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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빛낸 스포츠 스타…美 MLB 최초 ‘50홈런-50도루’ 달성 오타니 쇼헤이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193cm에 95kg의 거구. 평균 구속 160km, 타구 속도 177km. ‘왼손으로 타격하고 오른손으로 던지는’ 투타 겸업 선수. 여기에 그라운드 쓰레기를 손수 줍는 바른 인성까지….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다저스의 일본 출신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30) 얘기다. 148년 MLB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 ‘50홈런-50도루’ 시대를 연 오타니는 ‘지명타자(타격시 투수대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로는 처음으로 양대 리그(내셔널리그·아메리칸리그)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됐다. 1973년 MLB에 지명타자 제도가 첫 도입된 이래 50년이 넘도록 정복되지 않았던 ‘지명타자 MVP’를 일본 출신 오타니가 이뤄낸 것이다.
오타니는 올해 MLB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쏟아냈다. 타율 0.310, 54홈런, 59도루, 130타점, 134득점 등 대기록을 세우며 LA다저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 시즌 40홈런-40도루도 힘든데 각각 50을 훌쩍 넘긴 것이다.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에서 1위 표 30표를 싹쓸이한 이유다. 오타니가 MVP로 뽑힌 것은 2021년, 2023년 아메리칸리그(AL)에서 MVP로 뽑힌 데 이어 이번 내셔널리그(NL)까지 통산 세번째다.
“시속 160km를 목표로 정했을 때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끝이라고 여기며 3년 동안 연습했습니다.”
‘만화같은 야구’. 오타니의 야구를 일컫는 말이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극적인 야구 기량을 펼쳐서다. 어린시절부터 남다른 도전을 해온 오타니는 지난해 12월 다저스와 10년 총액 7억달러(약 1조37억원), 전 세계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대 규모 계약을 체결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오타니의 야구인생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믿었던 오랜 동료의 배신, 치명적인 팔꿈치 부상, 천문학적인 몸값을 증명해야하는 심적 부담감까 화려함 뒤엔 시련도 많았다.
“야구 할수 있는 주말만 기다렸다”…요미우리 자이언츠 빅팬 ‘야구소년’
1994년 7월 5일. 일본 도쿄에서 북쪽으로 480km 남짓 떨어진 이와테현 오슈시에서 오타니는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오타니의 아버지 오타니 도루는 지역 미쓰비시 공장에서 일하며 세미프로 야구 선수를 겸하다 실업 리그에서 뛰었다. 오타니의 어머니 가요코는 올림픽 출전까지 노렸던 배드민턴 선수였다. 운동선수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코치를 받아 자연스럽게 야구라는 스포츠에 흥미를 키웠다.
‘야구소년’이라는 애칭만큼 ‘야구를 위해 사는 소년’으로 알려지게 된 어린 오타니는 경기가 없을 때면 TV로 프로 팀 경기를 자주 봤다. 특히 요미우리 자이언츠팀을 좋아했다. 오타니는 “야구 선수들이 너무 근사해 보였다”며 “경기를 할 수 있는 주말이 늘 손꼽아 기다려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던질 때에도 칠 때에도 자신의 레벨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까 하는 즐거움이 있다.”
오타니의 야구에 대한 진심은 하나마키히가시 고교 재학 중에 세운 계획표 한 장으로 압축된다. ‘만다라트(Mandal+Art)’로 알려진 가로 9칸, 세로 9칸의 전방위적 계획표에 실천과제와 42세까지 나이별로 달성해야 할 목표를 미리 계획한 것이다. 한 가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8가지 세부 목표와 64가지 실행 계획이 담겼다.
오타니는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을 위해 몸만들기, 제구력, 구위, 멘털, 구속, 인간성, 운, 변화구 구사 능력을 키우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단순 투구품, 훈련 계획, 식단 조절, 마음가짐뿐 아니라 ‘감사’, ‘배려’, ‘예의’, ‘인사하기’, ‘휴지 줍기’ 등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도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오타니는 MLB에 진출한 뒤 현재까지도 이 계획표를 착실하게 시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라운드의 쓰레기를 줍는 등 선행은 여전히 포착된다.
