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입 사업장 1500곳 조사서 52.5% 부담 응답
5인 미만 도입률 10.6%…운영자금·행정비용 우려
정부, 단계적 적용·조기 도입 지원…기금형 운용도 확대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2030년까지 모든 사업장에 퇴직급여 사외적립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퇴직연금 미도입 사업장 절반 이상이 의무화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금을 미리 확보해 체불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외부 적립에 따른 현금 유출을 감당해야 하는 영세업체의 수용성이 제도 안착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규모별로 적용 시기를 나누고 조기 도입 사업장을 지원해 전환 부담을 낮출 방침이다.
2일 고용노동부의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과 관련 보도를 종합하면 한국노동연구원이 올해 4~7월 퇴직연금 미도입 사업장 1500곳을 조사한 결과 52.5%가 사외적립 의무화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매우 부담된다’는 응답도 15.6%였다.
퇴직금은 원래 줄 돈…기업 부담은 현금흐름 변화
사외적립 의무화는 기존 퇴직급여의 재원 확보 방식을 바꾸는 조치다. 퇴직 시점에 급여를 지급하는 기존 퇴직금제도와 달리 금융기관 등 외부에 재원을 미리 적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퇴직급여 지급 의무가 있는 기업이라도 별도 재원을 준비해온 정도와 자금 사정에 따라 전환 부담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퇴직급여를 지급하기 전까지 해당 자금을 운영에 활용해온 기업은 외부 적립이 늘어나는 만큼 내부 유동성이 줄어들 수 있다. 소상공인들이 퇴직연금 전환에 반발하는 이유도 임대료·재료비 등과 함께 정기적인 현금 지출이 늘어난다는 데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전날 논평에서 영세사업장의 지불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의무화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전담 인력이 없는 사업주의 행정 부담과 금융기관 수수료도 문제로 지목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지난달 29일 논평을 통해 중소·영세사업장의 재정 여건과 제도 운영 부담을 고려한 단계적 시행과 정책 지원을 요구했다.
사업장 규모별 도입 격차도 크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도입률은 5인 미만 10.6%, 5~9인 32.7%, 10~29인 57.3%였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92.1%에 달했다. 대기업 상당수가 이미 제도를 운영하는 반면, 영세업체는 적립 재원 확보와 제도 도입을 함께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체불액 8229억원…정부, 단계적 의무화·선도입 지원
정부가 의무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퇴직금 체불이 있다. 지난해 퇴직금 체불액은 8229억원으로 전체 임금체불액의 41.1%를 차지했다. 기업이 경영난에 빠지거나 폐업한 뒤에는 지급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사전 적립으로 노동자의 수급권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발표한 정부안은 2028년 100인 이상 사업장, 2029년 10~99인, 2030년 10인 미만 순으로 사외적립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연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을 전제로 한 일정이다.
의무는 각 단계 시행 이후 근속분부터 적용한다. 과거 근속기간에 해당하는 퇴직급여 전체를 시행 시점에 한꺼번에 외부에 적립하도록 하는 방식은 아니다.
의무화 전에 자율적으로 도입하는 사업장에는 한시적으로 재정지원을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 예산안에 적립금 매칭지원 60억원과 경영자금 융자비용 보전 62억원을 신규 편성했다. 두 금액은 2027년 선도입 지원사업 예산으로, 2028~2030년 의무화 기간 전체의 지원 총액을 뜻하지 않는다. 영세사업장 수수료 특례와 규약신고 간소화도 추진한다.
기금형 확대해 운용 선택권…적용 대상 확대는 별도 논의
적립금 운용 방식도 다양해진다. 정부는 전문 수탁법인이 가입자의 적립금을 모아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을 활성화해 기존 계약형과 함께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다만 운용 수익과 손실은 가입자에게 귀속된다. 정부는 가입자 이익 최우선 원칙과 핵심 의무 위반 시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하고 성과 평가·공시 등 보호장치를 마련할 방침이다.
모든 사업장에 사외적립을 의무화하는 것과 모든 노동자에게 퇴직급여를 보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현행 퇴직급여 적용에서 제외되는 계속근로기간 1년 미만이나 4주 평균 주 소정근로시간 15시간 미만 노동자에게 이번 의무화만으로 지급 의무가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적용 대상 확대는 별도 사회적 대화와 입법 논의를 거쳐야 한다.
정부는 이달 중 법 개정안을 마련해 연내 국회 통과를 추진한다. 노동자의 퇴직급여를 보호한다는 취지를 실제 제도로 연결하려면 미도입 업체의 전환을 유도하는 지원과 적립금의 안정적인 운용을 함께 뒷받침해야 한다. 입법 과정에서는 사업장 규모별 이행 여건과 지원 방식, 가입자 보호 수준이 주요 논점이 될 전망이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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