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일본 마쓰야마 한타지, 죠도지, 고쇼지
일본 마쓰야마의 불교 2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반야심경의 마지막 주문인데 새벽 남산 길을 문득 의미를 되새겨 본다. 아마, ‘가자 가자 저 언덕 넘어가서 함께 온전히 깨달음을 이루자’는 뜻일 것이다. 일본 사찰 방문길에 법당 앞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는 흰옷 입은 일본 순례객들을 마주한다.
종교적 이유나 절박한 소원을 갈구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자신을 뒤돌아보고 싶을 때 걷고 싶은(순례) 길을 찾아 떠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걷고 싶은 길’ 하면 우선 떠오르는 곳이 스페인 산티아고 780㎞에 이르는 순례길이다. 우리나라에도 437㎞에 이르는 제주 올레길이 있고 세계적으로 가장 길다는 1900㎞의 알프스에서 로마로 향하는 ‘비아 프란치제나’라는 기독교 순례길도 있다. 티베트에도 불교, 힌두교의 성지로 여기는 52㎞의 ‘카일라스 코라’ 길처럼 세계 곳곳엔 걷고 싶은 길들이 많을 것이다.
시코쿠 88 사찰 순례길 “오헨로(お遍路)”
부산에서 1시간 거리, 50만 소도시 일본의 ‘마쓰야마’에도 오랜 역사를 간직한 불교 순례길이 있다. 산과 바다와 들과 마을 사이 88채의 절집을 지나 처음 그 자리로 돌아오는 섬을 한 바퀴 일주하는 1200㎞을 걷는 ‘시코쿠섬 88사찰 순례길’이다. 일본 승려 구카이(홍법대사)와 관련된 길인데 완주하려면 50여일 이상 걸린다고 한다.
순례길에 속한 사찰에 갔더니 하얀 일본식 웃옷(하쿠이)과 삿갓모자(스게가사). 홍법대사를 상징하는 지팡이(즈에)에 배낭을 메고 사찰을 돌며 기도하는 이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혼자 또는 두세명, 또는 7~8명의 단체가 법당 앞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88개 사찰을 순례하는 순례객들이었다.
일본의 4개 본섬 중에서 가장 작은(경상북도 크기) 시코쿠(四國)섬에서 태어나고 깨달음을 얻은 홍법대사(774~835년)의 발자취를 따라 깨달음을 간구하거나, 간절한 소망 성취를 위해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이다.
순례자들의 전통 의상인 흰옷은 옛날 험한 길을 걸었던 순례자들이 길에서 삶을 마치게 됐을 때 수의로 사용하기 위해 유래됐다고 한다. 오늘날도 여전히 걷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버스나 자동차, 또는 자전거로 이동하며 순례를 마친다고 한다.
순례는 1번 절 료젠지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며 순례를 시작하고 88번 절에 도착해서 그동안 들고 온 지팡이를 이곳에 남겨두고 다시 1번 절에 도착해 긴 순례를 끝낸다.
순례자들은 절에 들어서면 먼저 수돗가에서 손과 입을 헹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본당 앞에서 향과 초를 바치고 종을 쳐서 도착을 알린다.
반야심경을 읊은 후 이름과 주소 등을 적은 종이를 함에 넣고 시주를 한다.
홍법대사를 기리는 대사당에서 같은 순서로 참배하고 납경소에 가서 납경장에 도장과 서명을 받음으로써 순례 의식이 끝난다.
시코쿠에서 가장 큰 도시 ‘마쓰야마’에는 88개 순례 사찰 중 8개(46번부터 53번)가 있어 필자는 그중 많은 중요 문화재가 있는 ‘마쓰야마’의 대표적 사원인 51번 이스테지(石手寺), 언덕 산길에 있어 마쓰야마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50번 순례길 한타지(繁多寺, 번다사), 중세불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49번 죠도사(淨土寺)등 세 곳을 방문했다.
그리고 홍법대사는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인 진언종을 창시했기에 순례길 사찰들은 진언종이기에 비교를 위해 선종(조동종) 사찰인 고쇼지(高昌寺, 고창사) 사찰과 신사도 방문했다.