뿐만 아니라 오타니는 고교시절 장기계획도 세웠다. 18세부터 42세까지 해마다의 목표를 설정했다. 18살에는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하고, 20살에는 메이저리그로 승격, 선발 로테이션은 21살에 처음으로 진입해서 16승을 올리고, 22살에는 사이영상을 탄다.
그는 심지어 2세를 위한 계획까지 세웠는데, 37살에 자신의 첫째 아들이 야구를 시작한다는 희망을 적어넣었다. 나아가 은퇴할 나이는 40으로 잡고, 마지막 경기는 노히트 노런(No-Hit No-Run, 투수가 상대팀에 안타나 실점을 단 1개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것)으로 장식한다.
과거 일본 매체를 통해 공개된 계획안과 오타니가 밟아온 길을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 시기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오타니는 대부분의 목표를 이뤘다. 특히 26세 목표였던 월드시리즈 우승과 결혼은 계획보다 4년 뒤인 30세인 올해 모두 달성했다.
모두가 의심했지만…투타 겸업 ‘이도류’ 도전, 만화같은 야구 서막
고등학교 재학 시절 시속 160km 강속구를 성공한 오타니는 2013년 일본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했다. 오타니만의 ‘만화 같은 야구’가 시작된 곳이다.
오타니는 현대 야구에서 볼 수 없던 ‘투타 겸업’을 시도하며 도전의 길을 열었다. 오타니는 왼손으로 타격하고 오른손으로 던지는 기술을 연마했다. 일본에선 ‘이도류(二刀流)’로 불린다. 일본 사무라이 검술에서 양손에 칼 또는 검을 들고 공수를 행하는 기술을 말한다. 남들보다 두 배의 훈련과 두 배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오타니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타니는 일본에서 5년 동안 투수로 통산 42승 15패와 평균자책점 2.52, 타자로 타율 0.286에 홈런 48개, 166타점을 올렸다. 일본프로야구를 제패한 오타니는 2017년 12월 계약기간 6년, 계약금 231만5000달러(약 33억원), 포스팅 응찰료 2000만달러(286억원)의 ‘헐값’에 미 MLB LA 에인절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투수는 경기를 설계할 수 있고, 타자는 경기를 결정지을 수 있다.”
그가 수많은 러브콜을 마다하고 비인기 팀인 에인절스를 택한 이유는 ‘투타 겸업을 자유롭게 지원한다’는 구단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는 MLB 데뷔 시즌인 2018년 투수로 4승 2패 평균자책점 3.31, 타자로 타율 0.285, 22홈런, 61타점을 올리며 신인상을 받았다.
오타니는 에인절스에서도 야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2021년 투수와 야수로 올스타에 선정됐고, 2022년엔 투수로 규정 이닝, 타자로 규정 타석을 채웠다. 이는 모두 MLB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2023 정규시즌 MVP 발표 당시에는 오타니가 안고 있었던 반려견 ‘디코이(Decoy)’까지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화제가 됐다. 2023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오타니는 다저스와 역대 프로스포츠 최고 대우의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오타니는 동료들에게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오타니의 동료인 메이저리그 데뷔 11년차 메테랑 유격수 미겔 로하스(35)는 지난 9월 미국 시리우스XM의 MLB 네트워크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오타니는 올 시즌 지명타자로 뛰고 있지만 뒤에선 내년 시즌 등판을 위해 계속 준비하고 있다”며 “투수로서 재활을 하기 위해 일찍 야구장에 나와 불펜 피칭을 하기도 한다. 그 점이 가장 인상 깊다”고 말했다.
