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야당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부자세 신설 주장에 대해 여당이 본격적으로 가세하면서 정치권에 ‘부자 증세’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 월가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에서 소득 양극화 프레임인 ‘1% 대 99%’ 구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둔 여여가 부자 증세를 표심 선점의 최우선 정책 수단으로 빼든 것이다. 최근 논의의 주도권은 부자 증세의 저작권을 가진 민주당과 민노당이 아닌 한나라당이 쥐고 있다. 야권이 반(反) FTA 투쟁과 통합 논의에 당력을 집중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부자 정당’ 이미지로는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도 승산이 없다는 여당 내부의 절박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고세율 구간 백가쟁명=한나라당의 부자 증세 논의에는 ‘민본 21’ 등 당내 소장파는 물론 홍준표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 정책 주도권을 쥔 친박 진영 등이 일제히 가세한 상황이어서 정부 관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책 실현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내에서는 현재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놓고 1억 5000만원, 2억원, 5억원 초과 등 다양한 안들이 검토 대상에 올라 있으며 이들 안의 세수 효과는 연간 8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 수준이다. 기준 ‘5억원 초과’는 홍준표 대표의 안으로 과거 8800만원 이상에 최고세율을 적용할 때 대상인원이 1만명이었던 것이 고려됐다. 이와 관련, 유승민 최고위원은 29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높게 기준을 잡을수록 조세저항이 적은 게 사실” 이라면서도 “5억원은 너무 높은 숫자가 아니냐” 며 대상 범위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이번 주 당ㆍ정ㆍ청 회의를 통해 최종안을 마련하고, 입법화 수순을 밟는다는 방침이다. ▶야당, 부자증세 논의 가세=그동안 통합 논의에 주력해왔던 민주당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부자 증세 논의를 본격 재개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우리나라 1% 특권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면서 “민주당은 1% 부자 증세를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1억 5000만원 초과구간에서 세율을 40%로 올리는 것을 비롯해 법인세 감세 철회, 1% 최고소득 법인세에 대해 25%의 고세율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면서 “여기에서 조달되는 세수로 중소기업 지원하고 보육 지원, 반값등록금 친환경 무상급식 세원 확대하고 양극화 해소하는 일에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정희 민노당 대표도 1억2000만원 초과구간에 40%의 세율을 매기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전문가들 찬반 갈려=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터져나온 정치권의 부자 증세 한목소리에 대해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서경교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여당은 부자들, 기업편만 드는거 아니냐는 ‘오명’이 있는데, 선거를 앞두고 나름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며 “ ‘부자증세’에 대한 진정성이 있었다면, 집권 초기에 도입되거나 선거와 간극을 두고 추진됐어야 하는거 아니냐. 현시점에서 부자 증세를 들고 나온 건 불순한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예를 들어 부자 증세 도입한다고 세수가 확보되고, 실질적 빈부격차 효과가 있느냐. 실질적 효과가 없다고 봐야 할 것” 이라며 “그보단 합법적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탈세가 공공연히 도입되고 있는데, 그것부터 막는게 순서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소 2억원 이상 소득자에게는 세금을 걷어야 한다. 그래야 과세 범위가 넓어지고, 과세구간 확대한다면 상당히 의미있는 정책” 이라면서 “한ㆍ미 FTA의 수혜자가 주로 돈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금 이시점에서 가진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타이밍상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춘병ㆍ조민선 기자/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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