50번 사찰 한타지(繁多寺)와 신불습합(불교와 신교의 결합)
이른 아침 한타지 사에 도착했는데 이미 흰옷 입고 삿갓 쓴 오헨로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부부, 단체순례자 등이 한타지 본당 앞에서 반야심경을 읊고 있다.
사찰은 언덕길 높은 곳에 있어 마쓰야마 시가지와 멀리 바다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8세기 초 행기스님이 약사여래상을 직접 조각해 모셨다는 50번 순례사찰 한타지(繁多寺)는 ‘번창과 풍요’의 뜻을 담은 천년 고찰로 순례 문화와 역사적 경관을 보여주고 있어 국가 사적에 지정돼 있다.
산문 양쪽에 연못, 오래된 나무와 이끼 낀 석상,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돌계단 등이 인상적이다.
88개 순례 사찰들은 주술과 밀교에 기반한 진언종(真言宗)으로서 비밀주의가 강해 본당에 들어갈 수도 없고 본존불상도 공개하지 않은 절이 많다고 한다. 한타지도 손바닥만 한 틈을 통해서만 본당 안을 볼 수 있는데 어두워서 모셔진 여러 불보살들을 구분해 보기 어려웠다.
본당 앞 범종(鐘)은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문양)이 새겨져 있어 주요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에도시대 번성했던 사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한타지 본당 왼쪽에 신사(神祠)를 상징화 天 모양의 석조 ‘도리이’(鳥居)를 들어가면 그 안에는 에도시대 4대 쇼군이 소장했다는 3대 수호불 중의 하나인 환희천(歓喜天)을 모신 성천당(聖天堂)이 있다.
환희천은 부귀, 액막이, 부부화합, 상업 번창 등과 관련해 신앙이 돼 온 비불(祕佛)소개되고 볼 수도 없지만, 주술성이 강조된 진언종 특성과 신교와 불교가 결합해 온 일본불교 역사를 고려할 때 ‘신불습합’전통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성천당과 본당 사이엔 악귀를 쫓는 비사문천(삼신당 같은 곳)도 있다.
본당 옆에는 홍법대사를 모신 대사당(大師堂)이 있고 산문 옆에는 조그만 지장전이 있으나 사찰 곳곳에 지장보살상들이 많이 보인다.
흰옷 입은 순례자들이 사찰 입구의 납경소에서 스탬프(납경)를 받고 있었다. 일본의 신사나 사찰에 참배하고 소정의 이용료를 내면 해당 시설에서 ‘사찰(신사) 참배’에 대한 일종의 확인서(붓글씨로 쓰고 도장을 찍어준다)를 써주는데, 이를 납경(納経)이라 한다.
이는 영험이 있다고 해 소중하게 간직한다고 한다. 88개 순례 전용 납경장(納経帳, 노트)은 따로 판다.
49번 사찰 죠도지(淨土寺)
마을과 인접한 죠도지는 곧바로 산문과 이스테지 사원에서 봤던 누각 형식의 인왕문이 있다.
인왕문에 서림산(西林山)이란 현판이 붙어있어 확인하니 죠도지를 ‘서림산 삼장원’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인왕문 옆 커다란 돌판에 새겨진 발자국은 누구의 것을 형상화한 것일까. 따로 설명은 없다.
중국 양식과 일본양식이 혼합된 양식으로 국가기념물이라는 본당 옆에는 이곳 역시 홍법대사 공양탑과 대사당이 있다.
탑 옆 동상은 홍법대사상인 듯하고, 그 옆 오래된 듯 낡고 이끼가 낀 작은 동상은 지장보살상인지 아니면 또 다른 고승의 상인지 글씨가 흐려져 알 수 없다.
죠도지는 8세기 천평성시대 황후 고겐(749~758 재위)을 위한 기도처로 출발해 홍법대사가 중창해 66개의 말사를 거느린 사찰로 번성했다고 한다.
역시 본당은 조그만 창틈으로 신비스럽게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내부에 석가여래 본존불은 알겠는데, 문화재인 ‘공야상인상(空也上人像, 높이 121cm)’은 찾을 길이 없다.
‘공야상인’은 헤이안 중기의 쿠야쇼닌(903~972년) 스님을 말하는데, 전국을 떠돌다 시코큐섬에 와서 3년간 죠도지에 머무르며 염불로 포교하고 교육에 전념해 마을 사람들에게 많은 호감을 얻었다고 한다.