이어 로하스는 “오타니는 국제적인 아이콘이다. 팬들과 미디어는 그가 경기장에서 하는 일만 보지만 난 무대 뒤에서 보는 그에게 더욱 깊은 감명을 받는다”라며 “그는 루틴에 집착하지 않는다.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라고 경기 전 오타니의 숨은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팔꿈치 부상·동료의 배신에도…‘3번째 MVP 만장일치 수상’ 극복의 아이콘
오타니는 LA 에인절스에 입단한 해인 2018년 팔꿈치 척골 측부인대에 손상을 입어 경기에서 빠졌다. 당시 구단은 오타니가 수술은 필요하지 않다고 발표했지만 오타니는 꽤 오랜 시간동안 팔꿈치로 골치를 앓는다. 다시 연습을 시작하자 오타니의 팔꿈치는 또 손상을 입었고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토미 존 수술을 받으라는 권고를 듣고 그해 10월 팔꿈치 수술을 했다.
2019년에는 전년보다 못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 구단은 오타니가 무릎이 아픈 상태에서 공을 세게 던지려고 할 때 딜리버리(투수가 공을 던지는 일련의 동작)를 달리 했고, 그 바람에 부상을 입기 쉬운 상태가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타니는 선천적으로 무릎에 문제가 있었는데 정상적인 슬개골과 달리 그의 왼쪽 슬개골은 하나의 뼈로 합쳐지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해 9월20일 오타니는 커리어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오타니는 ‘이도류’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투수를 병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오타니는 올 시즌 타자로 경기에 나섰다. 팔꿈치 수술 후 재활을 마친 오타니는 2025 시즌에는 다시 한번 투·타 겸업에 도전할 각오다.
오타니가 LA 다저스로 구단을 옮긴 올해 그는 초대형 악재를 만나기도 했다. 바로 절친이자 그의 전담 통역사인 미즈하라 잇페이가 그를 배신한 것. 2017년 LA에인절스에 입단한 이후 7년 동안 오타니의 개인 통역사를 맡았던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돈 수백만 달러에 손을 대며 불법 도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잇페이는 오타니의 통역 업무뿐 아니라 아플 때 돌봐주는 등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오타니는 이후 기자회견 등에서 담담하게 이와 관련한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파장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오타니는 개막 이후 41타석 연속 무홈런을 기록하며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금세 정상궤도로 복귀했다.
LA다저스와 10년 총액 7억달러…전 세계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대규모 계약
오타니는 지난해 12월 LA 다저스와 역대 프로스포츠 최고액인 7억달러(약 1조37억원)의 FA 계약을 체결했다. 매년 연봉 7000만달러(약 1003억원) 중 6800만달러(약 975억원)를 계약 기간이 끝난 2034년부터 2043년까지 10년 동안 무이자로 받기로 했다. 결국 LA 다저스에서 뛰는 10년 동안은 실수령액이 매년 200만달러(약 28억원)를 받는 셈이다.
지난 5월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 12개월을 기준으로 세계 스포츠 선수 수입 순위에서 오타니가 8530만달러(1185억원)로 13위에 올랐다. 다저스와 계약하면서 맺은 연봉 지급 유예 조항 탓에 연봉 총액으로는 2530만달러(약 363억원)에 그쳤지만, 대신 스폰서 계약을 포함한 부수입이 무려 6000만달러(약 860억원)나 됐다.
오타니의 광고수입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12월 다저스와 계약하면서 구인정보 사이트 ‘바이토루’를 운영하는 딥주식회사의 브랜드 앰버서더가 된 이후로 매월 새로운 광고 계약을 하고 있다. 오타니는 이미 시즌 시작전에 포르쉐, 일본항공, 미쓰비시UFJ은행, 세이코, 코세, 니시카와 등과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었다. 여기에 올해 무수한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면서 추가 수입을 더해 올 광고 수익이 무려 100억엔(약 938억원)을 넘어선다.
