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성향 인사들이 잇따라 침략역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등 일본이 극우로 치닫자, 중국이 보다 더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다. 대응이 훨씬 세련되고 정교해졌다. 일본의 침략역사 자료 공개, 주변국과의 공조 강화, 각국 주재 중국 외교관을 총동원해 현지 언론 매체를 활용한 대여론전 등 다각도 노력을 펼치며 일본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8~9일 상하이(上海)사범대학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중일학술회의’에서 이런 변화가 감지됐다. 한중일 학계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국제연대를 강화하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에 협력키로 한 가운데, 중국이 학술 교류와 자료 공개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난징(南京)대학살’을 비롯한 일본의 중국 침략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중국 제2역사당안관의 마천두(馬振犢) 부관장은 “학술연구를 통해 일본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며 “연구자들이 찾아오면 소장 자료들을 적극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를 제안한 것도 중국 측이었다. 그동안 경제에 영향을 줄까 우려해 일제 사료 공개 수위를 조절해 온 중국이 적극적 공개로 태도를 바꾼 것이다. 중국은 ‘일본군 포로’와 관련한 문서, 일본군 고위 장교들의 전시 활동 등 광범위하고 민감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본의 그릇된 역사관 바로잡기에 적잖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의 변화는 지난해 12월 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뚜렷해졌다. 당시 도쿄 주재 중국대사와 아베 총리가 면담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아베 총리가 신사 참배를 강행하면서 중국은 발끈했다. 즉각 주영(英) 중국 대사가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기고를 실어 아베를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악당 ‘볼트모트’라고 비유했고, 미국 워싱턴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달 미국 유명 TV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베의 역사인식과 우익 성향이 문제를 만드는 비법”이며 “전후 국제 질서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양심에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 “전통적으로 카메라 앞에 서길 꺼리는 중국 대사들이 러시아, 에티오피아, 유럽 등에서 미디어에 등장해 아베에게 지역 안보를 위협하는 ‘군국주의자’란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며 “전략이 2012년(센카쿠 열도 분쟁)과 뚜렷하게 변화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대사관에 날달걀과 물병을 던지고, 일본 차와 일본 매장을 공격하는 등의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대응이 더이상 아니란 얘기다. 로버트 로스 보스턴대 정치학 교수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세계 외교 무대에서 한 수 위에 있는 것으로 느끼는 것 같다. 이제는 반일 시위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다. 중국이 약할 때는 반일시위가 유일한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여러 수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도 여런 경로를 통해 대내외에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강조하고,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시 주석은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석해, 지난 6일 각국 정상 가운데 처음으로 푸틴 대통령을 만나 일본의 군국주의 역사를 한목소리로 강도높게 비판했다. 시 주석은 앞서 지난해 8월 “중국의 이야기를 말하고, 중국의 목소리를 퍼뜨리라”라며 해외 미디어를 활용한 적극적 외교 노력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지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