쿠아쇼닌은 귀족불교 시대에 민중 포교를 한 한국의 원효스님을 연상케 하는 일본 불교사에서 알려진 유행승(遊行僧)이었는데, 후대에 동상을 만들어 죠도지에 남겼다고 한다.
본당 뒤편 언덕에 납골묘에는 특이하게 일반신도뿐만 아니라 옛날 순례 중 사망한 행려 사망순례자 76명도 함께 묻혀있다고 한다.
그 위편엔 88개 순례 사찰을 상징하는 88개 작은 불상도 있고 묘지 입구에는 기가 센 곳인 양 뒤틀린 고목이 지키고 있다.
왜 죠도지가 중세불교를 상징하는 사찰인지 조금은 이해가 될 듯하다.
여전히 이곳도 흰옷 입은 순례자들이 줄지어 찾아오고 납경소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납경을 받고 있었다.
조동종(曹洞宗)(선종)사찰 고쇼지(高昌寺)
에히메현 우치코에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라는 옛 거리 관광지가 있는데, 이곳이 내려다보이는 초입 산자락에 ‘고쇼지’라는 옛 사찰이 있다. 기존에 봤던 진언종 88 순례 진언종 사찰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훤히 개방되고 밝은 조동종(曹洞宗) 사찰이었다.
또한 시코큐 88 순례 사찰에 들어가지 않는, 지역 신앙 중심지로 주민이 찾는 비교적 조용한 사찰이라고 해서인지 한적한 분위기인데 에도시대 1441년에 창건됐다고 한다. 지역영주가 귀의해 그의 사찰이 되면서 그의 이름을 따서 고창사라 했는데, 화재 등으로 소실됐다가 200여년 전에 복원했으나 산문(山門)만은 옛것 그대로라고 한다.
마을 쪽 사찰 입구, 산문 밖에는 일본 최대급 석조 열반불이라는 약 10m 약 200t의 거대한 석조 와불상이 있다.
탐방객들이 앞에서 기도하고 발바닥에 동전도 붙이며 소원을 빌고 있어 따라 해 본다.
와불상은 1998년에 건립됐다고 한다.
1807년 화재 때도 살아남아 역사성을 지닌 고풍스러운 산문과 일주문 격인 중작문(中雀門)을 지나니 좌우에 선당(禪堂), 강학료(講學寮), 회랑(回廊) 등이 있다.
성관세음보살(聖観世音菩薩)을 본존불로 모신 본당,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전면이 시원하게 개방돼 있고 의자, 차담장 등 누구든지 쉽게 참배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했는데 본당 등에는 큰 녹나무를 사용해 ‘이요의 녹나무 사찰(楠寺)’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한다.
선당과 강학료, 회랑 등이 있어 좌선, 교육, 수행 중심이라는 선종의 특성과 조동종의 전형적인 사찰 배치 형태라고 한다.
사찰 뒤편에는 일본 사찰 특성을 반영한 가족 납골당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도 선종 계통의 조동종, 임제종, 황벽종, 천태종 등의 사찰이 있고 밀교를 기반한 진언종, 그 외 일련종, 화엄종, 법상종, 정토진종 7만6000계 이상 종교 법인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고대불교는 주술을 강조해 새로운 국가불교로 발전한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적이다 보니 오래된 불교 성지로 고요산(진언종), 히에이산(천태종)을 꼽고 있다.
메이지 시대 불교 정책에 의해 스님의 대부분은 육식과 결혼, 사찰 세습이 일반화됐고 극히 일부 수행 전통을 유지하며 출가한 비구승들도 존재한다고 하는데 선종 계통과 진언종 등, 종단별로 사찰의 분위기가 많이 차이 나는 것 같았다.
대처, 상속 문화의 일본불교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신사(신교)와 불교가 결합한 사찰 문화는 아무래도 생경할 수밖에 없다.
“일본 불교에서 사부대중의 의미는 뭘까”라는 의구심을 안고 일본불교를 좀 더 알아갈 추후 또 다른 기회를 기다려 볼 수 밖에 없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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