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비싼 돈 주고 먹었는데, 불법이라고?”
어떤 동물의 고기인지 쉽사리 알아보기 힘든 ‘수상한 고기’. 하지만 전문 식당이 따로 있을 정도로,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 정체는 바로 ‘고래’. 1인분 가격은 최고 10만원에 달할 정도로, 웬만한 최고급 한우보다도 귀한 몸값을 자랑한다.
문제는 실제 판매되는 고래고기 중에서 잡아서도 먹어서도 안 되는 보호종 고기, 즉 ‘불법 고기’가 섞여 있다는 것.
고래는 돈이 된다고 마음대로 잡을 수 있는 개체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고래를 고기로 팔기 위해 일부러 잡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다만 다른 물고기를 잡으려고 쳐둔 그물에 우연히 걸리는 ‘혼획’ 등의 경우, 정해진 절차를 거쳐 판매할 수 있다.
이 또한 해양보호생물이 아닌 ‘밍크고래’ 등으로만 한정된다.
그런데 전국 고래고기 식당에서 직접 판매되는 고기를 사들여 DNA를 검사했더니, 잡아서도 팔아서도 안 되는 ‘보호종’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6일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전국 고래고기 식당 115곳 중 27곳에서 시료를 확보해 서울대학교와 천연기념물동물유전자원은행이 공동으로 DNA를 분석한 결과, 이 중 7개가 해양보호생물인 참고래·보리고래·멸치고래로 확인됐다.
조사한 고래고기 4개 중 1개꼴이다. 이들 종은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해양보호생물로, 포획은 물론 유통과 판매도 금지돼 있다. 애초 식탁에 올라와서는 안 될 고래가 일반 식당에서 돈을 받고 판매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20개 고래고기는 모두 문제가 없을까. 그렇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DNA 분석 결과 나머지 20개 시료는 모두 밍크고래로 확인됐다. 그러나 ‘밍크고래’라는 사실만으로 합법적으로 잡힌 고래라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적법한 조업 과정에서 우연히 혼획된 고래의 경우 정해진 절차를 거쳐 판매할 수 있다. 반대로 사람이 의도적으로 고래를 잡았다면 불법이다.
그런데 고기로 잘린 뒤에는 해당 고래가 합법적으로 혼획된 개체인지, 몰래 잡힌 개체인지 소비자가 구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번에 밍크고래로 확인된 20개 시료 역시 정부가 보유한 합법 혼획 개체의 DNA 자료와 대조하기 전까지는 적법하게 유통된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게 환경운동연합의 설명이다.
쉽게 말해, 조사 대상 27개 중 7개는 유통 자체가 금지된 보호종으로 확인됐고, 나머지 20개도 현 단계에서는 합법적으로 확보된 고래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고래 불법 포획과 고래고기 불법 유통이 끊이지 않는 배경 중 하나로는 높은 가격이 꼽힌다.
앞서 헤럴드경제가 국내 주요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를 확인한 결과, 다수 수산업체가 밍크고래 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기사 : “한 접시에 18만원” 한우보다 비싼 ‘수상한 고기’, 정체 알고 보니…불법으로 잡는다고? [지구, 뭐래?])
활발히 판매되고 있는 한 상품의 가격은 300g 기준 최대 18만원. 상품별 중량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100g당 약 4만~6만원에 달했다. 1등급 한우 등심 평균 소비자가격이 100g당 1만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대략 4~6배 수준이다.
그야말로 ‘바다의 로또’. 지난 7월 울산 방어진수협에서는 혼획된 밍크고래 한 마리가 71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심지어 위판 가격이 1억원을 넘긴 사례도 있다. 지난 2024년 7월 강원 삼척 앞바다에서 혼획된 밍크고래는 1억1731만원에 위판됐다.
불법 포획 사례도 반복된다. 실제 지난 7월에는 포항 앞바다에서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한 뒤 해체·운반한 일당이 적발됐다. 당시 이들이 불법 포획해 유통한 것으로 추정된 밍크고래는 5마리, 약 5t 규모였다. 시가로 환산하면 약 3억5000만원 상당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어렵다. 식당에서 나온 고래고기 한 점만 보고 이 고래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잡힌 개체인지 확인할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판매도 마찬가지다. 앞서 확인한 일부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판매업자에게 고래류 처리확인서를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판매 제품에서 소비자가 해당 서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리확인서가 있다고 ‘합법’이라고 단정하기도 힘들다. 서류와 지금 판매되는 고래고기가 실제 같은 개체에서 나온 것인지 소비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고래고기의 실제 유통량을 둘러싼 의문도 계속돼 왔다. 환경단체들은 국내에서 한 해 혼획되는 밍크고래가 약 60마리 수준인 반면 시장에서 소비되는 물량은 연간 약 120마리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혼획된 물량만으로 현재 고래고기 시장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번 DNA 조사에서 실제 보호종 고래가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런 의혹은 더욱 커졌다.
김솔 환경운동연합 책임활동가는 “고래를 잡는 것은 불법이지만 고래고기의 유통은 허용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소비자가 식당에서 판매되는 고래고기가 합법적으로 확보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환경운동연합, 부산환경운동연합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래고기 유통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의원은 “이번 조사에서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고래가 실제 고래고기 유통망에서 판매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현행 유통관리 체계에 분명한 허점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보호종으로 확인된 고래고기 시료 7개는 모두 부산지역 판매점에서 확보됐다.
노현석 부산환경운동연합 협동사무처장은 “한 마리 해양동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무사히 바다로 돌아가기를 바라면서도 고래가 고기가 되어 판매되는 현실에는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은 부산시가 지역 내 고래고기 유통 실태를 점검하고, 보호종과 불법 포획 고래가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한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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