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위, 현대차에 하청노조 교섭 주문
8월 31일 결정 통보 후 결정서 미발송
노동위 규칙상 기한 9월 30일…연장 규정 없어
“관련 기록만 1만2000여 쪽 방대한 시간 소요”
[헤럴드경제=권제인·김용훈 기자]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현대자동차에 하청노조와 교섭해야 한다고 판단하면서도, 한 달이 넘도록 판단 이유에 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원청이 하청노조와 교섭해야 하는지를 두고 다툼이 이어지는 가운데 ‘근거’ 없는 ‘결정’만 나오면서 노사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12일 자동차업계 및 노동계에 따르면 중노위는 현대차가 제기한 교섭요구 사실 공고 시정 재심신청 사건의 결정서를 지난 7일 기준 아직까지 발송하지 않았다. 이는 9월 30일로 예정돼 있던 결정서 송부 기한을 어긴 것이다. 중노위는 헤럴드경제에 “결정서 작성 중”이라고 밝혔다.
산업안전만 ‘인정’·카마스터는 ‘불인정’…근거는 공백
중노위는 앞서 지난 8월 31일 심문회의를 열고 같은 날 울산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 결정을 유지한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생산 부문, 구내식당·보안 부문, 판매 부문 등 3개로 나눠 심판했다. 생산 부문에는 의장, 생산관리, 보전, 출고, 디자인, 시험차량 운전 업무가 포함됐다.
중노위는 공장·연구소 생산 인력과 구내식당, 시설·미화, 보안·경비 하청 노동자에 대해서는 산업안전 관련 교섭 의제에 한해 현대차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반면, 판매대리점 영업사원인 카마스터에 대해서는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제별로 결론이 갈린 만큼 어떤 사실관계를 근거로 사용자성이 인정됐는지는 결정서가 나와야 확인할 수 있다. 노동위 규칙은 판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결정서를 당사자에게 보내도록 정하고 있다. 이 사건의 송부 기한은 9월 30일로, 연장 기한은 없다.
중노위는 지연 이유에 관해 “현대차 사건의 경우 원청의 직종 구성, 쟁점 등이 복잡·다양하고, 관련 하청업체가 40여 개에 이르고, 사건 기록이 1만2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등 관련 검토·조사 및 결정서 작성에 방대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가급적 신속한 결정서 작성 및 발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례가 현대차에만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중노위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접수된 개정 노조법 관련 재심 사건은 108건으로, 이 가운데 처리된 사건은 83건이다. 중노위는 현대차 외에 결정서 발송이 늦어진 사건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결정서가 늦어지면서 노사 모두 판단 근거를 확인하지 못한 채 다음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중노위 재심 결정에 불복하려면 재심결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결정서가 도착하지 않아 불복 여부를 결정할 법정 기간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태다. 의제별 교섭 범위를 검토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사용자성을 판단해달라는 요구가 몰리면서 노동위 업무가 과중해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법적인 판단을 명확하게 받고 싶은 당사자들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집행정지는 제각각, 하청은 파업 압박…원청 ‘진퇴양난’
중노위는 재심신청이 초심 결정의 효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견해다. 초심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돼 결정서가 송달됐다면 원청에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중노위는 “(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돼 초심 결정서가 송달된 경우, 원청은 결정 결과에 따른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위 판단 뒤에도 개별 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노동위의 재심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집행정지를 함께 신청하는 가운데, 법원의 판단은 개별 사례에 따라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노위에 따르면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재심판정에 불복해 제기된 행정소송은 지난 9월 21일 기준 15건이다. 이 가운데 9건은 집행정지 신청이 함께 접수됐고, 3건이 인용되고 3건이 기각됐다.
포스코의 경우 지난 9월 18일 서울행정법원에서 교섭단위 분리 재심결정에 대한 집행정지 인용 결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전국플랜트건설노조와 진행하던 교섭에도 제동이 걸렸다. 반면 중흥토건은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돼 교섭대표노조 확정 절차에 들어갔다.
교섭권을 확보한 하청노조의 압박 역시 커지고 있다. 한화오션 하청노조인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와 웰리브지회는 원청이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며 지난 6월 경남지노위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경남지노위가 조정 중지를 결정하면서 두 지회는 파업권을 확보했고, 지난달 30일부터는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이 거제사업장에서 고공농성에 나섰다. 한화오션은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자 두 지회를 교섭요구 노조로 확정 공고했고, 지난 8일 하청노조와 단체교섭을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먼저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할 경우 추후 법원 판단에서 스스로 사용자성을 인정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어 불복소송을 염두에 둔다면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서기 쉽지 않다”며 “반면, 교섭권을 확보한 노조가 파업권을 확보해 원청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어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ey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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