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비트코인은 ‘가상의 금(金)’과 같습니다.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미국 달러($)가 아닌 금의 경쟁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9년 세상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후 지난 17세기 광기 어린 투기 자산이었던 네덜란드 튤립에 비교됐던 설움을 겪었던 기억도 사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이것’은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자산인 ‘금’에 비견되는 순간을 맞이했죠. 바로 가상자산 ‘대장주’로 불리는 ‘비트코인’이 그 주인공입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 연준 의장 파월의 입에서조차 이제 비트코인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든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인 모습이 보여지죠. 이미 지난해 파월 의장은 비트코인을 가리켜 “자산으로서 지속적인 힘(staying power)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내놓은 적도 있죠.
지난 5일 개당 ‘10만달러’ 선을 돌파함으로써 비트코인은 이제 그동안과 다른 차원의 ‘주류 자산’으로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10만달러 선을 돌파했다는 사실은 비트코인이 더 이상 틈새시장을 노리는 군소 자산이 아니라 주류 금융 투자 상품으로 도약했다는 점을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비트코인 > 브라질·호주·대만·스위스·러시아·멕시코·태국·베트남
비트코인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분석 결과 하나가 투자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바로 글로벌 자산 데이터 플랫폼 피아트마켓캡이 집계한 유통량 기준 글로벌 주요 법정통화 시가총액 분석입니다.
지난 12일 오후 10시 기준 비트코인의 시총은 1979만4440비트코인(BTC)으로 전 세계 주요국 법정통화들과 비교했을 때 10위 수준의 자산 규모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시각 글로벌 가상자산 시황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10만835.24달러에 거래 중이었는데요. 개당 10만달러 고지에 올라선 비트코인이 드디어 글로벌 ‘톱(TOP)10’ 법정통화의 지위까지 올라섰다는 것을 의미했죠.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2만4000달러 수준이던 지난 2022년 8월 12일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전 세계 법정통화 순위 25위 수준이었는데요. 올해 3월 14일 오후 기준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9만4000달러 수준까지 올라섰을 때는 그 순위가 13위까지 상승한 바 있죠.
비트코인보다 높은 순위에 이름은 올린 법정통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최상위 5개 법정통화로는 중국 위안화, 미국 달러화, 유럽연합(EU) 유로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가 차례로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해당 법정통화들의 바로 아래 순위인 6위에 대한민국 원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시총 규모는 3840만4174비트코인으로 비트코인의 1.94배 수준이었습니다. 이 밖에 시총 규모 7~9위 자리엔 인도 루피화, 캐나다 달러화, 홍콩 달러화가 순서대로 이름을 올렸고요.
비트코인이 시총 규모로써 따돌린 주요 법정통화들로는 11위 브라질 헤알화, 12위 호주 달러화, 13위 대만 달러화, 14위 스위스 프랑화, 15위 러시아 루블화, 16위 멕시코 페소화, 17위 사우디아라비아 리얄화, 18위 태국 바트화, 19위 아랍에미리트 디르함화, 20위 베트남 동화 등이 있었습니다.
비트코인, 더 이상 무시 못 할 존재로
비트코인이 이미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거대 투자자산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또 다른 기준은 금을 비롯해 미국 등 글로벌 주요 증시에 상장된 대형주의 시총과 비트코인의 시총을 비교해 보는 겁니다.
금융 위기 직후(2009년)에 탄생한 비트코인이 이제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가치 큰 자산이 됐다. 보통 자산 배분을 할 때 (시총) 1조달러를 넘는 자산은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컴퍼니스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총은 지난 12일 오후 10시 기준 1조9960억달러에 이릅니다.
시총 1조8370억달러인 은(銀)의 시총을 넘어선 수준으로, 18조3590억달러로 전 세계 자산 중 시총 1위를 기록 중인 금의 10.87%까지 올라온 상황이죠.
비트코인의 시총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하는 주식은 3조7250억원의 애플, 3조4110억원의 엔비디아, 3조3380억원의 마이크로소프트(MS), 2조4210억원의 아마존닷컴, 2조3990억원의 알파벳(구글) 정도가 있었습니다. 모두 미국 증시 대표 빅테크(대형 기술주)로 불리는 ‘매그니피센트7(M7)’ 종목들이었죠. M7의 나머지 2개 종목인 메타플랫폼(1조5970억달러), 테슬라(1조3630억달러)는 각각 비트코인보다 낮은 10위, 11위에 각각 자리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전문가들도 이젠 하나둘 비트코인이 무시하거나 거스를 수 없는 대표적인 초대형 투자자산 중 하나라고 인정하는 상황이죠.
비트코인 가격이 여섯자리영역(10만)에 진입하면서 더 이상 비트코인을 글로벌 금융 시스템 내에서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 중인 ‘용감한 언더독(underdog, 약자)’으로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퀀텀 점프’의 시작
비트코인이 제도권 투자자산으로 확실히 각인된 계기로 바로 올해 1월에 있었던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중에 풀려있는 투자 자금이 보다 손쉽게 비트코인으로 유입될 수 있는 가교 구실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죠. 여전히 초(超)고위험 자산으로 꼽히는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에 제약이 많은 기관 투자자는 물론, 고위험 자산에 대한 회피 성향이 있는 개인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에 보다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 때문입니다. 가상자산 거래소 계정을 별도로 만들 필요 없이 기존에 투자해 오던 방식대로 증권 거래 계좌를 통해 주식을 사고파는 ‘간접’적 형태로 가상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점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결과적으로 비트코인 ETF를 운용하는 대형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이 투자자들의 매수 증가세에 맞춰서 비트코인 현물을 사들이는 규모가 커지면서 수요 역시도 올라가고, 비트코인의 자산 가치도 덩달아 올리는 효과를 내는 상황입니다.
