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수시인사로 핵심 사업 수장 교체
불확실한 글로벌 상황 대응, 초격차 기술 유지
부회장급 리더로 격상해 1등 DNA 이식
파운드리 격차, HBM 주도권 등이 과제
전영현·경계현 자리 교체 윈윈 인사 평가도
[헤럴드경제=김민지·서재근 기자] 삼성전자가 연말 정기인사가 아닌 상반기에 수시 인사를 통해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부문 수장을 파격적으로 교체한 것은 글로벌 반도체 불확실성에 적극 대처하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의 격차는 여전히 크고,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도 SK하이닉스에 뒤쳐지는 등 삼성전자가 극복해야 할 과제를 ‘베테랑 급’ 리더십으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더불어 이재용 회장 취임 3년차를 맞아 삼성이 그룹 전반에 쇄신 강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후속 수시 인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이번 반도체 수장 교체는 경계현 사장의 용퇴 의사로 이뤄졌다. 앞서 이미 경 사장은 지난해 이어졌던 반도체 불황을 극복하고 상승 동력을 마련해 놓은 후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 1분기 들어 반도체 실적이 되살아나면서 최근 용퇴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DX·DS부문 양 대표이사가 협의하고 이사회에도 사전 보고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 사장의 용퇴 의사를 보고 받은 이재용 회장은 DS부문장으로 전영현 부회장을 발탁, 기술혁신과 리더십 강화를 통해 반도체 사업 쇄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메모리 중심 반도체 시장 전반적으로 반등하는 추세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우선, 파운드리 시장의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 2030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파운드리에서 업계 1위 TSMC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 점유율은 61.2%, 삼성전자는 11.3%를 기록했다. 격차가 50%포인트가 넘는다.
여기에 ‘반도체 원조’ 강자인 인텔이 본격적으로 파운드리 시장에 뛰어들면서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다. 인텔은 2030년 삼성전자를 꺾고 파운드리 2위에 오르겠다고 선전포고 했다. 삼성전자로서는 TSMC를 쫓아가는 동시에 인텔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30년 넘게 ‘메모리 1등’ 타이틀을 지키고 있지만, AI(인공지능) 빅뱅 최대 수혜로 꼽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에 리더십을 내준 상황이다. 지난해 챗GPT를 시작으로 인공지능(AI) 붐이 시작되면서, SK하이닉스는 선제적으로 HBM 연구개발한 성과를 통해 성공적으로 실적을 개선했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고부가가치 D램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2019년 HBM연구개발 전담팀을 해체하는 등 사전에 시장을 정확히 예상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후 HBM 개발에 속도를 올려 기술적으로 격차 극복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영업마케팅을 강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 여파로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49%, 삼성전자 46%다.
이번 전영현 부회장 전격 발탁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DS부문에 사장보다 높은 부회장급 리더를 세워 확실한 무게감을 실어주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며 “반도체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지닌 전영현 부회장이 제격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전·스마트폰을 맡고 있는 DX부문의 경우 한종희 부회장이 맡아 이끌고 있다. DS부문도 전영현 부회장을 리더로 발탁함으로써 불확실성이 늘어나고 있는 반도체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1960년생인 전 부회장은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에 책임연구원으로 입사해 메모리사업부장까지 오른 반도체 업계의 ‘베테랑’이다. 2017년부터 삼성SDI 대표이사를 역임한 후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아 삼성의 차세대 먹거리 발굴에 힘써왔다. 반도체와 배터리, 차세대 기술 분야에 탁월한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삼성SDI의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할 때에는 ‘반도체 1등 DNA’를 배터리 부문에 성공적으로 이식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당시 2년 연속 적자에 머무르던 삼성SDI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그는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확대와 품질경영을 기반으로 신성장 동력 확보와 빠른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 당시 부진을 이어가던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성공적인 실적 반등도 주도했다.
전 부회장이 사장에 취임한 첫 해, 삼성SDI는 6조3200억원의 매출과 1170억원의 영업이익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후 해마다 10%~44%가량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한 바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전 부회장이 현재 삼성 사장단 중에서는 가장 새로운 안목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며 “지난해 정기 연말인사 이후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은 후 현재까지 현업을 완전히 떠나 삼성이 하고 있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사업 분야만 계속 연구해 삼성이 어떻게 하면 빠르게 도약할 수 있을지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에너지를 반도체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것이다.
경 사장이 반도체 수장에서 물러나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도 “미래사업기획단 역시 이재용 회장이 중용하는 자리여서 경 사장 역할이 큰 것은 여전하다는 차원에서 이번 경 사장과 전 부회장 인사는 윈-윈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