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배우는 운전하기, 자전거타기
컴퓨터엔 ‘넘사벽’, 몸의 감각이 핵심
전문가에겐 언어적 사고가 되려 방해
문화배우기, 사회화도 몸을 통해 이뤄져
체화된 지식이 경쟁력, AI시대 더 빛나
차가 스스로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해 비상시에도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완전자율주행차량은 아직요원하다. 첨단 기술과 인력, 자본이 오랫동안 투입됐어도 부분적으로만 자율주행이 가능할 뿐이다.
사람에겐 단순해 보이는 운전이라는 행위가 굉장히 고도의 복잡성을 띠고 있다는 반증이다.
선도적인 비즈니스 인류학자인 사이먼 로버츠는 저서 ‘뇌가 아니라 몸이다’(소소의책)에서 지능은 뇌에만 있는 게 아니라 몸에도 있다며 몸은 단순히 뇌를 감싸는 도구가 아니라 지성의 근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뇌를 사용해 생각하듯이 몸을 통해서도 생각한다는 것이다.
지식 습득에서 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뇌와 몸이 어떻게 연결돼 인간의 지능을 만들어내는지 탐색한 책에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체화된 지식이다.
흔히 우리는 몸과 뇌를 구분하고 지능은 뇌와 동일시하지만 대부분 뭔가 만들어내거나 할 수 있는 능력은 모두 생활 속 몸의 익힘에서 나온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가령 자전거 타기는 몇 번 시행착오를 거쳐 익히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탈 수 있다. 그런데 2007년 한 연구팀이 발표한 자전거 타기의 결정적 방정식을 보면 간단치 않다. 이 논문에는 자전거의 기하학적 구조, 자전거를 똑바로 세우는 운전자의 행동과 힘의 조합을 설명하는 도면과 방정식이 가득하다. 균형과 중력, 물리량 등의 복잡한 물리학적 지식이 동원된다. 우리는 이런 수학 공식을 이해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해봄으로써 배운다. 자전거 타기는 지식이 없어도, 또한 어떤 지식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해도 그 기술을 보유하고 실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몸이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이론화한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의 모델에 따르면, 초보 단계에서 능숙, 숙련을 거쳐 전문가 단계로 갈수록 의식적 역할은 줄어든다. 초보 단계에서는 언어적 지시나 설명을 몸으로 바꾸는 과정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그러나 점점 숙달 될수록 설명은 필요 없게 된다. 오히려 생각하기, 언어로 표현하기 등은 숙련된 기술에 방해가 되기까지 한다.
베테랑 골퍼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이 실험에서 골퍼들은 두 가지 조건에서 퍼팅을 하도록 요구 받았다. 한 조건에서 골퍼들은 스윙을 할 때 주의를 기울이고 골프 클럽의 헤드 부분이 공을 치고 팔을 쭉 뻗는 동작을 하는 순간 ‘스톱’이라고 크게 말해야 한다. 다른 조건은 녹음된 어떤 소리를 들으면서 퍼팅을 하는데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 골퍼들은 스윙이 끝날 때 집중해야 하는 경우(기술집중상태)보다 소리를 들으며 퍼팅할 때(이중과제상태) 훨씬 성과가 좋았다. 실행 중인 활동을 생각해야 하면 숙련된 기술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제 수행에 압박을 받으면 사람들은 과제를 쪼개어 개별 요소로 세분화하고 그로 인해 오류와 혼란을 야기해 결국 성과를 저해할 수 있다는 ‘숨 막힘’ 개념과 같다. 언어적 사고, 뇌의 논리적 사고가 방해가 된다.
흔히 우리는 매일 사용하는 기술의 습득에 대해 책이든 매뉴얼이든, 다른 사람의 말이든 지시사항이 핵심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지시 사항은 언어로 돼 있기 때문에 개별적이고 순차적이다. 그러나 완전히 습득된 기술은 단계를 세분화하지 않고 물 흐르듯 통합적 행동을 순서대로 수행한다. 전문가가 되는 과정은 지시를 근본적으로 비언어적 지식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이라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체화된 지식이란 정신의 개입 없이 몸이 배운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은 뇌의 지시 사항 없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이상의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실용적 지식 뿐 아니라 문화 배우기, 아이들의 사회화 과정도 비슷하다. 잘 어우러지는 법을 배우는 것도 지식 습득의 과정이며 여기에서도 몸이 핵심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 직관, 본능보다 확실한 데이터를 선호하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본능, 직관은 느낌일 뿐이고 탄탄한 데이터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객관성을 가졌다는 이유에서다. 컴퓨터로 연산된 지식은 믿을 수 있고 우리 몸이 체화한 지식은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시각, 소리, 촉각, 냄새, 맛과 같은 감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에서 이런 감각이 더욱 경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체화된 지식의 진정한 가치는 사실 디지털 시대에 더 빛난다. 즉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해주는 것은 바로 개개인의 체화된 지식이며, 이는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갖는다. 이젠 브레인스토밍보다 바디스토밍이 더 중요한 때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뇌가 아니라 몸이다/사이먼 로버츠 지음, 조은경 옮김/소소의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