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세 매물 줄었는데 은평은 61% 늘어
잔금 남은 신축, 전세대출 막혀 ‘현금 장벽’
집주인 호가 낮추고 반전세 전환에도 난항
“한 달 전만 해도 84㎡(이하 전용면적) 매물이 7억5000만원(전세)에 나갔는데 지금은 가격을 내려도 안 나가요. 어제는 집주인이 찾아와 ‘7억3000만원도 괜찮으니 그렇게라도 해 달라’고 했어요. 원래 입주장은 엄청 바빠야 하는데 지금은 손님이 오면 반가울 정도예요.”
[헤럴드경제=윤승현·김희량 기자] 지난 8일 찾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대단지 신축 ‘힐스테이트 메디알레’는 이달 말 대규모 입주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세입자를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잔금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급해진 집주인들은 전세금을 낮추고 있다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힐스테이트메디알레는 28개 동, 2451가구 규모의 단지로 은평구 대조1구역을 재개발해 조성됐다. 세대 수가 많아 10월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3302가구 중 약 74%를 차지한다.
입주지정기간은 이달 말부터 12월 29일까지로 입주에 맞춰 전세 매물이 풀린 상태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은평구 아파트 전세 매물은 3개월 전 약 460여건에서 지난 8일 기준 743건으로 60.8% 증가했다. 1년 전(484건)과 비교해도 53.5% 증가한 수치다. 특히 힐스테이트메디알레가 위치한 대조동은 3개월 사이 211건에서 429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는 서울 전역에서 전세 매물 부족과 가격 상승이 이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실에 따르면 서울 전세 매물은 지난 8일 2만627건으로 1년 전 2만3897건 대비 13.7% 줄었다. 전세가 귀해지면 가격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실제 올해 서울아파트 전세가의 누적 상승률(한국부동산원 10월 5일 기준)은 8.35%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신축 단지를 찾는 전세 수요가 높지 않은 것은 대출 규제 영향이다. 지난해 6·27 규제에는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전세대출금으로 아파트 잔금을 치르는 방식이 제한되면서 집주인이 잔금을 모두 치르고 소유권 이전을 마친 매물에 한해 전세 대출이 나온다. 잔금이 남은 매물은 세입자가 전세보증금 전액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는 이른바 ‘현금전세’ 계약만 가능하다.
단지 인근 B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전체 매물 중 현금전세가 97% 이상으로 사실상 대부분”이라며 “잘못 알고 전세대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바꾸는 집주인도 많다”고 했다.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 역시 “전세가 5억~7억원인데 그만한 현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대출이 필요한 신혼부부 등 수요자는 들어오고 싶어도 어렵다”고 말했다.
입주가 가까워지며 잔금 마련이 급한 집주인들은 고민이 깊어졌다.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59㎡ 전세를 6억3000만원에 내놨다가 6억원으로 낮춰 계약한 사례가 있다”며 “호가를 1000만~2000만원씩 조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른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59㎡를 7억원에 올렸다가 (임차인 자금 여력을 고려해) 보증금 6억원, 월세 60만원 반전세로 전환한 사례가 있는데, 여전히 낮은 금액은 아니라 아직 거래가 안 됐다“고 전했다.
다만 대규모 입주에 따른 전셋값 하락이 주변 구축 아파트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은평구 응암동 ‘녹번역e편한세상캐슬’ 44㎡는 지난 9월 5일 5억7000만원에 계약돼 신고가를 찍었다. 같은 단지 84㎡도 지난 8월 22일 최고가인 8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이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은 갱신계약으로, 기존 보증금 6억3000만원에서 2억4000만원이 뛰었다.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녹번역e편한세상캐슬 등 주변 단지는 전셋값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오르는 분위기”라며 “기존 아파트에는 전세대출이 가능한 매물이 있어 오히려 그쪽으로 수요가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입주가 본격화하면 인근 지역 전세난 완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은평구나 주변 서대문구 등에서 신축으로 옮기려는 수요가 있다”며 “대단지인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일대 전셋값이 조금씩 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입주장 효과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지역별 수요에 따라 전셋값 조정 폭과 매물 소화 속도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서광채 한양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은평에서 대규모 물량이 나온 만큼 일시적으로는 인근 전세가에 하락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서울 내에서도 서초처럼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는 입주장이 거의 형성되지 않고, 외곽에서는 매물 소화가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는 등 지역별 차별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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