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니 코기 연극 ‘아메리칸 드림’
매카시즘 광풍 속 영화인들의 선택
日 오리지널 캐스트로 16년 만의 내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당신은 코뮤니스트(Communist, 공산주의자)이거나, 코뮤니스트인 적이 있습니까?”
‘빨갱이 사냥’이 한창이던 1947년 할리우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깊어지자 ‘꿈의 대륙’은 제 안의 적을 찾아 나섰다. 자본주의 영화산업의 심장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원 비미활동위원회(HUAC)의 소환장이 스튜디오마다 날아들었다. 공산주의자로 지목되면 일자리를 잃었다. 살아남으려면 동료의 이름을 대야 했다.
무대는 위아래 두 겹으로 쌓았다. 아래는 위원회가 은밀히 빌린 호텔 객실, 영화인들이 한 사람씩 불려 들어오는 심문실이다. 위로는 무대만 한 스크린이 걸렸다. 자막이 흐르는 그 화면에 이따금 옆방이 비친다. 차례를 기다리는 영화인들이 모인 대기실을 담은 몰래카메라 영상이다. 심문실의 생생한 대사가 이어지다 카메라가 옆방으로 넘어가고, 대기실 풍경이 지나가면 무대는 다시 심문실로 돌아온다. 한 무대 안에서 연극의 시간과 영화의 화면이 나란히 흐른다.
“악인은 아무도 없다. 있는 것은 희생자뿐이다.”
막이 오르기 전 스크린에 떠오르는 이 간명한 문장이 시대를 요약한다. 그 시절 할리우드를 잘 알지 못하는 관객이라도, 이 한 줄에서 ‘빨갱이 색출’이 누구도 온전히 남겨 두지 않은 비극이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옥살이를 한 각본가 돌턴 트럼보가 1970년 미국작가조합 시상식에서 남긴 말이다.
송승환·서현철이 출연한 ‘웃음의 대학’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일본 극작가 겸 연출가 미타니 고키는 신작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10월 30일~11월 1일, 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을 이 문장으로 연다. 미타니는 지난 30일 서울 코엑스아티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 말에 다 담겨 있다”고 했다. 지난 8월 도쿄 파르코 극장에서 막을 올려 일본 7개 도시를 돈 투어의 마지막 무대로, 일본 오리지널 캐스트가 원어로 연기했다. 미타니가 연극 공식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건 16년 만이다.
호텔 방에 불려 온 영화인은 네 사람이다. 미타니는 당시 표적이 된 이들의 대응을 네 가지 군상(群像)으로 변주했다. 단 하나의 질문 앞에서 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는다. 극은 권력에 맞서는 예술가의 태도에 정답을 정해 두지 않는다. 다만 억압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예술가의 생존과 존엄이 어떻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네 사람이 내놓은 답은 곧 저마다 살아온 삶의 모양이다.
생존의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풍자와 조롱의 블랙코미디
첫 번째로 문을 여는 이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배우(세키야 하루코 분)다. 이름난 영화에 얼굴을 비쳤고 인상적인 연기로 상까지 받았지만, 크레디트 끝자락에나 이름이 걸리는 존재다.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한다. 다음 배역이 언제 올지 모르는 배우에게 사상은 사치다. 오늘의 생활과 내일의 밥벌이가 먼저다. 여배우는 지금도 배역을 기다리며 중식당에서 일한다.
위원회의 추궁은 하나다. 그해 8월 30일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각본가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누가 왔는지 ‘밀고’하라는 것이다. 여배우는 끝내 위원회가 추려 낸 이름들이 적힌 문서에 서명한다. 세키야 하루코는 그 굴복을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생존 앞의 좌절과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것들을 흔들리는 눈빛과 짧게 삼키는 숨만으로 그려 낸다. 미타니는 “어떤 문헌에도 거의 실려 있지 않은 이름 없는 배우들을 그리고 싶었다”며 “그들도 그들 나름의 싸움을 했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두 번째 심문의 주인공은 동료들의 이름을 위원회에 넘긴 영화감독(아사노 가즈유키 분)이다. 엘리아 카잔(Elia Kazan)을 모델로 한 감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영화만은 계속 만들겠다’는 사람이다. 아사노 가즈유키는 가벼운 말투 아래 철저한 계산을 덧입히되, 밀고자를 평면적인 악당으로 그리지 않는다. 미타니가 “트럼보의 말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는 인물”로 꼽은 이 감독의 얼굴에는 비열함보다 카메라를 향한 지독한 갈망이 서려 있다.
세 번째로 불려 온 마이스터(야마자키 하지메 분)는 나치 독일을 피해 건너온 망명 극작가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모델로 한 마이스터는 어떤 질문에도 현란한 장광설과 궤변을 늘어놓으며 능구렁이처럼 위원들의 추궁을 빠져나간다. 실제 브레히트도 1947년 10월 30일 청문회에서 동문서답으로 위원들을 농락하고 이튿날 미국을 떠났다.
“당신은 코뮤니스트인가?”라는 직설적인 질문에 마이스터는 채식주의자를 판별하는 기준을 두고 기나긴 강연을 늘어놓은 뒤 “그래서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답한다. 뜬금없는 동문서답 같지만, 사상 검증이라는 잣대가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통쾌하게 꼬집는 장치다.
