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문제·알코올 의존 등 취약계층 노린 강제 입대 의혹

병력 모집 보상금 최대 490만원…입대 후 실종 사례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무인 시스템 부대 소속 병사가 이륙 전 요격 드론 ‘살루트’를 조립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닷컴]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무인 시스템 부대 소속 병사가 이륙 전 요격 드론 ‘살루트’를 조립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닷컴]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러시아에서 건강 문제나 알코올 의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남성들을 강제로 군에 입대시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병력 확보를 위한 모집 방식이 갈수록 강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CNN 방송은 러시아에서 강제 입대를 경험했다는 이들의 증언을 인용해 이 같은 실태를 보도했다.

CNN은 전쟁이 5년째에 접어들면서 러시아의 병력 모집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지난 2022년 대규모 동원령 이후 국민들이 해외로 대거 탈출하자 거액의 보상금을 내세워 병력을 모집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강압이나 기만적인 수법을 동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러시아 서부의 한 도시에서 국영 방산업체에 근무하던 50대 후반 남성은 지난 7월 아파트 밖에서 사복 차림의 남성 여러 명에게 붙잡혀 차량에 태워졌다.

그의 친척에 따르면 해당 남성은 혈관 질환과 알코올 의존 문제를 겪고 있었으며, 제대로 걷기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당시 그를 붙잡은 이들은 서류에 서명하도록 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군 입대 계약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은 서명 이후 귀가했지만 일주일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며칠 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의 훈련장에 있다는 연락이 가족에게 전해졌고, 지난달 말에는 전투 중 실종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었다. 한 러시아인은 자신의 형제가 지난 7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들에게 붙잡혀 군 입대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이 석방을 요구했지만 군검찰은 자발적인 입대였다고 판단했다.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해당 남성이 전투 중 실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군사 전문 변호사 아르툠 클리가는 올여름부터 이 같은 사건과 관련한 도움 요청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은 대부분 빚이 있거나 건강 및 알코올 문제를 겪는 등 취약한 처지에 놓인 남성들이었다.

클리가 변호사는 이들이 “사실상 거절할 기회조차 없고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며 강제 징집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됐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강제 입대의 배경에 병력 모집에 따른 금전적 보상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남성들을 붙잡아 데려가는 사람들의 신원이 불분명한 가운데, 일반인 모집책들이 보상금을 노리고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러시아 일부 지방정부는 신규 병력 모집을 돕는 사람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랴잔주는 지난해 8월 군 복무 계약 체결을 지원한 사람에게 계약 병사 1명당 세후 5만∼30만루블(약 82만∼491만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군에 입대한 한 남성의 친척은 CNN에 “모집책들은 보상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을 사실상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반전 단체 ‘새로운 대안 경로’ 역시 이 같은 보상금 제도를 비판했다. 단체는 해당 제도가 친구를 데려오면 돈을 주는 판촉 행사와 비슷하다며, 술에 취한 사람이나 노숙자 등을 병무청으로 끌고 가 강제로 계약서에 서명하게 해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w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