오타니로 도배된 日 열도…‘아내의 가족관계’, ‘유니폼· 야구공 경매’까지
일본 열도는 오타니에 열광하고 있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지명타자로만 출전해 MVP를 차지한 선수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2021시즌과 2023시즌 MVP에서 ‘투타겸업’ 오타니가 높게 평가를 받았다면, 이번엔 타자 오타니만으로도 최고의 선수로 인정 받은 셈이다.
일본은 MVP 수상소식이 전해지자 그야말로 오타니로 도배됐다. 미디어는 호외를 발행하며 일제히 오타니의 수상소식을 속보로 알렸고, 전국의 편의점엔 1면 헤드라인으로 오타니의 MVP를 장식한 신문이 깔렸다.
현지 TV방송은 오타니의 은사와 아내, 반려견까지 모두 화제로 다뤘다. 아사히TV는 일본야구 레전드인 마쓰자카 다이쓰케를 내세워 오타니의 MVP 수상을 대대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오타니가 사용한 물건들도 인기다. 미국 경매 회사인 그레이 플란넬 옥션에서는 오타니가 2017년 일본프로야구 닛폰햄에서 착용했던 유니폼이 경매에 나왔다. 입찰가격은 5000달러(717만원)에서 시작했다.
이 유니폼 뒷면에는 ‘OHTANI’의 이름과 등번호 11이 검은색 바탕에 테두리가 흰색 자수로 새겨져 있다. 2017년 닛폰햄 유니폼은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일본프로야구에서 입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커졌다.
오타니는 올 시즌 50호 홈런볼로도 경매 신기록을 세웠다. 오타니의 홈런볼은 지난달 경매에서 439만2000달러(약 63억원)를 기록했다. 종전 홈런공 최고액이었던 마크 맥과이어의 1998년 시즌 70번째 홈런공 가격(305만달러·약 44억원)을 가볍게 넘겼다.
오타니를 향한 뜨거운 인기만큼 그의 아내 다나카 마미코(28)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일본에서는 다나카의 과거사진, 가족관계, 패션 정보까지 셀럽처럼 자세히 보도했다.
오타니는 지난 3월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다저스 연습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혼 사실을 알렸다. 그는 아내에 대해 “평범한 사람이다. 3, 4년 전쯤 일본에서 우연히 알게 돼 짧은 기간 동안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다. 사귀기 시작한 건 훨씬 뒤”라며 “약혼은 지난해에 했는데 아내가 미국에 온 건 최근이다”고 했다.
오타니의 아내 다나카는 1996년생으로, 신장 180cm, 명문대 와세다대 출신, 일본여자프로농구 선수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지 매체들은 다나카의 지인들과 가족관계까지 집중조명하고 있다.
동창들로부터 제공받은 다나카의 사진에는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신 뒤 노래방에 간 모습 등이 담겼다.
한 대학 동창은 “(다나카는)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며 분위기를 띄우긴 했어도 남의 험담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며 “남녀불문 마미코를 좋아했고, 과에서도 중심이 되는 존재였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Mamiko Tanaka is a BALLER | FIBA 3x3 Basketball Mixtape
또 다른 동창은 “함께 밥을 먹고 노래방을 간 적이 있는데 계속 농구 얘기를 하더라. 농구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었다”며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고 다른 사람이 노래할 때 웃으며 호응해줬다”고 회상했다.
다나카가 착용하는 옷과 액세서리, 경기장 좌석등급도 관심의 대상이다. 일본 네티즌들은 그가 SPA 브랜드의 5000엔(약 4만7000원) 짜리 가방을 들고, 경기장 일반석에 앉은 것을 공유하며 “검소한 모습에 호감이 생긴다”고 찬사를 보냈다.
아내는 물론 그의 가족까지 일거수일투족 화제가 되는 오타니. 이젠 시속 180km를 넘은 타구를 던지는 ‘야구 괴물’로 팬들의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조 매든 전 LA 에인절스 감독은 오타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가 여태까지 본 적 없는 선수”, “경기 그리고 경쟁 자체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이끌어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