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수탁법인이 적립금 운용…계약형과 병행해 노동자 선택권 확대

DC형·IRP에 추가 선택지 도입…손해배상 책임 등 안전장치 마련

위험자산 70% 제한 단계적 완화…DC·IRP 투자 가능 상품도 확대 추진

IMA·발행어음 추가 검토…디폴트옵션 수익률 평가 강화해 저성과 상품 정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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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 퇴직연금에 가입한 노동자가 자신의 적립금을 직접 운용하는 대신 전문기관에 맡겨 관리받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된다. 투자상품을 고르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장기적인 자산 운용에 부담을 느끼는 가입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한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가 단계적으로 완화되고, 확정기여형(DC)과 IRP의 투자 가능 상품도 확대된다.

수익률이 낮은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상품은 정비하고, 만기 이후 별다른 운용 없이 자금이 머무는 기간을 줄이는 방안도 추진된다.

고용노동부와 관계 부처는 29일 발표한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에서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에서는 사업주와 금융기관이 계약을 맺고, 확정기여형(DC)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용 선택지 가운데 투자상품을 직접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하면 운용 위험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지만 수익률이 낮을 수 있고, 실적배당형 상품을 선택하면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 상품별 위험과 수익 가능성을 비교하기 어렵거나 투자에 시간을 들이기 힘든 가입자는 적극적인 운용을 망설일 수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이 같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마련됐다. 전문성을 갖춘 제3자인 수탁법인이 여러 가입자의 적립금을 모아 운용하고, 운용 성과에 따른 수익과 손실은 가입자에게 귀속되는 방식이다. 가입자는 개별 투자상품을 일일이 고르는 대신 자신이 참여할 기금형 퇴직연금이나 수탁법인을 선택하게 된다. 전문적인 자산운용을 통해 장기적인 수익률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실제 성과는 운용 전략과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기금형이 기존 계약형을 대체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기금형을 DC형과 IRP에 적용하고, 기존 계약형과 공존시키는 방안을 추진한다. 사업장 안에서 계약형과 기금형을 함께 설정할 수 있고, 복수의 기금형 퇴직연금을 두는 것도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거쳐 특정 기금형을 기본 선택지로 설정하는 방안도 허용한다.

사업장별 제도 설정과 가입자의 선택에 따라 기존 계약형을 유지하거나 기금형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투자상품을 직접 고르는 방식을 선호하는 노동자와 전문기관에 운용을 맡기고 싶은 노동자가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수탁법인의 설립 주체에 따라 기금형을 ▷금융회사가 단독 또는 컨소시엄 형태로 별도의 수탁법인을 설립해 여러 사업장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모아 운용하는 ‘금융기관 개방형’ ▷복수의 사용자가 연합해 소속 근로자의 적립금을 운용하거나 전국 단위 노사단체가 연합해 별도의 법인을 설립하는 ‘연합형’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등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공기관 개방형’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이 같은 유형의 기금형 제도가 도입된다고 누구나 수탁법인을 설립해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금의 무분별한 난립을 방지하고 가입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인가 절차를 마련했다. 노사와 전문가, 정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되는 인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예비인가와 본인가의 2단계 절차를 적용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현재 70%인 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예금 등 안전자산 이외의 위험자산에 적립금의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시장 규모와 시장 변동성 등을 고려해 한도를 단계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상향 폭과 시행 시기는 향후 검토를 통해 정할 방침이다.

투자 비중을 높일수록 시장 하락기에 적립금이 줄어들 가능성도 커질 수 있는 만큼 정부도 위험자산 투자 규제를 일괄적으로 없애기보다는 시장 상황과 가입자 수요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DC형까지 투자 비중 제한을 확대해 조정할지는 추후 검토 과제로 남겼다.

정부는 DC형과 IRP,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의 투자 가능 상품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만기 때 원금이 확정 지급되고 이자가 운용수익에 연동되는 종합투자계좌(IMA)와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신용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만기 1년 이내 상품인 발행어음 등을 DC형과 IRP의 투자 대상에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기존 예·적금 중심의 운용에서 벗어나 가입자가 다양한 상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의 투자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이 중소벤처기업부의 LP성장펀드에 출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모태펀드와 공동으로 모펀드를 결성하는 방식으로, 정부는 모태펀드의 우선손실충당과 풋옵션 제공 등 위험 완화 장치를 제시했다.

상품 확대와 함께 운용 성과가 낮은 상품을 정비하는 작업도 추진된다. 정부는 DC형 가입자 등이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때 적용되는 디폴트옵션 상품을 수익률과 위험조정성과 중심으로 평가해 재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디폴트옵션 적용 시점을 앞당겨 기존 ‘상품 만기 이후 4주’가 지나야 디폴트옵션 적용 예정 통보가 이뤄지는 구조에서 ‘만기 전 2주’로 변경해 가입자가 미리 운용 방법을 확인하도록 하고 만기 이후 낮은 금리의 대기성 자금으로 머무는 기간을 줄일 계획이다.

퇴직연금사업자에 대한 평가체계도 개선된다. 정부는 기존의 정성평가 중심 방식에서 벗어나 수익률과 가입 확대, 장기 유지, 연금 수령 등 정량지표를 중심으로 평가항목을 재설계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업권별 상위 10% 우수 사업자만 공개했지만, 앞으로는 평가 결과를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공개해 사업자 간 경쟁을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th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