국은 내년 하반기 AESA 레이더 시제품 제작에 이어 시험항공기에 AESA 레이더 시제품을 얹어 레이더 성능 테스트를 할 계획이다. 2023년에는 마침내 한국형 전투기 시제품에 AESA 레이더 시제품을 탑재할 계획이다.
군은 비행시험을 거쳐 2026년에 한국형 전투기 최종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한국형 전투기의 형상 및 시현장치 등은 F-35와 유사하고, 능력 수준은 현재 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KF-16보다 조금 높은 단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KF-16과 F-15K였으나, 올해부터 F-35가 실전 배치되면서 주력 전투기군이 3종으로 늘어났다.
KF-16은 전투기 역사에서 대표적인 3세대 전투기로 꼽힌다. F-15K는 4세대 전투기, F-35는 5세대 전투기로 분류된다.
1세대 전투기는 속도 면에서 초음속을 내지 못하고 무기는 기관총이나 기관포를 주로 사용했으며, 2차대전 당시의 프로펠러기 등이 이에 해당된다.
2세대 전투기는 초음속으로 비행하고 레이더를 장착했으며, 유도 기능이 제한된 미사일을 달았다. 핵탄두를 투하할 수 있는 공대지 폭탄도 장착할 수 있었다.
3세대 전투기는 첨단 유도 미사일을 탑재해 원거리 격추 능력을 보유했으며, 첨단 레이더와 항공전자장비, 지상공격능력을 갖춰 전투기 및 전폭기 기능을 겸할 수 있게 됐다.
4세대 전투기는 전폭기 기능을 본격적으로 겸하게 된 것으로 레이더, 항공전자장비, 지상공격능력 등의 면에서 3세대를 압도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나중에 AESA 레이더와 가볍고 튼튼한 복합소재, 저탐지도료와 형상변환 등 준스텔스 기능을 적용해 4.5세대로 업그레이드됐다.
5세대 전투기는 첨단 장비에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투기로 현재의 F-35와 F-22 등이 대표적이다. 그밖에 향후 도래할 전투기 6세대는 지금보다 발전된 첨단전자장비에 무인화를 구현한 전투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