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자녀 대상으로 일본어교육

중부경제인연합회 “2050년까지 외국인 노동자 2배 늘어야”

한국은 소모품 취급 논란도…전문가들 “이민청 설립 시급”

日경제단체도 나섰다…“외국인 근로자 없으면 日경제 스톱 우려” [저출산 0.7의 경고-일본 이민을 보다]
지난 13일, 일본 나고야에서 중부경제인연합회 카즈키 노무라 국제부장이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안세연 기자

[헤럴드경제(나고야)=안세연·박지영 기자] 지난해 10월, 일본 아이치현의 한 빌딩에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 도요타 본사 및 자회사의 임직원 40여명이 모였다. 기업 정책현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지역사회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교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일본 중부경제인연합회(중경련)는 지난해부터 아이치현 등과 협력해 ‘일본어교실 지원활동'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중경련에 가입한 기업 임직원 100여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현내 일본어교실에서 주기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기금을 조성해 일본어교실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중경련의 카즈키 노무라 국제부장은 “일본에 정착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늘어나고 있는데 자녀들이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는 사례가 많았다”며 “외국인 노동자뿐 아니라 이들의 자녀가 일본어를 제대로 배우고, 일본 사회로 정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2050년까지 외국인 노동자 2배 늘린다=중경련은 2050년까지 일본 내 외국인 노동자를 2배 더 늘리는 것을 목표로 정책 제안, 사업 등을 하고있다. 현재 300만명 수준의 일본 내 외국인이 600만, 700만명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2050년에 일본 경제가 굴러갈 수 없다는 게 일본 경제단체의 판단이다.

일본어교실 지원활동도 해당 목표달성을 위해 시행하는 사업 중 하나다. 카즈키 부장은 “일본 중부 지역은 도요타 등 자동차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지역”이라며 “외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일본에 정착해 일본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미래 세대 양성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 유학생 등 고학력 ‘고도인재(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대상으로 한 지원도 활발하다. 중경련은 일본 대학과 협력해 1학년 때부터 일본 기업을 소개받고, 기업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교류의 장을 만들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일본 기업의 인식도 좋은 편이다. 중경련이 발간한 ‘고도 외국 인재 활약 촉진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인재 채용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한 기업 358사 중 44%가 ‘국적과 관계없이 인재가 필요하다’고 답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채용 의사가 낮다’는 응답은 29%였다.

중경련뿐 아니라 다른 경제단체도 외국인 근로자의 정착에 힘을 보태고 있다. 도쿄를 중심으로 1512개 기업을 회원으로 둔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는 지난해 2월 ‘이민정책 혁신’ 보고서를 발간했다. 경단련은 보고서에서 “외국인이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일본에 정착해야 한다”며 “어린이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일본에서 배우고, 일하고, 가족을 만들고, 은퇴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단련의 정책 제안이 실제 일본의 이민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당시 경단련은 “‘특정기능 2호’는 영주권 취득이 가능하고, 기업에서 간부로 채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며 “현행 조선·선박 등 2개 분야에서 다른 업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1년6개월 만에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은 특정기능 2호를 기존 2개 분야에서 식음료제조업·농업·숙박 등 총 11개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일본은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 개호(간호), 숙박 등의 산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에 특정기능 비자를 발급하는데, 2호의 경우 비자 갱신 시 체류기한이 없고 가족 동반도 가능하다.

▶인재로 보는 일본, 단순노동력으로 보는 한국=이처럼 일본은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경제단체가 구체적인 방안을 실천하고 있다. 한국의 이민정책 전문가들은 “한·일 이민정책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며 “일본은 미래를 고민하며 외국인 노동자가 정착할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하고 있는데 한국은 단순노동력으로 소모품 취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민정책 전문가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은 특정기능제도를 통해 개호·제조업 노동자를 인재로 보고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며 “한국은 아직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들을 저숙련 노동자로만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판단이 정확한 것”이라며 “제조업 등 어떤 분야든지 자국 인력으로 충당이 되지 않는다면 인재로 대우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물론 한국도 변화의 움직임은 있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11만명 수준인 고용허가제(E-9 비자) 외국인력 쿼터(연간 배정)를 연말까지 1만명 더 추가하고, 내년엔 12만명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직이 원칙적으로 제한돼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1년 이상 성실히 근무했다면 사업장 변경을 유연하게 허락해주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법무부에서도 굵직한 변화를 결정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25일부터 숙련기능인력에 발급하는 비자(E-7-4)의 쿼터(연간 배정)를 2000명에서 3만5000명으로 대폭 확대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 정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2년마다 법무부에서 체류기간 연장 허가를 받을 수 있고, 5년 이상 국내 체류한 뒤 학력, 재산 등 요건을 갖추면 영주권 신청도 가능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외국인 근로자 본인이 원하는 기간에 한국에 체류가 가능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조영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법무부의 이번 발표로 인해 상황이 상당히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는 결국 체류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귀환해야 했다”며 "비자 전환을 할 수 있는 문이 매우 좁아 본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불법체류자로 남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고 했다.

이어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 사회에 기여할 결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분명히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정책 효과가 나타나려면, 3년 정도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문가들은 ‘이민청 설립’을 꼽았다. 조 연구실장은 “현재 외국인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정부 부처가 총 15곳이나 된다”며 “정책의 중복, 사각지대, 비일관성, 엇박자 등을 해소하려면 일본의 출입국재류관리청과 같은 사령탑 신설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