파사이드인베스터스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11일(현지시간) 기준 미 SEC가 승인한 비트코인 현물 ETF 11종에는 약 345억5000만달러의 자금이 쏠렸습니다.
구체적으로 ETF 상품 중에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운용하는 ‘아이셰어즈비트코인신탁(IBIT)’에만 350억5800만달러가 모였고, 피델리티의 ‘와이즈오리진비트코인신탁(FBTC)’에도 122억2400만달러 어치의 투자금이 쏠렸습니다. 반면, ‘그레이스케일비트코인트러스트(GBTC)’에선 같은 시점 기준으로 208억9100만달러 규모의 투자금이 차익 실현 목적으로 출회됐습니다.
한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준 가장 규모가 큰 일명 제도권 자산운용사들이 비트코인 현물을 기초 자산으로 ETF를 운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안정 지향적 투자자들에게까지도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분석했죠.
글로벌 IB 스탠다드차타드는 올해 비트코인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는 기관투자자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기관들이 현물 ETF를 통해 올해 들어 모두 68만3000개의 비트코인을 매입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국내 투자자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선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위한 길이 원천 봉쇄돼 있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 국내에선 해외 증시에 상장된 현물 ETF에도 투자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25만弗 시대 열릴 것” vs “단기 조정 가능성”
최근 들어 비트코인 가격은 10만달러 부근에서 등락을 거듭하면서 조정세를 보이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현재 수준보다도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이들이 공통으로 제시하고 있는 지점은 바로 ‘비트코인 개당 20만달러’입니다.
가우탐 추가니 번스타인 분석가는 “비트코인이 2025년 말에 20만달러를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비트코인이 향후 10년 동안 금을 대체하고 기업 재무 관리의 표준이 될 새로운 시대의 가치 저장 수단으로 부상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제프 켄드릭 스탠다드차타드 디지털 자산 글로벌 책임자는 “2025년에도 비트코인을 향해 기관 투자자의 자금이 대거 유입될 것”이라며 “내년 말 비트코인이 20만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예상했고요.
펀드스트랫의 공동 창업자 톰 리는 비트코인이 25만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도 전망했죠.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비트코인 투자를 권유하고 나서기도 했는데요. 사마라 코헨 ETF 최고투자책임자 등 고위직 4명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블랙록은 각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별로 최대 2%까지 비트코인에 할당할 것을 고려하라고 권했습니다. 블랙록은 비트코인이 다른 주요 자산군과 상관관계가 약하기 때문에 수익원을 다변화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고요.
다만, ‘친(親) 가상자산 대통령’이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비트코인 가격이 48% 가까이 급등했다는 점에서 과열을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마이클 하트넷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수석 전략가는 “비트코인이 10만달러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거품이 형성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케이티 스톡턴 페어리드 스트레티지 설립자는 “비트코인 가격이 단기 조정을 받아서 8만500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며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美·中·러, ‘비트코인 전략 자산화’ 경쟁 가속화
이런 가운데 향후 비트코인 가격의 흐름은 투자자산의 대상이란 의미에 더해 지정학적 질서에서 비트코인이 ‘힘’으로써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新)냉전’을 넘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해협 위기 등을 통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며 글로벌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중국, 러시아가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 때문이죠.
최근 투자자들의 이목을 단연 끌고 있는 곳은 미국입니다. “미국을 가상자산의 수도로 만들겠다”와 같은 구호를 통해 가상자산 개미들의 표를 끌어냈던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행정부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전략적으로 비축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벌써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미 공화당 소속의 신시아 러미스 상원의원은 ‘비트코인 비축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향후 5년간 비트코인 100만개를 매입하겠다는 것도 주요 내용으로 포함돼 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밑바탕에는 미국의 극심한 재정 적자와 부채를 비트코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도 깔려 있는데요. 미국의 국가 부채 규모는 최근 들어서 사상 처음으로 36조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비트코인 가치가 최소 100만달러까지 오르면 미국은 비트코인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미국 내에서 커지는 상황이죠.
비트코인트레저리스에 따르면 전 세계 국가 중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미국입니다. 그 규모는 200억208만달러에 달하죠.
미국의 바로 뒤를 191억8335만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보유량을 자랑하는 중국이 따르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선 중국이 최근 금 매수를 재개한 점도 비트코인 비축 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전망도 있는데요. 미국 국채 보유량을 불이면서 사들이고 있는 금에 대한 수요를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비트코인으로 일부 갈음할 수 있다는 게 핵심 주장이죠.
중국이 전략적으로 준비자산으로 비트코인을 도입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자오창펑 전 CEO는 중국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 중인 비트코인 전략적 준비자산화 전략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면서 “중국 정부의 현재 명확한 입장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트럼프 공약 중 하나인 비트코인 전략적 준비자산화 도입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중국은 마음만 먹으면 가상자산 관련 정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 역시도 비트코인이 누구보다 필요한 국가의 대표 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는 서방 국가의 경제제재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되면서 글로벌 금융 거래는 물론이고 외화 보유액을 활용하는 데 손발이 묶인 적이 묶인 적이 있습니다. 서방 금융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탈중앙화된 디지털 자산인 비트코인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란 뜻이죠.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은 계속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아무도 비트코인을 금지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