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절도범 사건서 각각 벌금 100만원 선고

양형사유에서 “우리 사회 암묵적인 룰” 언급

변호사들 “죄질 괘씸하게 본 듯…최대치 형량”

“택배 꾸러미는 자기 것이 아니면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룰”

“피고인은 사회적 신뢰관계에 구멍을 냈다.”

-택배 절도범 A씨에 대한 판결문 중 일부-
Gemini를 활용해 생성한 이미지. 이미지와 기사는 직접 관련 없음.
Gemini를 활용해 생성한 이미지. 이미지와 기사는 직접 관련 없음.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타인의 택배를 훔친 절도범에게 법원이 이례적으로 벌금액을 높여 처벌했다. 당초 간이절차인 약식명령으로 정해진 벌금 액수가 70만원이었는데, 정식 재판이 진행되면서 오히려 벌금 100만원이 선고됐다. 법원은 “피고인이 사회적 신뢰관계에 구멍을 냈다”고 질타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형사6단독 차기현 판사는 절도 혐의를 받은 A씨의 1심에서 지난달 15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A씨는 지난해 11월, 광주광역시(전남광주통합특별시) 소재 한 아파트 경비실 앞 택배물이 쌓인 장소에서 타인의 택배물을 훔친 혐의를 받았다. 셔츠, 패딩, 자켓 등 시가 10만원 상당의 물품이었다. A씨는 이를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판매하려다 덜미를 잡혔다. 물품은 경찰을 통해 다시 피해자에게 모두 반환됐다.

당초 A씨는 벌금액 70만원으로 약식기소됐다. 약식기소는 비교적 혐의가 가벼운 사안에 대해 공소청(옛 검찰)이 징역형이나 금고형보다 벌금형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기소와 동시에 벌금형에 처해달라고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절차다. 별도의 공판이 열리지 않고 법원이 제출된 서류만으로 결론을 낸다. 법원이 약식절차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거나, 본인이나 공소청이 약식명령에 불복할 경우 정식 재판이 열릴 수도 있다.

차 판사는 “약식명령으로 정한 벌금액수만으론 죄책에 맞는 처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자택 문 앞, 공동현관, 경비실 앞 등에 놓아둔 택배 꾸러미는 자기 것이 아니면 서로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룰”이라며 덕분에 “많은 이들이 대면수령의 곤란, 택배보관함 설비의 부족에도 비교적 안심하는 분위기 속에서 거리낌 없이 택배 거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A씨는 아파트 공동현관 앞으로 배송된 다른 이의 택배를 들고 가버림으로써 사회적 신뢰관계에 구멍을 냈다”며 “피해자에게 아직 용서를 받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며 “절도로 인한 피해가 경미한 편이고 훔친 물건이 피해자에게 반환됐으며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 전력은 없다”고 살폈다.

이 판결에 대해 김지혁 법률사무소 태린 변호사는 헤럴드경제에 “양형사유에서 이례적으로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룰’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A씨의 죄질을 매우 괘씸하게 본 것이 명백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절도, 소액 임금 미지급 등 생계형 사안에선 정식 재판에서 벌금액을 낮춰줄 순 있어도 이번처럼 올리진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와 합의했다면 기소유예 또는 벌금 30만원 미만으로 선고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사안”이라고 분석했다.

박지영 법무법인 흰뫼 변호사는 “절도죄의 법정형이 벌금 5만원에서 1000만원이라는 점에서 100만원이라는 선고 형량이 과하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훔친 물품의 가액이 10만원이었다는 점에서 벌금 100만원은 최대치에 가까운 형량을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notstrong@heraldcorp.com
Google News Icon
Google News 에서 헤럴드경제 팔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