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 두번째달 정규 2집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 하루에도 수많은 신곡들이 쏟아지는 정신없는 세상에 밴드 두번째달의 행보는 느긋하기만 합니다. 무려 10년 만에 새로운 정규 앨범을 발표하다니 말입니다. 10년 전 데뷔 앨범 ‘세컨드 문(2nd Moon)’으로 음악 판을 뒤집어 놓고 기약 없이 기다리게 만들더니, 잊어버린 지 한참 지나서야 멋쩍은 인사를 전하는군요.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
두번째달이 다양한 악기로 쏟아내는 이국적이면서도 친근한 선율의 매력은 설렘이었습니다. 두번째달의 데뷔 앨범은 매 트랙마다 음악으로 다른 세상을 펼쳐 놓았던 역작이었죠.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국적을 짐작하기 어려운 이름 모를 어딘가를 여행하는 체험을 가능하게 만든 작품이었다고 표현한다면 과장일까요? 말 그대로 ‘월드뮤직’이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민속 음악을 친근한 방식으로 재해석해 연주하는 밴드라는 정체성은 여전합니다. 남인도 지역의 구음 장단이라는 ‘콘나콜’을 퓨전재즈 풍의 연주와 결합한 곡 ‘타키타타키타다디게나도’가 결코 낯설게 들리지 않는 걸 보면 말이죠. ‘달이 피었네’로 시작해 연속으로 이어지는 ‘가라앉는 섬’ ‘똑바로 걷기’ ‘달리는 비행기’는 두번째달 특유의 여정을 엿보는 듯한 두근거림을 선사합니다. 고국 아일랜드로 돌아간 원년 멤버 린다 컬린(Lynda Cullen)이 직접 만들어 보내온 곡 ‘페이퍼 보트(Paper Boat)’는 오랜 만의 새 앨범만큼이나 반가운 선물입니다.
하지만 변화도 적지 않습니다. 이번 앨범의 알파와 오메가 트랙인 ‘구슬은 이미 던져 졌다’와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의 넘치는 흥은 과거 두번째달의 음악에선 접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죠. 강산이 한 번 변해서야 다시 돌아온 두번째달은 여기에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도 품은 듯 슬그머니 음악에 우리 소리를 더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을 원형 그대로 차용해 소리꾼 이봉근과 협업한 곡 ‘사랑가’이죠.
아시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두번째달은 앨범을 감상하는 일보다 공연을 보는 일이 더 즐거운 밴드입니다. 오는 12ㆍ13ㆍ19일 서울 서교동 KT&G상상마당에서 두번째달의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가 열린다는군요.
▶ 조동희 미니앨범 ‘다섯 개의 사랑 이야기’= 거목일수록 그늘은 깊고 짙은 법이죠. 싱어송라이터 조동희라는 이름 앞에는 여전히 거장 조동진과 조동익의 동생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조동희의 디스코그래피는 적지 않은 활동 경력에 비해 무척 단출합니다. ‘하나음악 옴니버스’ 앨범에 참여하고 밴드 원더버드의 보컬로도 활동했지만, 그가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 것은 고작 4년 전이니까요. 조동희는 두 거목의 그늘에서 억지로 벗어나려 애쓰는 대신, 그늘에도 시들지 않는 자신만의 묘목을 기르는 방편을 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 앨범은 ‘다섯 개의 사랑 이야기’라는 타이틀처럼 서로 같은 듯 다른 모습을 가진 다섯 곡을 품고 있습니다. 몽환적인 소리의 공간 속에서 어린 시절의 사랑을 돌아보는 ‘구름’, 월드뮤직 풍의 밝은 사운드로 인류애와 희망을 노래하는 ‘검은 아이’, 자기희생적인 사랑에 대한 회한을 노래하는 ‘잘 한 일일까’, 사랑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란 위로를 담은 ‘나를 만나러’ 등 곡마다 개성이 뚜렷해 듣는 재미가 만만치 않습니다. 가사와 목소리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주는 것은 간소하나 모자라지 않은 편곡입니다. 더 클래식의 박용준이 편곡을 맡은 ‘구름’과 ‘잘한 일일까’에서 이 같은 특징이 도드라집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또한 ‘구름’에서 고요를 깨우는 스위스 악기 핸드팬(Handpan)의 낯선 울림과 ‘나를 만나러’에서 목소리 위에 부유하는 인도의 전통악기 시타(Sitar) 연주에선 익숙함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조동희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이 앨범의 또 다른 매력은 가사입니다. 조동희는 싱어송라이터 이전에 작사가로 유명세를 날렸습니다. 장필순의 대표곡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의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가사는 조동희의 작품이었죠. ‘구름’의 “구름처럼 너의 얼굴은 저 하늘 위에 가득 차오고”, ‘잘한 일일까’의 “뒤돌아 있는 너를 사랑하는 것 나 잘한 일일까”와 같은 가사는 쉽게 다음 트랙으로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 크랜필드 미니앨범 ’파란 그림’= EBS ‘스페이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 ‘2014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 수상,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신인뮤지션 지원 프로젝트 ‘2014 K-루키즈’ 선정. 이 같은 경력이 대변해주듯 크랜필드는 지난해 한국 대중음악계 최고의 신인밴드 중 하나입니다. 몽환적이면서도 팝의 감각을 놓치지 않는 영롱한 사운드는 마치 동화 같은 소리의 풍경을 연출했죠. 이는 이전의 한국 대중음악계에선 들어보기 어려웠던 신선한 소리였습니다. 크랜필드의 새로운 앨범에 대한 기대는 당연한 수순이었죠.
이 앨범에는 담긴 음악은 파란 색조로 가득 찬 재킷을 많이 닮았습니다. 전작보다 편성을 확장한 악기들이 쏟아내는 청량한 소리들은 재킷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절로 파란색을 떠올리게 만드니까요. 게다가 ‘파랗네’ ‘코발트’ ‘파랑새’와 같은 수록곡의 제목부터 “숨이 멎은 파란 별 위에”(파이로)와 “하늘이 핑 도네. 내 작은 배 위에”(표류기) 같은 가사까지 모두 파란색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죠.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충실한 콘셉트 앨범(수록곡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엮어서 채운 앨범)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정규작이 아니라는 점이 다소 아쉽지만, 앨범 전체적으로 전작에 비해 프로듀싱이 일관성 있게 잘 이뤄져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징검다리로 손색없는 작품입니다. 1집에 비해 조금 더 다채로워진 멜로디와 상대적으로 잘 빠진 사운드는 2집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고요.
크랜필드는 오는 4월 5일 서울 서교동 벨로주에서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개최합니다. 앨범 발매 후 1달 이상 흘러 관객들이 수록곡을 숙지했을만한 시점에 마련되는 쇼케이스인만큼 알찬 자리가 되겠군요.
※ 살짝 추천 앨범
▶ 안녕하신가영 정규 1집 ‘순간의 순간’= 맑은 목소리 뒤에 감춰진, 일상과 관계를 바라보는 진지한 시선.
▶ 신현희와김루트 미니앨범 ‘신현희와김루트’= 귀엽고 명랑해 보이지만 속에 능구렁이가 들어있는 것 같아.
▶ 신화 정규 12집 ‘위(We)’= 데뷔 17년차 아이돌. 기본 이상의 앨범을 꾸준히 내주는 자체가 고맙다.
▶ 만쥬한봉지 정규 1집 ‘밤마실’= 들으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뽕끼와 익살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