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원 54명 검거…110명에게 81억원 가로채

법원 사무관·검사·금감원 직원 역할 나눠 기망

경찰, 대포폰 117대 등 최대규모 압수품 확보

경찰이 확보한 범행도구.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대는  29일 서울 마포구 광역수사대에서 검거한 조직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서울경찰청 제공]
경찰이 확보한 범행도구.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대는 29일 서울 마포구 광역수사대에서 검거한 조직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서울경찰청 제공]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기재된 구속영장 내용을 3번 소리 내서 읽으세요.” “제3자와 같은 공간에서 조사를 공유하고 계시면 안 되고 공공장소나 단체공간에서는 조사 받으실 수 없습니다”

베트남에 콜센터를 차려놓고 법원 사무관과 검사,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피해자들을 숙박업소에 고립시킨 뒤 81억원 상당을 가로챈 보이스피싱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대는 한국인 공동총책 A·B씨를 비롯한 조직원 54명을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등 혐의로 검거해 이 중 37명을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핵심 조직원 45명에게는 범죄단체 조직·가입·활동 혐의도 적용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4년 7월부터 지난 1월까지 베트남 호찌민시에 ‘대동단결’이라는 범죄조직을 결성하고 법원 사무관과 검사,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하는 방식으로 피해자 110명으로부터 81억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조사 결과 이들은 조직원들에게 1선(법원 사무관), 2선(검사), 3선(금융감독원 직원) 역할을 부여해 범행을 벌였다.

1선 조직원은 성매매나 대포통장 관련 사건을 언급하며 “법원 등기가 반송됐으니 2차 발송전에 확인차 연락드린다”고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이후 허위로 개설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게 해 위조된 문서로 범죄 연루 사실을 믿게 한 뒤 피해자의 직장,인적사항, 재산 규모 등을 파악했다.

2선 조직원은 1선 조직원에게 넘겨받은 정보를 토대로 검사를 사칭했다. “본인은 지금 약식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니 절대 가볍게 생각하면 안된다”며 겁을 준뒤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임시보호관찰지를 지정해주겠다”며 모텔 등 숙박업소에 머물도록 하는 이른바 ‘셀프 감금’을 강요했다.

범행 과정에서 비용을 처리해 주겠다며 새 휴대전화 개통을 유도하고 피싱 예방 앱인 ‘시티즌코난’을 흉내 낸 악성 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했다.

3선 조직원은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공포에 질린 피해자들에게 자산 검수를 요구했다. 이후 체크카드 한도제한을 풀고 대출을 받도록 종용한뒤 현금을 인출해 지하철 물품보관소 등에 현금을 보관하도록 지시하거나 가상자산을 구매해 전송하도록 했다.

베트남 거점 피싱 조직 ‘대동단결’ 범죄조직도 [서울경찰청 제공]
베트남 거점 피싱 조직 ‘대동단결’ 범죄조직도 [서울경찰청 제공]

이 과정에서 허위 구속영장 내용을 2~3차례 소리 내어 읽게 하고 매시간 위치를 보고하라고도 했다.

조직은 2024년 7월께 중국인 총책이 중심이 되어 인터넷 광고와 지역 선후배 관계를 이용한 인력 모집책 등을 통해 범죄에 가담할 하부 조직원을 모집해 같은해 9월부터는 범죄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본사 외에 ‘호팀’, ‘훈팀’, ‘쇼팀’ 등 하부 조직을 순차적으로 구성해 유사 기업처럼 조직을 확장했다.

경찰의 잠입 수사에 대비해 조직원 선발 과정에서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현지 주민들에게 일반 회사원처럼 보이도록 출퇴근할 때 정장이나 와이셔츠를 착용하도록 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실적에 따라 1선에서 2선, 3선으로 승진하는 방식으로 운영 범죄수익금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경찰은 지난 1월 베트남 공안이 처음으로 행정검사 과정에서 한국인 피의자 29명이 적발되면서 사건을 인지한 후 지난 4월 27일 집중 수사 관서를 지정해 베트남 당국과 공조 수사를 펼쳤다.

이후 지난 8월부터 두 달간 8차례에 걸쳐 현지에 구금돼 있던 한국인 공동총책 등 핵심 조직원 25명을 국내로 송환해 구속했다. 호찌민시 현지 단속 전후로 국내외로 도피하던 조직원도 검거하면서 총54명을 검거하고 이중 37명을 구속했다.

구소된 조직원들가운데 80% 이상은 20대와 30대로 구성됐다.

경찰이 확보한 범행도구.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대는  29일 서울 마포구 광역수사대에서 검거한 조직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서울경찰청 제공]
경찰이 확보한 범행도구.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대는 29일 서울 마포구 광역수사대에서 검거한 조직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서울경찰청 제공]

경찰은 이번 조직 검거 과정에서 해외 거점 피싱 조직 검거 사례 가운데 최대 규모의 범행 도구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압수품은 범행 시나리오 대본과 피해자 개인정보 DB자료를 비롯해 휴대전화 117대, 노트북 19대, 데스크톱 본체 2대, 와이파이 공유기 15대 등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공기관을 사칭해 금전을 편취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이스피싱 예방수칙은 ▷범죄 연루나 자금세탁 여부 확인 등을 이유로 불안감을 조성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전화 끊기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 비밀번호, 인증번호, 신분증 사진 등 개인정보·금융정보 제공하지 않기 ▷상대방이 알려주는 앱을 설치하거나 인터넷 주소에 접속하지 않기 ▷의심스러운 전화는 해당 기관의 공식 대표번호로 직접 확인하기 ▷이미 돈을 송금했거나 개인정보·금융정보를 제공했다면 즉시 거래 금융회사에 지급정지를 요청하고 경찰(112)에 신고하기 등이다.


kid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