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감축법, 전기차 산업 中 영향력 차단 성격
美 전기차 생산라인 없는 현대차·기아, 경쟁력 우려
조지아 공장 2025년에나 완공…노조 공감대 필요
핵심 소재 中에 의존하는 배터리, 공급망 확대 과제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미국 상원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차단하고 미국 중심의 친환경 산업 공급망을 구축하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을 통과시키면서 자동차·배터리 업계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미국 내 전기차 생산라인을 확대해야 하는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노조를 설득해야 하는 난제에 봉착했다. 배터리 업계 역시 핵심 원재료 공급망을 재편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9일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미국 상원을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은 전기차와 배터리 등 친환경 미래 성장 동력 산업에 있어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안을 통해 미국 정부는 향후 에너지 안보와 기후 변화 대응에 3690억 달러(약 481조5400억원)를 투자한다. 특히 새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7500달러(약 98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단 미국에서 최종적으로 조립되고 배터리 부품과 그 원재료를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일정 부분 이상 조달 또는 생산한 경우에만 지급하기로 했다. 특히 미국 안보에 우려되는 외국 회사 부품이나 핵심 원재료를 포함한 경우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사실상 중국 기업의 참여를 원천 차단한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현대차와 기아, 국내 배터리 3사가 반사이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이 전기차와 배터리를 미국에 수출하는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과 현재 상황을 들여다보면 국내 업체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재 미국에서 전기차 세제 혜택을 받고 있는 차량은 현대차 아이오닉 5와 코나EV, 아이오닉EV다. 기아의 경우 니로 EV와 쏘울EV, EV6 등이 혜택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아이오닉 5와 EV6는 전량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전기차 생산라인 확보에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6조3000억원을 투입해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할 계획을 밝혔으나 내년 상반기에나 착공해 2025년 완공될 예정이다. 오는 11월부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제네시스 GV70 전기차 모델을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지만, 럭셔리 모델인 만큼 판매량 증대에 크게 기여하기에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법안이 시행되는 내년부터 조지아 공장 완공 시점까지 약 2년 반 동안 현대차·기아는 현지에서 전기차를 세제 혜택 없이 팔아야 한다. 내년께 출시되는 아이오닉 7이나 EV9의 미국 생산 여부도 노조와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당 법안 하원 통과 과정을 일단 지켜보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3사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CATL 등 중국 배터리 업체가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배터리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됐다는 점을 고무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부품과 원재료 공급망 재정비라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배터리 3사는 당장 내년부터 배터리 부품과 원재료를 각각 40%와 50% 이상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사실상 소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해야 한다. 코발트와 흑연, 리튬 등 배터리 관련 소재 70~80%가 중국을 거쳐 공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관련 소재 일부 물량은 국내 업체들로부터도 호주나 캐나다 등에서 관련 소재 공급을 위한 조달에 나서고 있다”며 “앞으로 소재 공급망 확대에 공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