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빈센트 반 고흐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

싱어라렌 박물관서 사라진 고흐 작품

미술 탐정 아서 브랜드 덕에 되찾아

작품에서 찾은 DNA로 범인 닐스 잡아

[0.1초 그 사이]는 역대급 몸값을 자랑하는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찰나의 순간’으로 승부가 나뉘는 치열한 미술시장에서 선택받은 그림들, 그 안에 얽힌 속사정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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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장바구니에 담긴 채로 회수된 고흐의 작품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1884) [아서 브랜드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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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장바구니에서 나온 고흐의 작품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1884) [싱어 라렌 박물관]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바스락거리는 질감의 1000원짜리 이케아 플라스틱 장바구니. 그런데 그 안에 든 그림은 놀랍게도 반 고흐(1853~1890)의 걸작이었습니다. 작품명은 서른하나 고흐가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마을 뉘넌에서 그린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1884). 그런데 어쩌다 85억원 상당으로 평가되는 고흐의 이 그림이 값싼 장바구니에 담기게 된 걸까요.

시간은 불과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코로나가 강타한 2020년, 대담한 도난 사건

“와장창창!!”

2020년 3월 30일 새벽 3시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동쪽에 있는 싱어 라렌 박물관에선 난데없는 굉음이 울렸습니다. 유리문이 ‘쩍’ 하며 갈라지는 소리였죠. 그러자 가면을 쓴 범인이 산산조각이 난 유리 조각을 밟고 박물관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그는 유리를 깰 때 썼던 묵직한 망치를 오른손에 쥔 채 정신없이 박물관 안을 뛰어다녔습니다. 범인의 목표는 단 하나,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연 주역인 고흐의 그림 한 점을 훔치는 것.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박물관이 임시 휴관 중이었던 틈을 타 치밀한 범죄를 시도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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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망치로 유리문을 깨고 들어가는 모습. [싱어 라렌 박물관 CCTV 영상 캡처]

당시 정황이 찍힌 CCTV 영상에는 범인이 고흐의 작품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조급한 발걸음으로 박물관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경보기가 작동하면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도둑이 사라지고 난 뒤였죠. 공교롭게도 이날은 고흐의 생일이었습니다.

그후 3년 반 동안 작품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범인의 신원도 공개되지 않았고요. 이 즈음에서 범인이 훔쳐 달아난 그 그림에 대해 좀 알아볼까요. 많은 분들이 고흐가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에 머물며 색채 실험을 거듭한 시기는 알고 있지만,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그가 느닷없이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해 전환점이 된 시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데요.

고흐의 초기 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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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성화 ‘돌아온 탕자’(1661-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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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뉘넌은 고흐가 서른 살부터 2년 여간 부모와 함께 산 소박한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고흐는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이곳에 와 목사관에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고흐는 아버지와의 말다툼 끝에 부모를 만나지 않고 따로 떨어져 살았던 터였죠.) 고흐의 아버지는 이 마을의 목사였거든요.

애초에 고흐는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자 했었지만, 이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렘브란트가 말년에 그린 그 유명한 성화 ‘돌아온 탕자’(1661-1669)에 깊은 감동을 받고 화가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죠. ‘돌아온 탕자’는 과거를 반성하고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아버지(하나님)를 보여주는 성경 속 구절을 렘브란트가 상상해 그린 그림입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누가복음 15장 20절, 24절)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차례 렘브란트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렘브란트는 빛으로 진리를 말하는 화가다. 그는 모든 기술적인 경계를 넘어섰고, 우리를 감정의 본질로 이끈다.” 고흐는 예술이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삶의 깊이를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데요.

그래서 뉘넌에서 그린 고흐의 초기 작품은 강렬한 명암 대비로 감정을 표현하는 렘브란트의 기법을 사용해 어두운 색조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도 그중 하나고요. 그림에는 고흐의 아버지가 목사로 있던 목사관의 뒷마당이 묘사됐습니다. 멀리 오래된 교회의 첨탑도 보이네요.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뒤돌아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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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1884) [싱어 라렌 박물관]

당초 고흐는 이 그림의 초기 스케치를 그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안톤 반 라파르드(Anthon van Rappard)에게 선물하며 “겨울 정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1884년 3월 8일, 고흐는 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지금은 이미 봄 정원으로 바뀌었고,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말이죠. 그렇게 고흐는 나무에 이파리와 작은 꽃을 더 그려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작품명이 봄 정원으로 바뀐 이유이기도 하고요.

당시 고흐는 소박한 집과 풍경, 그리고 농민과 직조공의 일상을 주로 그렸죠. 그가 이 시기 그린 그림들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고흐의 예술 세계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초기 작품들이다 보니 금전적으로도 가치가 높습니다.