자유를 찾아온 망명 작가는 ‘자유의 나라’에서 다시 사상 심문을 받는다. 마이스터는 자유를 찾아 미국에 왔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허상이었다고 한탄한다. 그러고는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이런 방식이야말로 다분히 공산주의적인 방식”이라고 일갈한다. 미타니가 제목에 “누구나 꿈꾸던 동경이 실제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조금 시니컬한 의미”를 담았다며 짚은 대목이다.
이 무대의 또 다른 압권은 뜻밖에도 ‘소시지(Sausage)’다. 심문을 마친 마이스터는 자신이 주문한 룸서비스를 두고 열변을 토한다. 두 종류의 소시지를 시켰는데 삶아야 할 것은 굽고, 구워야 할 것은 삶아서 내온 미국 호텔의 ‘만행’에 진지하게 분노한다. 사상 앞에선 교묘히 물러서던 망명객이 조리법 앞에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자 객석은 뒤집어진다.
미타니는 “이번엔 희극이 아니다”라고 선언했지만, 엉뚱한 대사와 유머 코드는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이 웃음은 그저 웃기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적색 사냥의 광풍을 우스꽝스럽게 비트는 무기다. 치열한 심리전과 설전, 그 틈에서 터지는 유머와 휴머니즘을 살려 낸 것은 지능적인 대본과 배우들의 빼어난 앙상블이었다.
감시의 렌즈, 예술의 낭만
마지막 심문대에는 각본가(고히나타 후미요 분)가 앉는다. 온화한 말투로 답할 것과 답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가르고, 동료의 이름 앞에서는 끝내 입을 닫는다.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연기는 억압에 굴하지 않는 예술가의 초상을 완성하며 객석을 단숨에 휘어잡는다.
대기실의 촌극을 꿰뚫어 보는 것도 각본가다. “영화하는 사람들은 렌즈에 민감하다.” 대기실의 영화인들은 이미 몰래카메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렌즈에 얼굴을 들이밀며 조롱하고 시시콜콜한 잡담만 늘어놓은 데도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각본가는 “저기선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짚은 뒤, 심문을 마친 이들을 돌려보내자고 제안한다.
단정하고 다정한 각본가의 태도에 위원들도 무장해제되는 순간이 있다. 조사 도중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위원회 조사관이 연기 테스트를 받는 상황이다. 심문을 하는 자도 ‘악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각본가는 위원회의 심문에 흔들림 없이 신념을 지킨다. 스스로 공산주의자임을 밝히면서도 그것이 적극적인 활동이나 사상적 감화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각본가가 지키려는 것은 정치적 사상이 아니라 예술가이자 인간으로서의 신념이다. “대본을 쓸 때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나 자신이 약자이기 때문이다.” 빨갱이 사냥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영화인들도, 공산주의자들도 각본가에게는 약자다. 그렇기에 각본가는 약자를 밀고하고서 어떻게 약자를 위한 작품을 쓸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아무도 떠나지 않는다. 여배우는 약자이기에 눈치를 보고, 마이스터는 소시지를 기다리며, 감독은 뻔뻔하게 버틴다. 각본가가 무심하게 툭 던진다. “영화판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끝나면 바로 가는 사람과 빈둥거리며 남는 사람.” 남은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렇게 남은 이들이 결말의 무대를 채운다.
‘아메리칸 드림’은 영화에 대한 연극이자, 무대 위에서 영화를 만드는 연극이다. 호텔 방 하나에서 오가는 대사는 촘촘하게 짜여 있고, 배우들은 그 대사를 담백하게 주고받는다. 웃음도 비극도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 위로 스크린이 카메라의 눈을 더한다. 무대와 영상을 넘나들어 온 미타니는 “영화와 연극을 나눠 생각하지 않는다”며 둘을 “하나의 종합예술”로 본다고 했다. 1950~6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사랑해 온 작가의 안목이 무대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이야기는 심문이 끝난 뒤에도 이어진다. 일거리를 찾던 여배우는 호텔을 나와 밀고자인 감독을 다른 곳에서 만난다. 캐스팅 권력을 쥔 감독과 여배우 사이에 위태로운 공기가 감돌지만, 정작 여배우만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극의 마무리는 영화 본연의 낭만을 잃지 않는다. 서슬 퍼런 권력의 민낯과 꺾이지 않는 예술가들의 존엄을 지켜본 젊은 위원(나카가와 다이시 분)은 가슴에 묻어 둔 영화의 꿈을 다시 꺼낸다. 근사한 춤사위가 재즈와 스윙의 시대를 불러내고, 무대 상단의 거대한 스크린은 그 모습을 한 편의 흑백영화처럼 담아낸다. 연극이 영화가 되는 순간, 객석은 폭력의 시대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예술의 생명력과 마주한다. 미타니는 지난 6월 출연진을 발표하며 이렇게 적었다.
“연극을 사랑하고 미국 영화를 사랑하는 제가, 미국 영화의 세계를 연극의 세계에서 그린다. 마침내 꿈이 이뤄졌습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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