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화재 1.9건…전기차는 1.3건

“화재 원인 규명 및 소방 설비 구축에 집중해야”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공개 요구 거세질 듯

커지는 ‘전기차 포비아’…“배척보다는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비즈360]
서울 마포구 한 주차타워에 전기차 입고 불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최근 국내에서 전기차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전기차 포비아(공포)’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전기차는 무조건 위험하다’,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출입을 막아야 한다’ 등 극단적인 전기차 배척 분위기에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배척은 전기차·배터리 업계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정확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 인천 서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 세단 ‘EQE’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가 중국 등에서 화재 위험으로 리콜사태를 겪은 파라시스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배터리 품질 불량이 화재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이번 사건으로 특정 제조사를 넘어 전기차와 배터리 전반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선 휘발유나 디젤 차량 대비 전기차가 더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할까 우려한다.

실제 전기차의 화재 확률 자체는 내연기관보다 떨어진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등록자료와 소방청의 화재 통계를 보면 내연기관 차량 1만대당 화재 발생 건수는 지난해 1.9건이었던 반면, 전기차는 1.3건이었다. 폐쇄적인 지하주차장 구조를 고려하면, 전기차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스프링클러 연동 정지버튼 눌렀다”…인천 전기차 화재 진상 드러나
5일 오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마친 경찰이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를 옮기고 있다. 지난 1일 오전 6시 15분께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주민 22명과 소방관 1명 등 모두 23명이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차량 40여대가 불에 타고 100여대는 열손과 그을림 피해를 입었다. [연합]

지난해 9월 전남 광양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내연기관차에 불이 나 주민 60여명이 연기를 흡입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당시 주민 130여명이 대피했고 차량 11대가 손상됐다.

7명의 사상자를 낸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지하주차장 사고도 초기에는 전기차 화재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디젤 차량에서 발생한 고온의 배기가스가 폐지에 옮겨붙은 사건이었다. 이후 스프링클러 등이 작동하지 않아 더 큰 화재로 번졌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전기차 화재 역시 다른 내연기관차 화재와 마찬가지로 초동 대응만 제대로 된다면 큰불로 번지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지난 5월 군산 아파트 지하주차장, 2021년 11월 충주 호암동 지하주차장 화재의 경우 전기차 1대의 전소로 피해가 그쳤다. 지난 6일 금산군 금산읍의 한 주차타워 1층에서 불이난 기아 EV6 역시 1시간 37분 만에 불을 껐으며, 불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는 한 번 불이 붙을 경우 완전 연소까지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맞다”면서도 “화재의 빈도수, 화재의 피해 규모 등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차량의 특성을 떠나 아파트 등 건물 지하주차장에 소방 설비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 이번 인천 전기차 화재 폭발 당시에도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초기 진화에 실패한 점이 피해 규모를 키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5월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대응 연구 보고회’를 개최했다. LH의 연구 용역을 진행한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은 “상부 스프링클러만 제대로 작동하면 인접 차량으로의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는 실증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스프링클러, 질소 소화기 확충, 자동 수조 설치 등의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차를 덮어 공기를 차단해 전기차 화재 진압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 질식 소화포 지원 사업 역시 작년 말에야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되기 시작했을 정도로 아직 대책이 미흡하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전기차 산업 발전을 위한 인프라 투자는 ‘전기차 주차 및 충전소’ 등에 집중되고 별도 안전기준이나 소방 장비에 대한 제도 및 실질적 논의는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전기차 관련 인프라 투자가 화재, 안전 관련 장비 마련 등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배터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전기차 구입 시 고객들이 배터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자동차 회사들은 차량의 크기, 무게, 출력, 연비 등은 공개하지만, 배터리의 경우 용량만 공개할 뿐 제조사를 밝히지는 않는다.

반면 전기차 선진국으로 불리는 유럽은 오는 2026년부터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세계적으로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가 의무화할 경우 가격이 싸지만, 여러 차례 안전성 논란이 제기된 중국 배터리 대신 국내 배터리에 대한 선호가 높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커지는 ‘전기차 포비아’…“배척보다는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비즈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