또 다른 대표작을 살펴볼까요. 다섯 명의 농부 가족이 어두운 집안에서 석유램프 불빛에 의지하며 식사하는 모습이 담긴 ‘감자 먹는 사람들’(1885)입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그들의 빈곤한 현실과 그 와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기가 느껴지죠. 허영이 낄 틈 없는, 온전한 밥상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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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1885) [반 고흐 미술관]

이렇듯 고흐의 초기 화폭에서는 화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고흐의 열정이 엿보입니다. 뉘넌에서 지낸 2년 여간 그는 유화만 200여점을 남겼습니다. 당시 그는 동생 테오에게 “지난 7개월 동안 따뜻한 식사는 여섯끼 정도 한 게 전부”라며 그의 곤궁함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롯이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한 시간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고흐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우면서 특히 스케치와 드로잉을 통해 구조와 구성을 심도 있게 연구했습니다. 소박한 장면과 인물을 관찰했고, 이를 수십 장의 드로잉으로 담아내면서 삶의 본질을 포착했죠. 이같은 작품 경향은 이후 그가 선보인 강렬한 색채 실험과 상징적인 표현의 기반이 됩니다.

행방불명, 그리고 극적인 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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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당한 고흐의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을 회수한 미술탐정 아서 브랜드 [아서 브랜드 인스타그램 캡처]

자, 그래서 도난당한 고흐의 귀한 초기 작품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놀랍게도 네덜란드의 저명한 미술탐정인 아서 브랜드의 활약으로 지난해 9월 그림을 기적적으로 회수될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이었죠.

앞서 브랜드는 앞서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1938: 여인의 상반신’을 20년 만에 되찾아 주인에게 돌려주는 등 도난당한 예술품을 추적해 이름을 알렸습니다. 영국 런던의 불법 예술품 거래상에게 접근해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반지를 찾아내기도 했고요.

브랜드는 경찰과 공조해 고흐의 작품을 추적하던 중,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한 남성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됩니다. 이 남성은 작품을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마침내 이 그림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브랜드의 자택으로 파란색 이케아 장바구니에 담겨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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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는 범죄 조직과 연계된 중개인과의 접촉해 그림을 되찾았다고 밝혔을 뿐, 그림을 훔친 범인과 범죄 조직의 신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다만 도난당한 이 그림이 지하세계에서 거래됐고, 소유자가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될 처지에 놓이면서, 아무도 이 그림을 사지 않으려고 했다는 후문입니다.

사실 그림을 훔친 범인은 프랑스 태생의 닐스 M으로, 이 절도 사건으로 8년형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범죄 현장에 깨진 유리 조각에서 발견된 DNA를 바탕으로 범인을 추적할 수 있었던 거죠.

다행히 반 고흐의 이 그림은 오크 판넬에 부착돼 있었기에 도난 과정에서도 훼손이 크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이 작품은 보존 전문가인 마리얀 데 피서의 손을 거쳐 원래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던 네덜란드 흐로닝어 미술관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향후 복원 작업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싱어 라렌 박물관에게 그림을 대여해 준 상황에서 도난당했던 터라, 흐로닝어 미술관장은 작품 대여에 대한 규정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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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자화상’(1887) [시카고 미술관]

이 도난 사건으로 이 그림의 가치가 더 올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사건 자체로 작품에 대한 관심과 주목도를 크게 높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간접적으로 가치를 끌어올린 건 사실입니다. 작품이 도난당하고 회수되면서 이 작품은 단순한 그림 한 점이 아닌 하나의 상징이 된 것이거든요. 그림과 얽힌 이런 특별한 이야기는 작품을 더욱 희소하고 특별하게 만듭니다. 이런 점은 미술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요. (물론 작품의 본래 가치가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해 상승된 측면이기에 진정한 예술적 가치가 높아졌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요.)

만약 고흐가 오늘날 자신의 그림들이 범인들의 목표물이 될 정도로(?) 사랑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생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가난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생을 살아야 했던 만큼 어쩌면 약간의 씁쓸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흐가 남긴 그림은 그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가 살아생전에 이렇게나 인정받았다면 그의 삶도 어쩌면 조금은 덜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가 남긴 말을 곱씹어 볼 수밖에요.

언젠간 내 작품을 알아줄 날이 분명하게 올 것이라 믿는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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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Handed over in an Ikea bag’: art detective recovers Van Gogh painting stolen from Dutch museum, Martin Bailey, The Art Newspaper.

Stolen Van Gogh Painting Is Returned in Ikea Bag, Claire Moses, 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