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이번 비상계엄은 약 6시간만에 종료됐지만, 그 여파는 원화 가치 약세를 비롯해 채권시장까지 퍼지는 등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부터 전개될 국내 정치상황의 ‘불확실성’이 채권시장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거란 전문가 진단이 나온다. 국고채 금리가 치솟으면 국내 회사채와 금융채(은행채) 등이 줄줄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금융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대출금리까지 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은 전날 2.585%를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당선으로 해당 금리는 3% 목전까지 치솟았지만 다시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다.
하지만 간밤에 진행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국고채 금리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나온다. 국채의 경우 대외 신뢰도에 직격탄을 맞는데, 지난 밤 노출된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한국 국채 가격을 떨어뜨리고, 금리는 더욱 밀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의 핵심은 신용이기 때문에 신용이 낮을수록 이자(금리)를 더 줘야 한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날 “한국 증시는 계엄령 발표와 해제 등 정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라면서 “한국 채권시장은 대외 신인도와 관련 있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만 한국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이 안정을 보였고, 원화와 해외 ADR(주식예탁증서) 등이 변동성 확대 후 일부 안정을 보였다는 점은 우호적”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국채 금리가 기업채와 금융채 금리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국채금리가 뛰면, 이보다 신용도가 더 낮은 금융채와 회사채의 금리도 밀어낼 가능성이 높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본부장은 “금리가 영향을 미치는 경로가 보통 기준금리에서 국고채, 회사채 순으로 진행된다”며 “하지만 현재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영향력이 축소됐기 때문에 오히려 국고채 금리가 시장금리의 가늠자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의 통화정책보다 국가의 신용도가 국내 시장금리를 결정하는데 더욱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이 자금 경색을 맞고 금융소비자들의 대출금리가 인상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고채 금리는 주택담보대출 등 여신 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와 연동된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당선되면서 채권 시장은 일제히 오름세를 나타냈고, 이로 인해 금융소비자들의 대출금리 인하 체감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
반면 한국 경제가 과거 대통령 탄핵을 겪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자금이탈 등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서상영 연구원은 “국채 금리는 한국 계엄령 소식에 안전 자산 선호 심리가 높아지며 하락하기도 했지만, 미국 고용 지표 개선에 힘입어 상승 전환했다”며 “금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준(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위원들의 발언에도 변화가 제한된 가운데 보합권 등락했다. 이런 가운데 장 후반 한국 계엄령 해제 발표 소식에 안전 자산 선호 심리 약화되며 재차 상승을 확대했다”고 전했다.
이혁준 본부장은 “우리나라의 불확실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이 있긴 하다”면서도 “과거 탄핵정국이나 여러 가지 정치상황이 혼란스러울 때도 길게 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탈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단기적으로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이날 아침 주식·채권·외화자금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안심 메시지를 내고 나섰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F4 회의를 열며 “당분간 주식·채권·단기자금·외화자금시장이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